인정받고 싶은 게 잘못인가요
행 5:1-11
생각하기
우리 주변에는 인정받지 못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정 욕구’라는 것이 사람을 참 힘들게 합니다. 누구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채워주지 않으니 갈급합니다.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제자들의 발 앞에 두었을까요?
성령을 경험하고 교회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사람들의 필요를 따라’ 나누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37절 말씀을 보면, ‘바나바’라는 인물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오늘과 같은 행동을 합니다.
2.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님을 속였을까요?
오늘의 본문 사도행전 5장 3절 말씀을 보면,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면’ 성령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 가운데도 ‘사탄이 가득하면’ 성령을 속일 수 있는 용기가 나타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그 욕망 가운데 사탄이 찾아와 마음을 어둡게 가려, 성령님을 속이게 되었습니다.
인정에 굶주리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동일한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라, 다 다른 일을 하게 하셔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아닌 것을 인정받으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인정’이란 교만과 일맥상통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인정 욕구’는 ‘시기심’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사명을 맡겨주셨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자꾸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사명도 잃고,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가장 큰 문제는 ‘거짓’입니다. 이들의 거짓말은 ‘자의적’인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을 속이는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였다는데 그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이 부부는 교회의 존경을 받으며 멋지게 이름이 회자되고 있는 바나바를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바나바의 경우, 자신의 재산을 팔아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이 ‘존경’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존경이라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원인’을 거짓으로 조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과보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그 동기가 더욱 분명해야 합니다. 결과를 바라보며 선행을 하면 실족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선한 동기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의미 있는 일이 됩니다. 축복은 우리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 ‘보너스’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정에 굶주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종종 ‘신령한’, ‘영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헬라어로는 ‘logikos’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인 ‘Logos’에서 파생된 말로, ‘이성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신령하고도 영적인 상태는 무절제하게 자신의 감정에 취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이성적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위대한 신앙인은 자신의 감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갑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감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늘 말씀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과 감정대로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성』
김창현 저 (예수전도단, 2013.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