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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의 원리 3. “부르심 앞에 서라!”

행 26:16-18

비전으로 인한 당당함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사명 선언문과 같은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재판정’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바울이 자기변호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 변호 과정에서 바울은 ‘눈을 뜨게 하여’(18절)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육신의 눈이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열망으로 가려졌던 영의 눈을 뜨게 하셔서 인생을 새롭게 보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재판정의 자리, 왕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가 가진 당당함,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의 성공으로 인한 당당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인한 당당함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고 그의 열정을 이 비전을 위해서 태웠던 사람입니다.

몽상이 아닌 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헬렌 켈러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장님으로 태어나는 것 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냐?” 헬렌의 대답입니다.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 것이다.” 지난 해 3·1운동 백주년 행사를 참 많이 했습니다. 특히 유관순 열사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는 최고의 예우를 했습니다. 그녀는 18세의 나이에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서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녀의 시신에는 코와 귀가 다 잘려져 있었고, 손과 발이 다 끊어지고 부러져 흔들거렸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일한 슬픔이다”라는 그녀의 고백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꿈을 가지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참 많이 다릅니다. 헬렌 켈러, 유관순. 이들은 꿈을 가진 여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몽상”을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존 맥스웰의 『열매 맺는 지도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몽상가는 말은 많지만 행함이 없습니다. 그들이 서툰 계획과 생각을 꾸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몽상가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반대로 꿈을 가진 사람은 적게 말하고 많이 행하는 사람입니다.”

정당한 값의 지불

이사야 6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이사야의 고백 “나를 보내소서.”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더러움을 보고 난 후에 이루어진 고백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멈추어서 자신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죄성과 부족함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도 보기 시작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행하실 일을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꿈은 멈추어서 우리의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 뒤로 잔뜩 당겨진 고무줄은 앞으로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꿈을 가진 사람의 “고무줄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꿈을 위한 ‘정당한 값의 지불’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어떤 일도, 어떤 하나님의 사역도 우리의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만 하고 무엇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전의 사람이 아니라 ‘몽상가’에 불과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몽상’하는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꿈’을 꾸고 이루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우실 것입니다. 적당한 값을 지불하고 하나님의 꿈이 여러분의 꿈이 되어 펼쳐지길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열매맺는 지도자
존 맥스웰 저(두란노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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