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호세아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회복”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1:1,6:3,6)

호세아는. . .

구약성경의 예언서는 대 예언서 4권과 소 예언서 12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호세아는 소 예언서에 속하며 그 첫 번째 예언서입니다. 12 소선지서의 키워드는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선지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그리고 회복과 타락이라는 악순환의 과정 속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호세아’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음탕한 아내 고멜’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고멜을 아내로 맞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고멜은 타락하여 호세아를 떠났으나,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녀를 데려와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호 1:2) 어떻게 이런 명령을 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앞으로 계속될 선지자들의 만남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과 이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긴장 관계를 접하게 될 것입니다.

신뢰하면 순종할 수 있지만 이해하려고 하면 순종하기가 참 힘듭니다. 순종의 기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존재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말은 늘 시대를 거슬렀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불편해진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불편하지만 자신의 뜻을 꺾고 말씀대로 살아가든지,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회복: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 .

우리는 성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부부로 묘사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부부는 촌수를 따질 필요도 없이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와 같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이 신랑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는 신뢰를 잃고 관계가 끝나면 ‘남’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호세아를 통해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세상과 같지 않은 하나님’입니다. 관계의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호세아의 삶을 통해 직접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말합니다. 호세아가 부당한 명령에도 순종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제일 좋은 방법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방탕한 이스라엘 백성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한 방법은 바로 방탕한 아내를 순종하며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부정하게 낳은 세 자식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주십니다. 첫째 ‘이스르엘’은 지명으로 예후 왕조가 탄생한 장소입니다. 예후는 우상 숭배했던 아합 가문을 처단하는 혁명으로 시작한 정부입니다. 이 이름을 통해 바알을 섬겼던 왕이 피의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도 심판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둘째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들은 호세아 선지자가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 인간적인 법칙들을 벗어나 계속 아내를 용납하고, 죄를 지으며 만들어 낸 부정한 자식들을 보는 남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수치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소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힘써 알자’는 말은 누군가에게 들어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인지 인정할 수 있도록 아는데 힘쓰자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시인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세 자녀의 이름을 통해 보면, 이스라엘에는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깊은 속뜻은 ‘단절’이 아니라 ‘회복의 촉구’입니다. 호세아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회복의 열쇠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나님을 안다면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심판은 늘 ‘회복’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징계의 이면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이야기로 푸는 소선지서』 김에스더
(CLC 기독교문서선교회, 2020.11.3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