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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공평하지 않아!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1-3)

죄와 고통의 인과관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우리가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악과 고통’의 문제가 ‘인과관계’로 설명만 된다면 우리는 평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본문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과법칙’에 의하면, 나면서 소경된 자는 자신 혹은 누군가의 죄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동의를 구한 것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인과법칙에 따라,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면 제자들의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의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3) 그의 고통과 어려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의문들…

악과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악을 통제하는 분이시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요?

어거스틴은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선하시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말합니다. 악이란 ‘존재’가 아니라, ‘선의 결핍’으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무죄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또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면, 이런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으며, ‘성경 말씀’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또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악’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는 누구도 심판에서 벗어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심이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에 참으심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의 문제를 넘어서…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가 경험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는 소경의 고통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다” 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바울은 환난 중에도 우리가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역설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성경은 ‘고통’ 그 자체보다 그 고통이 지니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는 것이 신앙적인 접근이라는 말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조각해 나갈 때, 그 안에 갇혀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고 했습니다. 이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도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고통이 따르지만 망치와 끌을 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고통의 문제를 우리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역 가운데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추천도서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팀 켈러 저 최종훈 옮김 (두란노, 2018.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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