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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6월 9일 자비, 하나님의 은혜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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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11-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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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자비는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또한 받아들일 수 없는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사람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신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상황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비를 뜻하는 헬라어 ‘크리스토테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부르며 매우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관습으로도 율법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작은아들을 주저함 없이 받아들입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배설하여 그의 아들 됨을 확실하게 인정했습니다(롬 8:15). 그러나 맏아들인 형은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죄 의식과 비교 의식에서 오는 우월감이 자비를 베풀지 못하도록 그를 막아섰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서로 자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6:36).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적개심과 증오와 분노로부터 자유할 때 자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사울의 적개심과 증오와 분노로 인한 피해들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존중하며 신뢰했습니다(삼상 24:6). 사울과 그의 행동을 묵상하며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했습니다(시 18편).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과 은혜 또한 기억했습니다. 그는 보복의 숙청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풉니다(삼하 9장).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있습니까?

❶ 적개심과 증오와 분노로부터 자유합니까?

❷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합니까, 적과 상황을 묵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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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테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부르며 매우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❶ 관련 설교 – 성령의 열매5. 자비 – ‘원수’에서 ‘아들’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의 열매 

탕자 비유의 주제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자비하심”입니다.  

아버지가 자비하게 보여지는 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비를 “상식을 넘어선 선행”이라 말할 때 그 뜻이 명확해집니다. 

어떤 면에서 “자비”라는 말은 “아가페”라는 말과 상응하는 단어이고, 영어 성경에서는 “gentleman" 혹은 ”kindness"로 번역을 합니다.  

헬라어로 자비는 “크리스토테스”라는 말인데,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와 아주 흡사한 발음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말음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아주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도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인데 왜 친절하지 않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답니다.  

어쩌면 “자비”라는 말만큼 크리스천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하게 하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에게 피해가 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을 배려해야만 베풀 수 있는 것이 자비입니다.  

 

❷ 관련 설교 – 성령의 열매5. 자비 – ‘원수’에서 ‘아들’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의 열매 

[서커스] 

내가 십대였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기 위해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표를 산 사람들이 차례로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매표소와 우리 사이에는 한 가족만이 남았다. 그 가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대식구였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비싸진 않아도 깨끗했고, 아이들의 행동에는 기품이 있었다.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부모 뒤에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아이들은 그 날 밤 구경하게 될 어릿광대와 코끼리, 그리고 온갖 곡예들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전에는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밤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랑스런 얼굴로 맨 앞줄에 서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당신은 정말 멋진 가장이에요.” 

남편도 미소를 보내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 역시 훌륭한 여성이오.” 

이때 매표소의 여직원이 남자에게 몇 장의 표를 원하냐고 물었다. 남자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자랑하듯이 말했다.  

“우리 온 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어린이 표 여덟 장과 어른 표 두 장을 주시오.” 

여직원이 입장료를 말했다. 그 순간 아이들의 어머니는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고 고개를 떨구었다. 남자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남자는 매표소 창구에 몸을 숙이고 다시 물었다. 

“방금 얼마라고 했소?” 

매표소 여직원이 다시 금액을 말했다. 남자는 그만큼의 돈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할 것인가.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들에게 이제 와서 서커스를 구경할 돈이 모자란다고 말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이때였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의 아버지가 말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20달러 짜리 지폐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몸을 굽혀 그것을 다시 주워 들더니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시오. 선생. 방금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이것이 떨어졌소.”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결코 남의 적선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절망적이고 당혹스런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내밀어 준 도움의 손길은 실로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남자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20달러 지폐를 꼭  

움켜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선생. 이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 정말로 큰 선물이 될 것이오.” 

남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들은 곧 표를 사 갖고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아버지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당시 우리 집 역시 전혀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날 밤 서커스 구경을 못했지만 마음은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탕자의 아버지는 관습으로도 율법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작은아들을 주저함 없이 받아들입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배설하여 그의 아들 됨을 확실하게 인정했습니다(롬 8:15). 그러나 맏아들인 형은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❸ 관련 설교 – 성령의 열매5. 자비 – ‘원수’에서 ‘아들’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의 열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자비와 관련해 손꼽히는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인데, 사무엘하 9장 이하에 보면 므비보셋이라는 절뚝발이에게 다윗 왕이 자비를 베푸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에 사울 왕조에 속한 자 중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 므비보셋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친구 요나단의 아들이었지요. 

어느 날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므비보셋을 찾았습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동양적인 정서에서 보면, 새로운 왕이 되면 모든 정적들은 죽이거나 숙청을 당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생명이 끝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히려 반대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것도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사무엘하 9장 7절에 보니 

사울이 가졌던 밭을 다 도로 주고, 항상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왕의 재산과 왕자의 지위를 허락해 준 것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베풀었다하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자비를 다윗이 베풀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베풀었던 그런 자비 말입니다.  

사실은 오늘 우리가 그 자비를 입고 있지요. 우리들 중에 누가 자격으로, 선함으로 이 자리에 나아올 사람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서로 자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6:36).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❹ 관련 설교 – 성령의 열매5. 자비 – ‘원수’에서 ‘아들’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의 열매 

노란 손수건이란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4년 동안 뉴욕의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빙고’라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는 석방되기 전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돌아가는 버스에서 승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그래서 만약 노란 손수건이 참나무에 걸려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갈 것이고, 노란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 버릴 것입니다.” 

고향집에 버스가 다다르자, 승객들은 모두 조바심 어린 눈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 물결로 덮여 있었습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의 손수건이 바람에 마구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는 동안에 늙은 전과자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내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 남자에게는 큰 용서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얼굴을 들 용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➎ 관련 자료 – 『거룩한 몸부림』 구대일 저 

돈멀루의 「붐비는 우회로」라는 책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 회사의 자금 중 수천 달러를  

몰래 빼돌린 한 젊은 회사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행위는 적발되었고, 젊은이는 사장실에 가서 그 경위를 보고해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질 법적 조치가 두려웠다. 그의 행위가 모두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사장은 깜짝 놀랄 만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네를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젊은이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대답했다.  

예, 사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이 일로 인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사장이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네. 가서 일을 계속하게.”  

젊은이와 대화를 끝내면서 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어.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갔다가 관용을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 사람이야. 첫 번째 사람은 나야.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었지. 

자네가 받고 있는 자비를 나도 받았다네.”
용서받는 자는 진정으로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사울의 적개심과 증오와 분노로 인한 피해들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존중하며 신뢰했습니다(삼상 24:6). 사울과 그의 행동을 묵상하며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했습니다(시 18편) 

❻ 관련 자료 – “산돌”은 기독교 역사에 해같이 빛나는 인물, 정주채 목사 (2021.06.07.) 

출처 :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11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좌익에 속한 청년들이 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를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총살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손 목사님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다가 아들들을 죽인 청년 안재선을 용서할 뿐 아니라 양자로 삼기로 결심합니다.

모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이를 결행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사람을 계엄군사령관에게 보내 살인자인 안재선을 사면해 줄 것을 간곡히 청원하였습니다. 이런 청원을 받은 계엄사령관은 너무나 놀라고 당황스러워했지만 결국 그 청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말 그대로 “사랑의 원자탄”이셨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김구 선생은 ‘공산주의를 진정으로 이긴 사람은 손양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하나님께 아홉 가지 내용으로 감사를 드렸는데, 이런 일은 그 언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해 주심을 감사하고, 예수 믿다가 누워서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함이리요. …”

홍정길 목사님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아브라함 이후에 이런 인물이 나온 적이 없다.”고까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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