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10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마태복음 7:7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인내는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참아 낸다는 데서 지구력과 구별됩니다. 오래 참는 것이 성도의 미덕임은 분명하지만, 이유와 목적을 알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내의 과정을 통해 나에게 이루실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듣고, 믿고, 신실하게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끝까지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현상과 정서적인 반응에 좌우되기 쉽습니다.
시류와 대세에 편승하여 같은 흐름을 타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사람들의 조언과 반응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안전과 안정에 대한 욕구는 끊임없이 우리를 무언가 하도록 몰아갑니다. 시시각각 변해 가는 정치·경제·사회 현상은 끊임없는 변화를 촉구합니다. 인내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광야의 시간, 메마름과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과 함께 그 과정을 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지도하심에 귀 기울이며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고 찾을 때, 인내의 열매가 맺힙니다.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욥은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다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욥 13:15). 욥은 섣불리 의미를 부여하거나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까지 오래 참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인내는 연약한 자의 수동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상황에 대한 나의 판단과 정서적 반응을 멈추되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음성대로 즉각 힘써 순종하는 능동적 반응이 인내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인내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❶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❷ 단순히 견딥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구합니까?
하나님은 인내의 과정을 통해 나에게 이루실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듣고, 믿고, 신실하게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끝까지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❶ 관련설교 – 주나최 365일 묵상, 129 믿음의 인내
챔버스의 묵상에는 ‘인내’(patience)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전 묵상에서 보았던 ‘불굴의 용기’와 가장 잘 맞는 의미죠. ‘인내’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바위를 연상시킨다고 했습니다.
사실 ‘인내’(patience)와 ‘지구력’(endurance)이라는 영어 단어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지구력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고, 인내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참아 내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점검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저 참고 있는지, 아니면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참는지 말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이런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볼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조준하고 활을 당기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말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고 과녁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활을 당기고 쏘십니다.”
인내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광야의 시간, 메마름과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과 함께 그 과정을 지나는 것입니다.
❷ 관련설교 – 주나최 365일 묵상, 129 믿음의 인내
인내는 선하신 주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주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속으로 들어갑니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믿음은 연약한 자의 감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있다는 한 가지만 분명합니다. 믿음이 깨지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지 못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문제는 우리 인생에서 믿음이 역사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주님은 전 영역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참고 인내하셨던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어도 열매 맺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 내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참된 인내입니다.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내는 연약한 자의 수동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상황에 대한 나의 판단과 정서적 반응을 멈추되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❸ 관련설교 – 주나최 365일 묵상, 129 믿음의 인내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다릴 것입니다.”(욥13:15)
이 본문에 대해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최악의 일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느꼈고 자신 역시
진실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지금 나는 뭔가를 잘못해서 벌을 받고 있어”
라거나 “지금 나는 더 완벽해지려고 고난을 받고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욥의 친구들은 그를 가리켜 위선자라고 비난했고, 심지어 무신론자라는 무언의 암시까지
주었지만, 욥은 바로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구약 전체에 있어서 믿음에 대한 가장 고상한
발언을 한다.
“주님이 저를 죽이시더라도 저는 여전히 주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자네들이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말을 할지라도, 나 역시 그분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심지어 그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분이 진실하신 분임을 신뢰할 것이라네. 그리고 그분을 기다리면서 내 진실함을 지켜나갈 걸세. 내가 확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한마음이 될 거라는 사실일세.”
❹ 관련예화 – (『생각이 내가 된다』 이영표, 두란노, 18.05.16)
“훈련, 그 끊임없는 반복”
미국 MLS 리그에 속해 있으면서 캐나다 밴쿠버를 연고로 하고 있는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2013년 어느 날, 원정경기를 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였다. 경기 전날 오후 팀 훈련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려는데 14-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과 아버지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2-3분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소년과 아버지의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유는 어린 시절 내가 나 자신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바로 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가?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분명히 어떤 방법이 있을 텐데 그 방법을 알 길이 없던 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방법은 몰랐지만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매일같이 드리블 훈련에 몰두했다. 팀의 정식 훈련이 끝나고 개인 훈련을 할 시간은 밤 시간뿐이었기에 나의 개인 훈련은 항상 밤에 이루어졌다.
1993년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서는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줄넘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매일 줄넘기 2단 뛰기를 1,000개씩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줄넘기를 시작했다.
핸드메이드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2개의 줄넘기가 끊어진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왠지 모를 묘한 기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그 묘하고 신비한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2단 뛰기도 제대로
못하던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3단 뛰기 100개를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통해 노력이 어떠한 일을 만들어 내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뭔가 특별한 비책이나 지름길을 기대했을지 모르는 소년과 아버지의 질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내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노력하면 됩니다.”
노력에는 항상 고통과 인내가 따르고, 육체적 고통과 내적 갈등 없이 무언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충분한 노력과 실패 없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도 이 세상에는 없다. 노력이란 내가 원하지 않은 결과에서 오는 통증을 미리 나누어 갖는 것이다. 노력에도 고통이 따르고 원하지 않은 결과에도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노력에 오는 통증이 원하는 결과를 놓쳤을 때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 쉽다.
❺ 관련예화 (『하나님을 가슴 뛰게 하는 이야기』 김병삼, 프리셉트, 09.12.24)
“그 자리를 지키라!”
당신은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삶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크리스천은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역사를 보라. 나치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들라면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젊은
학자를 꼽을 것이다. 당시 많은 신학자가 나치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갔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에서 의로운 싸움을 하다 교도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는 아주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사상과 삶은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6·25 전쟁 때 수백 만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그 중에는 크리스천이 아주 많았다. 만일 그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음을 각오하고 그 자리를 지켰더라면 오늘날 북한이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성숙한 크리스천은 어려움을 피해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성숙한 크리스천이 있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혹시 배우자가 너무 힘들게 해서 그 가정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직장이 너무 힘들어서, 신앙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워서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권유하고 싶다.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나마 당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축복하고 그 직장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좀 괴롭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는 믿음이 필요하다. 성경을 유심히 보라.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서 나그네로 살았다. 이방 땅에서 말이다. 아브라함이 이사를 하면서 전도했다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사를 지내고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이삭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올 때마다 이웃들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그가 양보하고 떠나고, 또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서 결국에는 이삭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드러났다.
야곱을 보라. 그가 집을 떠나 하란에서 외삼촌과 함께 살아야 했던 때, 그곳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었음에도 야곱 때문에 그 가정이 축복을 받았다. 요셉을 보라. 그가 종으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 머물 때, 요셉의 신실함과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그 집안이 축복을 받았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가 하나님을 전하지 않아도 그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자기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비추는 사람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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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8(목)-인내, 하나님의 음성 기다리기 [계3:10, 마7:7]
요즈음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자들...
참을 수록 더욱더 강하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
너무 감정을 억누르며 참다보면 억압된 감정들이나 억울한 감정들이 화산처럼 터져나오는 분노장애~!
그래서 평소에 자기 감정을 조금씩 표출하며 감정조절을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묵상 제목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서 인내에 관한 것입니다.
인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인내로 기다렸던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묵상이 됩니다.
지금 저는 노년이라는 예기치못했던 낯선 광야길을 실감하며 걷고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하나님 보다 앞서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리면서
나의 모든 상황과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의 심령 가운데 인내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
제목: 인내, 하나님의 음성 기다리기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계3:10)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인내와 희망은 한 쌍을 이룬다"라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참 많이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굶주림, 좌절, 이별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며 늘 갈등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길에 이리저리 흔들릴지라도 인내하고 견디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꺽이지 않은 꽃처럼 '나는 살아 숨쉬고 있기에 아름답다'를 외치며 오늘을 열어간다 ~♡
하 ㅡㅡ 인내.
하나님, 정말 진리의 말씀이
저를 자유케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인내에 목적과 이유를 가슴에 새겨
범사에 하나님의 구원과 지도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가며 기다릴수 있는
믿음이 굳건하기를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