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1-4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 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빌립보서 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참된 평화’를 주제로 두 명의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했습니다.
한 화가는 아주 고요한 호숫가 계곡의 안정된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다른 화가는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를 그렸는데, 폭포 옆 나무 위의 둥지에는 폭포의 우렁찬 소리에도 불구하고 새 새끼들이 고요하게 잠자고 있었습니다. 어느 그림에 진정한 평화가 있을까요? 두 번째 그림이 우리 현실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평화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란함 속에서도 잠들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가 아닐까요?
화평은 조건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참 평화는 ‘주를 신뢰하는 것’, 즉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옵니다(사 26:3-4). 아무 일 없이 조용하다고 꼭 화평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거짓 화평’을 경계해야 합니다. 화평은 평화의 수고를 통해 옵니다. 고요한 산속뿐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맺어야 할 것이 화평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절정인 십자가 한복판에서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눅 23:46). 한없이 작은 자신을 인정하며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릴 때, 십자가 고통과 죽음 가운데서도 우리는 화평을 맛보게 됩니다(삼상 25:29).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구하십시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급해하며 염려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보다 내 생각과 기대에 사로잡혀 동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십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아뢰고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인생의 굴곡과 고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할 때, 우리 삶에 화평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나는 참된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까?
❶ 나의 신앙과 삶에 혹 거짓 화평이 있지는 않습니까?
❷ 하나님께 맡기며 평강을 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평화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란함 속에서도 잠들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가 아닐까요?
❶ 관련설교 – 성령의 열매, 3. 화평
성경의 원리는 우리들의 인생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문제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 오늘까지 전 역사의 8%만이 평화의 시기였고, 92%가 전쟁이 있었던 해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인류들이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류역사상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평화라는 말은 ‘에이레네’라는 말인데, 전쟁의 지속된 상태에서 하나의 ‘막간’으로 이해된 시간입니다. 즉 휴전을 뜻합니다. 전쟁 중에 경험하는 평화입니다.
그 날의 소망은, 오늘의 갈등 속에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바로 직전, 가장 혼탁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가장 불안하고, 전쟁의 위협가운데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는 부르리라…’(사26:1)
참 평화는 ‘주를 신뢰하는 것’, 즉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옵니다(사 26:3-4). 화평은 평화의 수고를 통해 옵니다. 한없이 작은 자신을 인정하며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릴 때, 십자가 고통과 죽음 가운데서도 우리는 화평을 맛보게 됩니다.
진정한 평화란 “주를 의지함으로”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모든 열매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거짓 화평”을 경계해야합니다. 즉,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화평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저는 제일을 하겠습니다.”
특히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이거나, 혹은 부인이 교회를 다니는 것을 막지는 않지만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실상 그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교인이 아닌 사람들, 가정을 잘 이루고 있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이미 부부가 아닌 사람들, 이미 가족이 아닌 사람들. . .
함께 교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생활 속에서 “평화”를 이루어 내야합니다. 화평의 열매를
거두어야합니다. 이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순종해야만 합니다.
사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랑의 수고”가 필요했던 것처럼, “화평”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평화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십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아뢰고 맡기십시오. 인생의 굴곡과
고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할 때, 우리 삶에 화평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❸ 관련설교 – 성령의 열매, 3. 화평
풍랑이 일 때 오히려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고요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권면이 그것입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평정을 잃어버렸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해”를
추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폭풍우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우리는 견고한 내적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큰 선박에는 선장실에 방향을 조정하는 ‘키’ 이외에 ‘자이로스코프’(gyroscope)라는 커다란 원형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은 아무리 파도가 높고 물살이 험해도 배의 수평과 안전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랍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내 인생의 물살과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인생의 수평과 안전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❹ 관련예화 (『성령과 기질』 팀라헤이, 생명의말씀사, 04.05.15)
성령 충만한 삶의 특성인 화평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과의 화평”과 “하나님의 화평”으로 설명했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예수께서 우리에게 “끼치신” 평안은 “하나님과 누리는 평안”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과 누리는 평안은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화평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의 죄가 언제나 그 앞에 버티고 있고, 심판 날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간의 모든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괴로운 두려움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빼앗아 버린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두 번째 화평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 “하나님의 평안”, 마음의 평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앞 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위로자’로 소개하셨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평안”을 주신다는 의미이다.
염려의 해독제, 하나님의 평안은 하나님과 누리는 평안과 달리 그리스도인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 예수께서 친히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평안”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열두 제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배 아래에서 곤히 주무셨다.
12대 1의 비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바다가 거칠어질 때 안달하고 씩씩거리며 염려하는 그리스도인이 열두 명이라면, 내적 평안을 누리며 상황을 돌보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은 한 명에 불과하다. 염려로 밤을 지새우다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상하는
사람이 열둘이라면, “하나님을 믿고” 속 편히 눈을 붙인 후 아침에 가뿐하게 깨어나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에 불과하다.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평안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어려운
상황을 피해 가지는 않는다.) 한결같고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령께서 베푸시는 가장 위대한 은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때 맛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 평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평안을 소유한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❺ 관련예화 (『화평하게 하는 자』 켄산데, 피스메이커, 10.03.03)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은혜를 호흡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과 능력을 지속적으로 들이쉰 후 그분의 사랑, 긍휼, 용서, 힘, 그리고 지혜를 일상생활의 갈등에 내 쉰다. 하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내 쉬는 하나님의 은혜의 호흡을 통해 분노가 소멸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공의를 일으키시고, 회개와 화해를 촉진되는 것을 기뻐하신다.
성경적으로 화평을 이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을 이루시는 사랑과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깊은 열망이 그 동기가 되고 지침이 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고,
그분의 본을 따르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면 갈등을 악화시키는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고, 삶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반격을 부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행한 것에 주목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을 인정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잘못을 간과하고 우리 자신의 과실들을 정직하게 시인하면 우리를 반대하던 자들은 대개 친절하게 반응할 것이다. 긴장이 가라앉으면 진지한 논의, 협상 그리고 화해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화평하게 하는 일은 손상된 관계들을 회복시키고 올바른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협상해야 하는 의무를 수반한다.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대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더 나아가 서로의
관심사를 만족시켜주는 해결책까지 찾게 되면 갈등으로 인해 조각나 흩어진 여러 문제의 파편들이
말끔히 치워지고, 진정한 화평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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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평
화평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건강함과 온전함의 상태로 온화하고 태평함과 화해와 일치로 평화가 오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5:1)고 말씀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5:9) 그러므로 화평은 원수를 사랑함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의’을 낳는 것입니다.
2. 치열한 삶의 한 복판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평화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란한 속에서도 잠들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가 아닌가 합니다.
참 평화는 주를 신뢰하는 것 즉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에서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나 이는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2:14-18)
화평은 평화의 수고를 통해서 옵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맺어야 할 것이 화평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절정인 십자가 한복판에서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십자가 고통과 죽음 가운데서도 우리는 화평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인생의 굴곡과 고통을 내려 노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할 때 우리 삶에 화평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 하나님의 평강을 구하며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며 아뢰어 화평을 누리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평안이 혹시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이름 지어놓은 거짓 화평은 아닌지 심각하게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누리게 된 화평함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내가 깨뜨리고 싶지않은 편안함이 되어 견고한 진으로 더욱더 굳어지게 한 건 아닌지 하나님께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 그리고 하나님의 카이로스와 하나님의 방법에 민감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아빠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숙하고 친밀한 딸이 되도록 제게 좀 쉽게 말씀해 주세요.
-사26;1~4;빌4;4~7-
힘을 잃어 갈수록 염려가 늘어나요..
무엇을 의지하며 사는걸까요?! ㅠ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
주를 향해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자
염려로 무릎을 꿇게 된 시간에
두렴이 담대함이 되고
염려가 기도가 되어
뿌리 깊은나무로 자라가기 위해
성령의 열매 맺으려 힘쓰니
나의 믿음을 성실하게 하소서~
미움이 살인되어 파리 목숨보다
힘없는 생명들~
평화의 조약을 깨는 세상에서...
전쟁의 소문이 늘어나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세워가리라
시32;6 ..경건한 사람이라면 모두
주를 만나 주께 기도할 것입니다.
거센 물결이 일지라도 결코 그를
덮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한 반석되신 여호와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주님의 평강으로
이시간도 임하소서...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