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교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였습니다(고전 2:2).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이며 탁월합니다. 선교는 복음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선교와 하나님 관점의 선교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으로 불렸을 뿐입니다(행 11:26).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로 삼는다는 것은 ‘교리’를 기준으로 범주 안에 있는가 없는가를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선교는 ‘제자도’와 연결됩니다.
제자는 ‘교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우리 안으로 데려오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지느냐의 문제입니다. 교리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주하신 성령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변화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두 시간의 예배와 교리적 지식을 위해 값비싼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온전히 누리고, 영원한 생명을 맛보는 천국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제자로서의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나는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까?
❶ 복음 자체의 능력과 탁월함을 믿고 있습니까?
❷ 예수님 안에 참된 생명이 있음을 믿고 있습니까?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이며 탁월합니다. 선교는 복음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❶ 관련 설교 – 2019 종교에서 관계로 6) 울타리인가, 우물인가
선교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특별한 부르심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았는데,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있는 많은 장점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가 배웠던 학문,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신분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의 일입니다. 지금의 그리스 아테네는 당시 헬라 문화의 중심에 있었고, 당연히 종교적인 면에서도 다신론을 신봉하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아덴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자신 있는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장소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깨어짐을 경험합니다.
사도바울은 상당히 포용적인 입장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철학과 신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설명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식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의 도’밖에 없다는 것이죠.
아주 역설적인 이야기인데, 포용적인 입장에서 배타적인 진리를 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렇죠! 배타적인 십자가의 복음의 내용이 ‘포용적’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 속에 들어올 때 십자가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한 지역과 교리를 넘어 온 우주를 품고 있죠.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십자가의 도’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겠노라고 작정했는데,
그 십자가의 도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돌아가신 김우영 목사님은 복음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설교하시곤 했습니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제자로 삼는다는 것은 ‘교리’를 기준으로 범주 안에 있는가 없는가를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❷ 관련 설교 – 365일 묵상 282 내게로 오라는 말씀 따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관계’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이나 겸손 자체도 추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로지 생명 되시는 주님만을 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매일 세상에 나가서 선하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매일 매 순간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와 은혜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교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❸ 관련 설교 – 묵상레시피 189 제자의 삶은 어렵습니다
몇 년 전 [살아내는 약속]이라는 책을 쓸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계명을 왜 주셨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을 지키는 일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저절로 삶에서 지켜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책에서 썼던 글을 조금 더 옮겨 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많은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당장 재산을 팔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나의 소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삶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소유의 유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제자로서의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❹ 관련 설교 – 2019 종교에서 관계로 6) 울타리인가, 우물인가
저는 ‘선교’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소원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시작됩니다. 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소원으로 세상을 보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선교입니다.
‘선교’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존 오토버그의 책 [인생, 영생이 되다]에 보면, ‘종교적 의미에서의 선교’와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선교’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세상적 기준에서 사회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 특정 교리를 믿거나 특정 교단 혹은 교파에 속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노스 포인트 교회의 앤디 스탠리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을 공룡은 믿지 않지만 자신들만 천국에 간다고 믿으며, 자신들 외에
나머지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은근히 즐기는 도덕주의자요 동성애 공포증 환자이며
과학에 반대하는 비판적인 고집쟁이들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유심히 보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도 단 한 번도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딱 3번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교
안에 있는 한 종파로 취급되기에는 인종적으로 너무 다양해져서 ‘메시아의 사람들’이라는
말로 정의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
예수님은 한 번도 이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인’ 삼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온 세상에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제자’라는 말은 269번 사용되고 있으며,
달라스 윌라드는 “신약은 제자들에 관한, 제자들에 의한, 제자들을 위한 책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댓글을 통한 금전요구는 사기성 스팸입니다.

1. 예수님의 탁월한 복음을 선포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였습니다.(고전2:2)
복음은 그 자체의 능력이 탁월합니다. 선교는 탁월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복음을 선포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선교
주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 자라게 하여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복음화 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영접하고 내주하는 성령과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온전히 누리고, 영원한 생명을 맛보는 천국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제자로서의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탁월한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전도하는 사명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나팔로 사용하심에 감사합니다.
교만과 어리숙함에 쩔어 살 때는 감히...말로서가 아닌 내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겠다고 떠벌렸던 때가 있었는데 낯 뜨거울 정도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불충하고 부족한 나를 그럼에도 제자로 삼으시려고 붙잡고 계심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023년 6/1(목)-예수님 중심의 선교[고전2:1~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5)
복음을 누리고 살다보면 저절로 전도가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전에는 가슴에 띠를 두르고 전도지를 들고 길거리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어떻게 전도를 하던 전도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근데 초대교회 교인들은 믿음 뿐아니라 그 행실과 삶의 모습이 모범이 되고 거룩하여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다고합니다.
우리는 전도나 선교를 내 지혜로 해야 된다는 착각을 하는데~
*예수 믿으세요~!"라는 전도 한마디가 능력이 되어 전도가 되는 줄 묵상하며 아래오바고에서 철학적인 언어로 전도하려다 실패한 바울을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