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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5월 20일 하나님의 뜻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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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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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 신앙의 양태가 너무 하늘 중심인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올리버 웬델 홈스는 “어떤 이들은 너무 하늘만 생각해서 이 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느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체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를 악물고 이 세상의 고통을 참으며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는 날만 소망한다’는 말도 듣습니다. 세상은 잠시 지나는 거처이며 우리는 모두 나그네 인생이라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지나치게 치우쳐 왜곡된 하늘 소망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영성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기보다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 가길 원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도 자신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예수님이 자기 형제자매나 친구들과만 사시지 않고, 원수들에 둘러싸여 사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악하고 무질서한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보시기에 좋았던 하나님 나라, 창조의 순리가 다시금 이 땅에 회복되기를 간구합니다.

주기도문에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 뜻을 하나님 뜻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나라들을 도와주시기를 바라기보다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종으로 살기로 결심해야 한다”(스카이 제서니, 《예수님의 진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뜻을 알리시고, 특정한 상황들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갈망하며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실제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까?

❶ 매 순간,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까?

❷ 세상을 등진 채 기도합니까, 세상을 바라보며 기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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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느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체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❶ 관련설교 – 2022 변화산, 5. 하나님의 뜻 구하기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늘 아버지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형제와 자매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지만, 우리의 많은 신앙의 양태들이 너무나 하늘 중심적이어서,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잘 살아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이런 우리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의 소망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는 비전만을 가지고, 세상에서 고통도 참고 악한 일에 휩쓸리지 않으며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들만 하늘의 소망을 품고 고고하게 살지 말고, 그 하늘의 비전이 이 땅에도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경멸하면, 세상도 우리를 경멸합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명지로 보내주신 이 땅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순서가 놀랍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친밀하시지만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때, 당연히 우리는 그분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크리스천들이 품어야 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무질서한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보시기에 좋았던 하나님 나라, 창조의 순리가 다시금 이 땅에 회복되기를 간구합니다. 

관련설교 – 2022 변화산, 5. 하나님의 뜻 구하기 

오스왈드 챔버스는 거룩한 영성을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갔던 믿음의 선배들에 대하여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우리들이 거룩을 이루는 곳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형제와 자매, 친구들과만 사셨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둘러싼 원수들 한가운데 사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 세상적인 것들이 널려있는 것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악함과 무질서를 볼 때마다 우리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진정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의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원수들이 사라지기를 부활의 주님을 의지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특정한 상황으로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기도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붙들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 뜻을 하나님 뜻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나라들을 도와주시기를 바라기보다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종으로 살기로 결심해야 한다” 

관련설교 – 2022 변화산, 5. 하나님의 뜻 구하기 

우리의 심각한 오해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생각하며 기도할 이유를 놓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정한 상황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누군가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놀랍게도 우리가 그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관련예화 (“생태 신학과 ESG경영”-이호영 교수, 국민일보 기사, 23.01.04) 

예수님 말씀에는 생태 신학의 관점이 다수 드러난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생명체인 “참새 다섯 마리가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할 것”(눅 12:6)이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마 6:29)고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의 귀중함을 일깨운다. 

 

생태 신학은 생태학(ecology)을 기독교적 가치관과 연결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보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기초로 인간과 다른 생명체, 인간과 주변의 무생물 환경의 균형을 추구하는 신학적 접근이다. 생태 신학의 기초가 되는 생태학은 생태계(ecosystem)를 구성하는  

생물과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태학자들은 만물은 상호연결 돼 있고 하나가 파괴되면 다른 것도 존재하기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급속하게 무너트리고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창세기 1장 28절에  

따르면 인간은 이 땅의 모든 것, 즉 생태계를 선하게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의무는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의 보존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끊임없는 개발은 하나님이 주신  

의무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윤리 의식,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선한 다스림을 실천해야 한다. 

 

생태 신학은 인류에게 산업화 시기 이후 지속해온 개발과 소비의 행동 양식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죽음을 극복한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탄소연료에 의존한 성장을 멈추는 것을 죽음에 비유해 볼 수 있고, 신재생 에너지와 탄소배출 감소를 통한 생태계의 회복은 부활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생태 신학은 이 같은 노력으로 창조 세계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미래 세계를 주문한다. 

 

생태 신학은 예수님의 복음을 인간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생태 신학에 따르면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등 피조물에 악영향을 가하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이다. 인간 중심적 자연관(Antropocentrism)이 아니라 창조된 자연의 가치를 지키는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날 각 국가와 기업들이 ‘넷 제로(Net Zero·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과 제거하는 이산화탄소량을 더했을 때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것)’와 ‘탄소중립(Carbon Neutral)’을 선언하고 ESG경영을 주창하고 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행태에 대한 에스겔 선지자의 질책이기도 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생태학자들의 말을 듣고 당위성을 인식하기는 하나 “행하지는 않고  

입으로만 (생태계) 사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어 에스겔 말씀은 “마음으로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며 쐐기를 박는다. 

 

에스겔은 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친환경인 척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과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사회적 책임을 진다고 선전하나 실제로는 이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블루워싱(bluewashing)’을 정확히 비판한다. 이윤 극대화 논리로만 생태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탐욕은 불신앙의 결과이며 영혼이 병들었다는 지적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대가는 후손을 포함한 다른 누군가가 치르게 된다. 자신의 누린 혜택에 따른 비용을 후속 세대와 저개발 국가에 떠넘기는 행위는 비윤리적이고 비성서적인 행위이다. ESG경영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생명 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21세기 최고의 사회 갱신운동(renewal)이다. 

 

출처 :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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