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요?
샤를 드 푸코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눈과 마음은 가시적 현상이나 방법들에 빼앗기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마음을 쏟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은 거듭되는 불신앙과 불순종에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나를 믿지 않겠느냐?”라며 탄식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까요?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탐하며 그곳 사람들에게 압도되었습니다. 두려움에 휩싸이자 하나님을 향했던 시선이 분산되고 방향을 잃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기저에는 ‘의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아낙 자손에게 눌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 자손들이 우리의 ‘먹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확신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과 그분의 강력한 사랑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롬 8:31-39).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습니다.
두 사람 대신 다른 지휘관을 세워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 합니다(민 14:4). 사람을 향한 원망 같아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입니다.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며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멸시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영적인 눈을 떠 하나님과 그 역사하시는 손길을 볼 때, 우리는 더 이상 현상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흔들립니까?
❶ 지금 나를 흔드는 문제와 상황들은 무엇입니까?
❷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확신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요? 샤를 드 푸코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❶ 관련 설교 – 2021 믿음으로 향해 1114. 불신의 옷을 벗으라
「사하라의 불꽃」의 저자 샤를 드 푸코는 프랑스 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가톨릭에 귀의해 수도사가 되었고 사하라 사막에서 원주민을 위해 선교하다가 원주민의 총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가장 어렵습니까? 그 대답은 아마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푸코는 이렇게 자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다.”
참으로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답변입니다.
평소 하나님을 믿는다고 얼마나 자주, 또 쉽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하나님의 법칙보다 세상의 법칙을 더 신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시간, 그 자리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말하는 것만큼 매사에 그 사실을 믿고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건은 현존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부터 시작됨을 잊어선 안 됩니다.
두려움의 기저에는 ‘의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아낙 자손에게 눌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 자손들이 우리의 ‘먹이’라고 선포합니다.
❷ 관련 자료 – “의심생암귀” 뜻
의심생암귀 [疑心生暗鬼]
자기 마음속에 의심이 있으면 그 마음에서 여러 가지 무서운 생각이 솟아 나옴을 이름
: 의심하는 마음에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문)
➌ 관련 자료 – 천로역정 “의심의 골짜기”
출처 : 햇볕같은 이야기 “의심의 골짜기”
‘천로역정’에서 ‘의심의 골짜기’보다 더 위험한 곳은 없다. 그 땅은 피곤한 나그네를 죽음에 이르는 깊은 잠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의 종인 한 사람이 전도 여행을 할 때 갑작스레 마음에 크나큰 실망이 생겼다. 그로 인해 그는 많은 어려움을 당했고, 참으로 혼란하고 고통스런 세상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을 저버렸다고 느꼈다. 그는 한 동굴 안에 들어가 자신의 괴로운 심정과 버린 바 된 상황을 하나님께 자세하게 기도로 올려 드렸다. 그는 계속해서 기도하며 자신의 마음속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 모조리 털어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눈은 동굴 속의 어둠에 익숙해져 사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그와 매우 가까운 곳에 늑대가 그의 새끼와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늑대는 그를 잡아 삼키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원래 젖먹이 새끼를 키우는 어미 늑대는 어떤 맹수보다도 더 흉악한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버림받았다고 여길 때 그를 십분 평안하게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➍ 관련 설교 – [김병삼 목사 설교] 이렇게 믿어라 2 – 염려하지 말아라
출처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66149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비행사가 이런 일을 경험하였답니다. 두 시간 가량 비행을 한 후 그는 기체에서 나는 소음을 들었으며 곧 이 소음이 쥐가 무엇을 갉아 먹는 소리임을 알았습니다. 그의 비행기가 착륙하는 사이에 쥐가 기체내로 들어 와서 그의 비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쥐의 날카로운 이빨이 정밀한 기체를 얼마나 갉아 먹을지를 몰라 그는 몹시 두려운 생각에 잠겼습니다. 처음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떠나온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데도 두 시간이 소요되고 앞으로 착륙할 지점에 도착하는 데도 두 시간이 소요되는 그런 위치에서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쥐는 설치동물이기에 높은 곳에서 적응력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이 사실을 상기한 비행사는 비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1천 피트 상공으로, 또 1천 피트 상공으로, 이런 식으로 상공을 비상하여 고공 2만 피트 높이로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쥐가 갉아 먹는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두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그가 다음 착륙지에 안전하게 착륙하였을 때 기체의 구멍에 쥐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염려는 마치 쥐처럼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갉아 먹습니다. 그러나 이 염려는 하나님의 영역에서 살 수 없습니다. 지극히 높은 이의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염려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염려하지 않는 법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 대신 다른 지휘관을 세워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 합니다(민 14:4). 사람을 향한 원망 같아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입니다.
❺ 관련 설교 – 2021 믿음으로 향해 1114. 불신의 옷을 벗으라
저는 우리 교회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고, 사용하실 때는 꼭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순간, 큰 난관이 닥쳐왔을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영동에서 ‘만나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을 때 정말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다수를 쫓아냈습니다. 신앙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소수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나교회의 역사를 보면서 그때 쫓겨나지 않았다면 결코 잠실 벌판에 천막을 칠 용기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천막에서 시작한 교회가 건물을 사고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던 때, 갑자기 86 아시안 게임선수촌 부지로 선정되면서 교회가 헐리고 갈 곳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때 교인들은 허허벌판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버려진 것 같았던, 뼈대만 남은 건물에서 만나교회는 최고의 전성기를 경험합니다.
분당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던 때, 사람에 대한 시험이 들었습니다. 목회만 하시던 고 김우영 목사님이 교회 정치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쓰러지셨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중환자실에서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일이 바로 18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 하나님과 그 역사하시는 손길을 볼 때, 우리는 더 이상 현상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➏ 관련 설교 – 2021 믿음으로 향해 1114. 불신의 옷을 벗으라
어떤 사람이 실험을 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한 사람이 중간에 서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서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지나갑니다.
이제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두 사람이 중간에 서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서 있습니다. 역시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이제 세 번째 실험을 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그러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기 위해 서 버린 것입니다
➐ 관련 자료 – ‘박연폭포’ 결단의 바위
전북중앙일보 : 결단의 바위 (2009.12.02.)
http://www.j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7446
경기도 개성시 북쪽 16Km 지점에 솟은 천마산 아래에는 박연폭포가 있습니다. 그 폭포를 향하여 가는 길에 두 절벽이 마주보며 만나는 곳이 있는데 그 간격은 약 1미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건너뛰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평지에서의 1미터라면 어린 아이도 건너 뛸 수 있지만 천 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건너뛰자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위를 ‘결단의 바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밑을 바라보지 말고 평지라고 생각하며 앞에 있는 목표만 바라보고 결단을 내려서 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1미터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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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처음 경험한 육신의 질병이 영적으로 다운시켜 힘들어 신앙생활이 안됨을 경험했습니다.
영육간의 강건함을 날마다 구하지 않았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1.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믿음이 흔들려 떨어집니다.
사람들에게 압도되어 두려움에 휩싸여 하나님을 향했던 마음이 약해져 시선이 흔들려 분산됩니다. 그러므로 눈과 마음은 가시적 현상이나 방법들에 의해 마음이 빼앗기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탐심에 마음을 쏟고 기대되는 소망은 우상숭배입니다.
두려움의 기저에는 의심이 있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방향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듭된 불신앙에 불순종에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느냐 하고 탄식합니다.
2.흔들리지 않는 믿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게 하여 행함으로 증인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굳건히 세워 확고한 반석의 믿음이 됩니다.
내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확고히 믿어 아낙 자손이 우리의 먹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확신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과 그분의 강력한 사랑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사랑의 눈을 떠서 하나님과 그 역사하시는 의로운 손길을 볼 때, 우리는 더 이상 현상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올바른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돌보시고 인간은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도우시고 인간은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인간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순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의로운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아 흔들림 없는 믿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영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삶속에서 체질화 되어 실천하는 하나님의 삶을 살아감으로 믿음이 흔들림 없는 반석위에 있는 것입니다. 반석의 확고한 믿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똑같은 일을 보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반이고
무표정, 찡그리는
얼굴이 반이다.
"할머니 노래 한곡 하세요."
해본 적도 없고 못한다고 해서
그럼 이때 도전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담주에는 표정이 좋기도 하고
노래 안 하셔도 같이 앉아 있어 주었다.
인지도 공부하다가 만들기 못하면 탁 집어던지고 나가는 분도 있었다. ^^
꽥 맘에 안들면 소리를 친다.
마음은 착하다고 했다
그냥 인정하라고 하신다.
나에대한 평도 부드럽게
해주셔서 고마웠다.
그건 바로 상대를 인격적으로
충고를 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저 주고 싶어 하시는 엄마 할머니 같았다. 그저 눈에 선하게 생각이 난다.
다른 환경을 만나보니 잘해준 성도가 생각난다. 미안한 맘이 생긴다.
주님은 있는그대로 다 받아 주시는 것같은데...
1과 2가 있다
1도 원망을 했다.
2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 원망을 했다.
독박은 2가 쓴다.
듣는 사람은 듣는대로 안다.
본것은 본대로 안다.
개떽먹고 멍엉 쑥떡먹고 쑥떡 한다고
소리를 친다.
할머니 그게 아니고요~~
모든것이 질투 시기 바라는 것에
맞지않음으로 비난 원망 불신이다.
평상시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갑자기 뭘하게 되면 뜻대로 안되면
가장 나약한 사람에게 명령을 서슴치 않는다.
뭐든 사람이 우선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무시하고 상대도 무시하고
일순 위는 바로 나 자신이다.
안 되면 남탓 잘되면 내탓이라는
우상을 섬긴다.
맘같이 안아서 안절부절 원망이다.
하나님 앞에서 일등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일등이 되고 싶다.
하나님
우상을 타파할 수있는
굳건한 믿음 위에 하나님의 소양과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참 지혜도 더불어 내려주소서.
내 그릇은 종재긴데 대접에 담을 것을 달라고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내 심령을 키워주옵소서.
내 기도가 정말 바른지
살펴주시고 고쳐주소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소서
할렐루야 내 심령을 확장시키소서!
그렇습니다.
배우면 뭐합니까.
내속에 걸림돌이 있습니다.
좋은 것만 보고 전염되게 하소서.
배움의 그릇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