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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4월 29일 최고의 선물,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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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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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 주기를 원하십니다(마 28:9; 눅 24:36).

평안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최선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맛볼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요구하며 명령하시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까? 주님이 궁극적으로 주고자 하시는 것은 ‘평안’입니다.

평안은 ‘관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참된 평안은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누릴 수 있습니다(요 14:26).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주님께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주님의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평안과 다릅니다. 단순히 문제나 근심이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문제는 또 생기기 마련입니다. 물질이나 지위나 안전이나 권세나 사람을 통한 안정감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부족함 없는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평안을 위해 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까?

죄가 분명한데도 변명거리를 찾으며 자기 위안을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임을 전가하거나 상황을 탓하는 것입니다. 나를 정당화하려는 순간, 이기적인 자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정직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눅 9:23). 자기 권리, 자기주장, 인간적 본성 모두를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평안을 찾지 못합니다.

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까?

주님을 떠나 다른 무언가를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기도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아들이라 인정받으셨습니다(막 1:11).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께 나아가 자녀의 권세를 누리십시오. 실수 없으신 하나님의 판단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나는 최고의 선물,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까?

❶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❷ 하나님 아버지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안깁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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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최선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맛볼 최고의 축복입니다. 평안은 ‘관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참된 평안은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부족함 없는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❶ 관련예화 (『존 오트버그의 관계훈련』 존 오트버그, 프리셉트, 18.07.18)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확신과 애착을 갖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확신과 애착을 갖고 살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과 맺은 견고한 연결은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어미와 자식의 관계를 비유로 들어 우리도 하나님과 강하게 애착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달라스 윌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삶의 자연적인 상태는 서로 다른 사람에게 뿌리를 내린 상태다.” 우리는 윌라드가 말하는 “충분함의 공동체들” 속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이 공동체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괜찮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 어떤 인간의 공동체도 모든 것을 괜찮게 ‘만들’ 수는 없다. 오직 성부와 성자, 성령 공동체에 뿌리를 내릴 때에만 상한 개인들이 인간 공동체에서 받은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 치유는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모든 어머니가 자녀에게 하는 가장 흔한 명령이 성경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곁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애착 장애에 빠져 하늘 아버지께서 가장 들려주고자 하시는 말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아버지께서는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이렇게 든든하니 마음껏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랑해 줄 수 있다. 거부나 고통의 풍랑이 닥쳐와도 괜찮다는 것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우리는 그분의 시야에서 벗어날 일이 없다. 귀만 기울이면 언제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❷ 관련예화 (『교회는 관계다』 짐 푸트먼, 생명의말씀사, 17.12.15) 

예수님이 오신 주목적은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시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가 따를 수 있고 따라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자화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과 관련해 예수님은 사랑을 통해 실행되는 믿음에 대한 완벽한 그림을 제시하셨다. 

 

우리는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맺으셨던 관계, 청종하며 순종하는 모습을 본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셨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분은 아버지와 교류하며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셨다. 우리는 이 놀라운 관계를 복음서 전반에서 본다. 제자들은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셨다.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가 여기에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을 때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을 보살피셨다.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고 계속 믿음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셨고, 그들의 실패에도 일관되게 그들에게 신실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계시해 준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는 본보기에 그치지 않으셨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본보기가 되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실 뿐 아니라 그들도 그분을 사랑하게 하셨다. 

 

❸ 관련예화 (『하나님을 눈물 나게 하는 이야기』 김병삼, 프리셉트, 08.05.06) 

“기쁨으로 하고 있는가?” 

 

엄광용씨가 쓴 「세계를 움직인 CEO들의 발상과 역발상」에 한국인 3세로 일본에서 성공신화를 이룬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씨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일본의 명문고인 구르메 대학 부속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컴퓨터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클리에 입학한다. 그리고는 컴퓨터에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사업 자금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최대의 재산은 두뇌를 개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 가지를 결심하게 된다.  

‘그래, 하루에 한 가지씩 아이디어를 개발해 내는 거야!’ 

 

그 후로 하루에 5분씩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후, 그의 노트에는 250건의 아이디어가 기록되었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와 두 명의 사원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3년, 만성 간염에 걸린 그는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도 그는 결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4천권에 달하는 책을 독파하고 병실에 PC와 팩시밀리, 전화 등을 갖춰 놓고 병상에서 회사를 운영해 나가는 집념을 보였다.  

우리는 한 젊은이의 성공 신화를 본다. 어쩌면 저렇게 운이 좋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철저한 삶의 전략과 원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정의씨를 통해 우리가 도전받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인생을 디자인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훈련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이 없이는 풍성한 영적 생활을 만들어 갈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을 훈계할 때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늘 우리의 삶에서 ‘선택’을 요구한단다.”  

선택이란 결국 ‘결단’의 문제와 연결된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삶의 목표를 이룰 수는 없다. 육신적인 삶에 복종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나는 교인들에게 술과 담배를 끊으라고 별로 말하지 않는다. 믿음이 생기면 끊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에 변화의 의지, 신앙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된다는 것 역시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지 못하는 한 기쁨으로 행하기 쉽지 않다. 얼마 전에 어떤 젊은 부부를 상담한 적이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잘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무척 좋은 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분명히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빠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하고 놀아주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으면 좋겠고, 남편이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고 나를 도와주는 것이 기뻤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똑같은 것 같지만 얼마나 다른 내용인가? 하나님의 기쁨의 척도도 이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노동으로 하는 사역, 기쁨을 잃어버린 채 하는 헌신을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기쁨이 되기를 원하시고, 자유로이 종이 되기를 원하신다. 

 

나를 정당화하려는 순간, 이기적인 자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정직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 다른 무언가를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께 나아가 자녀의 권세를 누리십시오. 

관련예화 – 국민일보 기사, 암흑기에 더 빛나는 복음의 본질 –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 (유기성 목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기 직전 피땀을 흘리며 드린 기도이다. 유기성(64) 선한목자교회 목사는 “우리 인생에서 만일 단 한 번 기도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기도를 드리겠는가?”라고 물었다. 내가 아니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나의 자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 코로나 암흑기에 더욱 빛나는 복음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한데, 내 생각이 강하기에 분별이 어렵습니다. 강한 자가 되어야 하고 남보다 탁월해야 하고 그래야 성공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나를 강하게 실력 갖추게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구하기만 하니, 하나님 뜻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겁니다. 

 

누구나 자기 열등감이 심한데 저는 설교 열등감이 강했습니다.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도 남아있고, 사투리 고치려고 노력하니 말투도 느리게 되고. 저보다 탁월한 분들의 설교를 들으면 은혜를 받는 게 아니라 미진한 제가 보여 좌절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것, 멸시받는 것,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란 말씀. 이걸 사흘간 고민하다 성경을 가슴에 끌어안고 푹 고꾸라져 울었습니다. 제 속에 뭔가가 확 바뀌었습니다. 내가 약한 것, 부족한 것, 잘 못 하는 것을 들어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씀에 불필요한 열등감이 사라졌습니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소명은 내가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겁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항상 좌절에 빠지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하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을 알게 되면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주님이 나를 통해 주님의 일을 하시고 계시는구나 알게 됩니다. 이게 복음의 본질입니다.”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16784&code=23111312&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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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물, 평안

평안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최선의 반응하는 자들이 맛볼 최고의 축복은 주님이 궁극적으로 주고자 하시는 평안입니다.

평안은 관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주님과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부족함 없는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주님께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주님의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참된 평안은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누릴 수 있습니다.
나를 정당화 하려는 순간, 이기적인 자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책임을 전가 하거나 상황을 탓하는 것은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인생들에게 평강과 복을 주시며 성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늘 평안하게 해주십니다.
실수 없으신 하나님의 판단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정직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자기의 권리, 자기주장, 인간적 본성 모두를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평안을 찾지 못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편119:165)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여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언3:2) 이것이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라 내 가운데에 평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4.30
김은실
주님은 부활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맨처음 평안하뇨? 라고 물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내게도 물으십니다.
평안하뇨?
질문 앞에 나는 왜 평안을 누리지 못할까?
오늘 하나님의 숨결은 대답하십니다.
주님을 떠나 다른 무언가를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때문이라고~~
나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께 나아가 자녀의 권세를 누리기를 말씀하십니다.

자기 권리, 자기주장, 인간적 본성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오직 실수 없으신 하나님의 판단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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