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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4월 17일 영생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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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16-18,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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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사도신경의 고백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이것이 첫째 사망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고백은 또 다른 죽음을 전제합니다. 영원히 살지 못하는 형벌, 즉 둘째 사망입니다(계 21:8). 영생에는 천국과 지옥이 맞물려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고통과 불의가 없고,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이의 가치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이 있는 곳, 우리가 꿈꾸는 완한 곳이 천국입니다(계 21장). 지옥은 그 반대입니다. 아담 해밀턴은 ‘천국을 택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을 지옥이라고 봤습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자기만족만 찾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C. S. 루이스역시 “지옥은 문이 안에서 잠겨 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옥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구원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됩니다(요 3:18).

우리가 영생을 믿는다는 고백은 ‘죽음 이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세’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묻고,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자들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소망합니다. C. S.루이스의 말처럼 이 땅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영생의 삶에 대한 겉표지(cover page)와도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심판’의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 이 땅에서 해야 할 선택 중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에 담긴 의미를 깨닫습니까?

❶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❷ 나는 ‘영원한 생명’을 선택했습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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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들을 지옥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구원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❶ 관련 설교 – [가정예배 365-2021. 8. 16.] 지옥의 구렁텅이는 누가 팠는가 국민일보 더미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의 불꽃 속에서 몸부림치던 부자는 멀리 아브라함을 보고 애절하게 간청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 구렁텅이는 헬라어로 ‘카스마’라고 하는데 그냥 구렁텅이가 아니고 큰 구렁텅이입니다. 이것은 하품할 때 입을 쫙 벌리는 모양새를 뜻합니다. 이 카스마가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를 딱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카스마 때문에 아브라함이 부자한테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대체 이런 구렁텅이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이 구렁텅이를 파놓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부자 자신입니다. 부자가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파 놓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대문가에 누워 있는데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굶어 죽었어요. 부자가 나사로를 보고 손톱만큼이라도 불쌍한 마음을 가졌더라면 카스마가 조금 메워졌을 것입니다.

나사로를 어떻게 도와줄까, 이런 생각을 품었더라면 카스마가 조금 좁혀졌을 것입니다. 나사로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주었더라면 카스마는 훨씬 좁아져서 건너뛸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카스마는 나날이 벌어져서 결국 부자가 건너갈 수도 없고 아브라함도 건너갈 수 없는, 엄청난 구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카스마는 부자가 살아생전에 만든 것입니다. 지옥이 무엇입니까. 사람들과 마음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간에 다 이 땅에서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 

 

C. S.루이스의 말처럼 이 땅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영생의 삶에 대한 겉표지(cover page)와도 같습니다. 

❷ 관련 설교 – 2020 이렇게 믿기로. 나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2 

오래전부터 미국의 장례식이나 임종을 앞둔 선도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800년대에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 한 의사가 죽음을 앞둔 환자의 집에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개를 옆자리에 태우고 마차를 끌고 갔습니다. 의사는 항상 자신의 반려 견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환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눈이 오기 시작했고, 의사는 개를 집 앞에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지만 환자는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선생님 두려워요. 죽으면 어떻게 되지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밖에 있는 의사의 개가 현관문을 긁으며 짖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저 소리 들리시지요. 제 개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짖는 겁니다. 우리 개는 이 집에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 개가 아는 단 한 가지, 주인이 이 집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안에 있다면, 그곳은 안전한 곳이라는 겁니다. 내가 죽음 다음에 대해서 말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라고 의사는 말했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 이 땅에서 해야 할 선택 중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❸ 관련 칼럼 – [겨자씨] 신의 한 수 

일본에 프로바둑기사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있습니다. 한번은 그가 라이벌과 대결을 벌이던 중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장고(長考)에 들어갔습니다. 깊은 생각에 고심하다 무려 5시간7분 만에 한 수를 놓습니다. 총 제한시간 8시간 중 상당량의 시간을 단 한 수를 위해 몰입한 그는 결국 그 대국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던 그 수는 ‘신의 한 수’와 같았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현명하고 대단한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이 그런 타이밍임을 깨닫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 한 해 우리 일상 속에서 신의 한 수가 필요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어쩌면 매 순간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신적인 타이밍 속에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16) 매 순간 바른 선택을 하고 옳은 길을 걸으십시오. 세월을 아끼고 신의 한 수와 같은 최고의 결정을 날마다 이뤄 가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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