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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4월 11일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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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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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참 인간이신 예수님은 목마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음’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히 2:14-15). 제 아무리 착하고 성실한 사람도 죄 없는 자가 없습니다(롬 3:10-12). 모두가 자기 죄로 인해 죽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죽음으로 우리를 속량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십자가에서 친히 감당하셨습니다(히 4:15). 예수님도 아프시고, 힘드시고, 목마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십자가 위에서 울려 퍼진 위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 직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닙니다. 끝이 아닙니다. ❰메시지 성경❱(영문)의 표현이 더 와 닿습니다. “It’s done… complete.” 예님은 이 땅에서 이루실 모든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눈물 흘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문다면 반쪽짜리 복음에 불과합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로 인해 부활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이에 쓰인 헬라어는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이 말은 4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첫째, 종이 주인이 맡긴 일을 다 마쳤을 때, 둘째, 제사장들이 제물을 검수하며 흠 없고 온전한 제물임을 확인했을 때, 셋째,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완성했을 때, 넷째, 상인들이 값을 다 지불했을 때 ‘테텔레스타이!’라고 외쳤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흠 없고 온전한 제물로 자기를 단번에 드리셨으며 십자가에서 모든 죗값을 치르셨습니다(히 9:26). 예수님의 탄생과 모든 사역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아름답게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❶ 죽음, 슬픔, 고통, 눈물 등의 상징일 뿐입니까?

❷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깨닫습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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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인간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십자가에서 친히 감당하셨습니다(히 4:15). 예수님도 아프시고, 힘드시고, 목마르셨습니다.  

❶ 관련 자료 – 가톨릭 성인자료실 “다미안 드 베스테르”  

https://maria.catholic.or.kr/sa_ho/board/board_view.asp?menugubun=saint&ctxtOrgNum=&ctxtOtherMenu=&ctxtOtherID=&ctxtSubMenu=pds&infogubun=info&orggubun=101&bbsgubun=pds&infoid=232&bbscount=6&maingroup=&gubun=&seq=&group_id=&sub_id=&page=1&id=13091&table=gnattboard&user_auth=&RecHostcle=&getID=&getSeq=&Mode=&keyfield=title&key=&ctxtHigh=&ctxtLow= 

 

다미안 신부가 33세 되던 해의 일이다. 마우이 섬의 와일루쿠 거리에 레오노르 신부가 새로 성당을 지었는데, 메그레 주교가 이것을 천주교 선교의 좋은 기회로 삼고자 여러 섬에 흩어져 있는 신부들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축성 미사를 올렸다. 미사를 올린 다음에 메그레 주교는 몰로카이 섬의 북쪽 작은 반도의 칼라우파파라는 문둥이 마을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그곳에 가서 일할 신부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33세의 다미안 신부는 그 자리에서 그곳에 갈 것을 청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미사를 올린 다음에 메그레 주교는 몰로카이 섬의 북쪽 작은 반도의 칼라우파파라는 문둥이 마을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그곳에 가서 일할 신부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33세의 다미안 신부는 그 자리에서 그곳에 갈 것을 청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 당시 하와이의 왕인 카메하메하 5세는 모든 국민을 검진하여 문둥병 환자라는 것이 확인되면 모두 몰로카이 섬으로 격리시켰다. 칼라우파파 마을은 뒤쪽이 6백 미터의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누구도 탈출할 수가 없는 지역이었다. 

 

1873년 5월에 다미안 신부가 이 섬에 도착하였는데, 약 8백 명의 문둥이 가운데 40%가 영양실조로 죽은 뒤였다. 정부가 양식을 보내 주겠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거의 말뿐이어서 그 참상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몰로카이 섬은 희망이 없는 문둥이들의 윤리 도덕이 없는 생활로 각종 범죄가 들끓는 마의 소굴이었다. 몰로카이에 도착한 다미안 신부는 머무를 곳이 없어서 큰 나무 밑에서 며칠 동안을 지냈다. 처음에 문둥이들은 다미안 신부에 대해서 냉담하였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1년 동안에 200개의 관을 손수 짜야 했는데, 문둥이들의 시체를 묻기 위해서였다. 

 

다미안 신부는 참으로 초인적인 활동으로 성당을 짓고 선교를 하고 송장을 묻고 그들의 생활을 돕고 치료를 하면서 질서를 찾아갔다. 거의 초인적인 체력이어서 깡패들도 굴복하였고 마지막에는 회개하여 신자들이 되었다. 한국 사람들도 10여 명이 그곳에 수용되어 있었다는 통계가 남아 있다. 다미안 신부는 "예수님은 이 문둥이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렸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미안 신부는 "3백여 채의 건물에 지금은 흰 회로 하얗게 색칠을 했고 전과는 달리 위생적으로 모두 개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날마다 송장 묻는 일과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로 하루하루가 몹시 짧았다. 

 

다미안 신부는 16년 동안 초인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49세의 나이에 참혹한 문둥이로 세상을 떠났다. 말년에 마리안느 수녀와 남북 전쟁에 참가하였던 닷던 대위도 이곳에 와서 다미안 신부를 도왔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니지 아니하고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봉사의 업적을 그는 인류사에 남겼다. 

 

 

➋ 관련 자료 – 쥬빌리교회 주일설교(2018.9.6.) (❶ 자료의 연장) 

http://jubileechapel.org/sermon-preaching/?mod=document&uid=3 

칼 라우파파에 온 지 6개월 후 다미엔은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물겠다고 청원했고, 주교는 이를 허락했다. 그는 이미 이 때 유럽에 있는 그의 형에게 “나는 나환자가 되어 모든 나환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한다”고 편지했다. 하지만 부지런히 사역하던 다미엔은 어느 날 참 자유와 평화에 대해 설교하자 나환자들이 “당신 같이 성한 사람이나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지 우리에게 무슨 자유이며 평화이냐”고 빈정대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다미엔은 자기 방에 들어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하나님이여, 나를 나환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건지기 위하여 나환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는 부지런히 나환자들을 위해 일했다. 

 

몰로카이에 온지 11년이 지난 1884년 12월, 다미엔은 목욕물을 준비하다가 뜨거운 물이 발에 쏟아져 물집이 생겼지만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나병에 감염된 것이었다. 나병에 걸렸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다미엔은 주교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지금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나의 빛나는 희망은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주교님을 땅 위에서는 뵐 수 없게 되었고 천국에 가서나 뵈올 것입니다. 저를 위하여 더욱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로부터 5년 후, 1889년 4월 15일 아침, 다미엔 신부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나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➌ 관련 자료 – “하나님이 한 사람으로 온다는 건”(2022.12.3.) 뉴스엔조이 탐독의 시간 

                『성육신』 월리엄 월리몬 저 (비아)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4918 

 

성육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놀라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새로운 길’이 우리에게는 새롭지 않은 ‘인간’이라는 길에 있다는 모순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 허를 찌른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참으로’ 인간이시다. 교회는 이 모순 속에서 꾸역꾸역 전진해 왔다. 하나님과 ‘거의’ 같은 분(양자설), 하나님처럼 ‘보이는’ 분(가현설)이 아니며, 훌륭한 ‘피조물'(아리우스주의)도 아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참으로 하나님이며 참으로 인간이라는 이 모순을 손쉽게 혹은 억지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 모순 자체를 끌어안기로 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 관한 서로 다른 두 속성을 억지로 꿰맞추거나 심하게 단순화시키지 않고 ‘맹렬히 적대적인 두 속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경이롭게 결합된다는 지혜를 발휘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89~90쪽)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았지만, 동시에 우리와 전적으로 달랐다. 윌리몬은 교회가 이 모순을 해결하기보다는 그 모순이 발생한 이유에 주목했음을 알려 준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대답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가 그 이유다.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그가 우리 중 하나가 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를 현재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닙니다. 끝이 아닙니다. ❰메시지 성경❱(영문)의 표현이 더 와 닿습니다. “It’s done… complete.”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이루실 모든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❶ 관련 설교 – 2011년 십자가 위에서 6, 7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최신식 주름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잠 잘 때 눈이 잘 감기지 않는답니다. 잠자다가 밤중에 깨서 남편이 그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놀랄 일이겠습니까? 

주름을 제거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주름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어느 때, 우리들이 “추하다!”라는 표현을 합니까? 

생명이 없는 것이 생명 있는 것처럼 가장 할 때 그렇지 않은가요? 겨울에 가장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가,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그런데 철지난 크리스마스트리, 눈 맞고 눈 녹아 먼지가 쌓인 채 길거리에 버려진 트리가 얼마나 추합니까? 

전구도, 장식도 생명이 없는 것이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추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생명이 없이 사는, 아니 생명을 연장하는 삶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도전이 무엇인가요? 얼마나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실패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➋ 관련 설교 – 2011년 십자가 위에서 6, 7 

얼마 전에 나온 영화가 있습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아니 영화라기보다는 정말 아름다운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꽃 같은 청춘을 아프리카에서, 정말 보석 같은 달란트를 그 곳에서 다 쓰고 간사람.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암으로 세상을 떠나야 하다니요, 

그런데 아무도 그 사람을 실패자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심문하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이 허무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말이 “It’s done. . .complete"라는 아닐까요?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➋ 관련 자료 – 2011설-설교2-다 이루었다.  

1. 메시야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구약성경에만 해도 직접적인 것만 350여 회 기록 되었고, 간접적인 것까지 합하면 450여 회 기록되었습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부터 시작해서 동정녀에게서 나실 것 /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 /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실 것 / 그의 이름은 예수라고, 임마누엘이라고 불리울 것 / 그가 태어난 직후 애급으로 피난가실 것 /  

어린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것 / 은 30냥에 팔릴 것(29전도, 금도 아님) / 나무에 달리실 것 / 범죄자중 하나로 간주 될 것 / 마지막에 용서의 기도를 드릴 것 / 하나님에게 조차 버림받아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으실 것 / 마지막에는 고통속에 목이 갈하여 초를 마시우게 될 것 / 그의 옷은 제비뽑을 것 / 부자의 무덤에 장사 될 것 / 부활 / 승천을 비롯해서 / 재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언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예언이 성취되면서 주님은 이제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2. 율법의 성취입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은 율법의 성격상 언제나 완전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을 깨뜨려 피할 수 없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법을 깨뜨린 사람은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법이 만족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계속해서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서 속량하셨다는 말이 ‘테텔레스타이’입니다. 빚은 다 갚아준다는 말입니다. 죄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지고 있는 부채와도 같은 것입니다.   

 

3. 구원의 성취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시는 외치심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구원이 완성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은 이제 구원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은 구원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너무도 완전하여서 인간이 손 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탤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거저주시는 선물이 된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구원을 못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구원의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은 받았지만 자주 패배하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은 구원의 즐거움을 다시 회복하실 뿐 아니라 부활의 능력으로 강력한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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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음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능력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라.”(마10:45)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보혈의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고난의 잔을 가득 채워지매 희생의 사랑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권세와 승리함으로 이제 죄가 용서 받는 사랑의 길이 열려졌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향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이루실 모든 일을 완수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울려 퍼진 위대한 선언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로 인해 부활도 있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이에 쓰인 헬라어는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이 말은 4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첫째, 종이 주인이 맡긴 일을 다 마쳤을 때
둘째, 제사장들이 제물을 검수하여 흠 없고 온전한 제물임을 확인 했을 때
셋째,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완성했을 때
넷째, 상인들이 값을 다 지불했을 때, 테텔레스타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모든 사역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아름답게 완성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2023.04.12
김은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시는 외치심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구원이 완성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은 이제 구원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

모든 성경이 한결같이 가리키고 있는 진리는 바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신 이 구원입니다.
그 구원이 믿어지는 기적이 어쩌면 내겐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반면 남편은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리려 찾아간 목사님의 질문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모태신앙인 남편의 그 모습이 의아했는데 나랑 살면서도 여전히 그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대조적인 삶의 모양을 보면서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 성령님의 통치 안에서 얼마나 자유하고 평안한지를 전하는 인생으로 쓰임받기 원합니다.
2023.04.12
이명진
#1.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It’s done… complete”(요 19:30)

생각할수록 예수님의 선언은 위대합니다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했던 분이 누굴까요?

부처님도 알라도 공자님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돌아가시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대한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But now he has appeared once for all at the end of the ages
to do away with sin by the sacrifice of himself.

제가 죽는 날 어떻게 감히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다 하고 가니까! 다 이루었다’라고
고백하며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에서 희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고백을 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20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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