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인’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내 삶의 주인이 바뀝니다. C. S. 루이스는 “예수께서 사랑으로 나를 정복해 버리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의 죄와 죄 된 옛 사람은 모두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나도 새 생명을 얻었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께 내 마음과 삶을 열어 드릴 때, 예수님은 거룩한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하십니다(계 3:20). 이제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사는 예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삶의 목적’이 바뀝니다.
이제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과 기준대로 살아갑니다. 정말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의 말씀에 따르게 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참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히 11:38). 하나님을 따름으로써 하나님 크기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신뢰의 대상’이 바뀝니다.
예수를 주로 삼는다는 고백은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분이 진정 내 삶의 주인이시라면, 모든 삶을 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포기와 희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 자는 겸손히 무릎을 꿇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됩니다. 한없는 사랑과 은혜, 놀라운 생명과 능력이 내 삶 전체를 덮습니다. ‘주 되심’의 고백 안에서 우리는 성도의 견인, 즉 우리를 완전한 은혜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합니까?
❶ 나는 매 순간, 모든 사안에 주님을 떠올립니까?
❷ 나의 믿음은 행함으로 연결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내 삶의 주인이 바뀝니다.
❶ 관련 설교 – 2020년 변화산 사도신경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중에 하나가 출애굽기 3장에 나와 있는 ‘모세의 소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모세는 자신의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양을 치며, 거친 돌길을 다닐 때 신었던 신발입니다.
하박국 2장 20절에 보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가만히 이 말씀을 묵상해 보세요. 우리의 가슴 속은 수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소리들은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그 모든 소리를 잠잠히 하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삶의 주인이 바뀌면 새로운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과 기준대로 살아갑니다. 정말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의 말씀에 따르게 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❷ 관련 설교 – 2021 365일 묵상 [주님은 나의 최고봉] 74 순종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셨다면 이제 새로운 주인이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지금 ‘주님께 순종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배하는 세력이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즉, 내가 어떤 것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면, 그 세력에 나를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나’의 종이라면, 내가 나에게 자신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명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나를 양도했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기심에 나를 내어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욕에 나를 내어주고 나면, 나는 정욕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한 번 내어준 것에 대하여 ‘종’이 되는 순간 그곳에서부터 헤어 나올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할 때, 우리의 삶을 주님께 양도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이기심에 자신을 내어줬다면, 이 모든 세력을 깰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께 우리를 양도해야 합니다.
(다음 장에 계속)
그분이 진정 내 삶의 주인이시라면, 모든 삶을 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❸ 관련 설교 – 2020년 변화산 사도신경
‘전적 신뢰’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니 그 분께 내 삶을 맡기겠다는 믿음입니다. ‘주’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 삶에서 순종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차원에서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 삶에 전인격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된 사람 하나하나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도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거짓입니다.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예수님을 고백함으로 일어나는 일, 세상을 당황하게 할 만한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❹ 관련 예화 – 헨리 나우웬 [예수의 길]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시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그분을 따르는 삶을 의미부터가 다르다. ‘나’를 떠나 ‘하나님’을 향하라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을 우리 존재의 중심에 모시라는 부름이다. 기꺼이 ‘나’를 내려놓고 점차 ‘주님, 제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라고 아뢰는 것이다.
이는 자아를 찾는 길이 아니라 자아를 비우고 버려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내 중심을 내어 드리는 길이다. 예수님은 평생 자신을 점점 더 버리심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두셨다.
“나를 따르라”라는 그분의 말씀은 이런 뜻이다. “자아의 자리를 떠나라. 부모와 형제와 익숙한 집과 소유를 떠나라. 네가 중심인 너의 ‘나 세상’을 떠나 예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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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님, 나의 주인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은 내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나의 죄와 죄 된 옛사람은 모두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었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내 마음과 삶을 열어 드릴 때 예수님은 거룩한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 새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의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사는 예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주로 삼는다는 고백은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분이 진정 내 삶의 주인이시라면 모든 삶을 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 놀라운 생명과 능력이 내 삶 전체를 덮습니다. ‘주 되심’의 고백 안에서 우리를 완전한 은혜로 기쁨의 삶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합하여 선을 이르는 선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믿습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여 순종하는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면?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
어제는 입학식, 개학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아침 10시 30분에 일찍 하교했습니다
오늘 처음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첫 시간이어서요
자기소개서를 줘서 쓰게 한 후 발표를 시켰습니다
올해 학업 중점 계획, 작년에 힘들었던 점, 올해 고치고 싶은 점,
나의 장점 등 여러 항목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발표하는 걸 들었는데요
작년에 수면 패턴이 깨져서 힘들었다,
작년에 원격 수업이 줄며 일찍 일어나야 해서 힘들었다 등
수면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올해 고치고 싶은 점도 잠을 줄이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제가 코멘트를 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 5일 전에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상 시간이 제일 중요하대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해”하며 불라불라 설명했습니다
(기사에서는 그 이유를? 정해진 기상 시간이
신진대사, 피로를 느끼는 시간을 결정하는 체내 시계를
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늦게 자도 기상 시간만 매일 동일하게 유지하면?
배고프거나 졸리거나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잘 생산하게 되고
늦게 자더라도 잠을 잘 잤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몸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저는 국어 선생님입니다
제가 수면에 대한 설명을 하려니 얼마나 신뢰성이 떨어지겠습니까..ㅋ
그래서 제가 계속 “전문가가 그러는데..”,“박사가 한 말인데..”라는 표현을
구질구질하게 덧붙였습니다
수면에 대해 고민이 많은 학생들이 제 말을 신뢰하면?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따르는 게 중요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국어 선생님의 말이잖아, 하며 별로 신뢰하지 않으면?
제 말이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을 듯합니다
여러 정보, 여러 말들을 듣지만 결국 우리가 취사선택하는 건?
신뢰하는 대상의 말입니다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오늘 묵상집에서도 예수님이 주인이 되려면?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신뢰의 대상이 바뀝니다
예수를 주로 삼는다는 고백은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77쪽)
주님을 주로 삼는다는 고백은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주님! 저는 누구의 말, 누구의 조언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신문 기사, 전문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지 않게 해주세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장거리 운전할 일이 있어 가는 길에 유투브를 통해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찮게 눌렀는데 같은 본문이어서 좀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새 생명이 들어오면 입덧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 입덧이 없다면 가상임신이라는 예가 뇌리에 남았습니다.
이질감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나는 혹시 새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있다고 착각하는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나만의 상상이고 착각이라는 겁니다.
어제 목요찬양집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20대 중반 정도의 여자청년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두손들고 큰 동작으로 손뼉쳐가며 열심히 찬양을 할 때도 사실 너무 자유스러워서 옆자리가 불편했는데 앉는 순간부터 다리를 꼬고 있더니 목사님의 기도 인도에 기도하면서도, 말씀 들을 때도, 심지어 앉아서 손을 들고 찬양할 때도 꼬고 있어서 집회에 집중하려고 스스로를 얼마나 다스렸는지요.
뭘까? 저 청년의 마음은...
세상 청년과 구별되어 이 밤에 예배의 자리까지 찾아온 그 마음은 뭘까?
두 손 들고 찬양하는데 다리를 꼬는 의미는 뭘까? 주님을 찬양하는 걸까? 자신의 선해 보일 행동을 찬양하는 걸까?
정죄하지 않으려고, 내 예배에 집중하려고, 나를 이 시간 이 자리에 부르는 나의 주님의 마음을 알려고 참 애썼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예전의 나는 없고 예수로 사는 모습이어야 할텐데 여전히 육으로도 영으로도 변하지 않는 내 목의 곧고 뻗뻗함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
이제는 종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심장으로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다스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