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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3월 26일 십자가, 죽음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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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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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기독교 영성의 꽃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무리는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을 보며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했습니다. 무리는 가난과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줄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를 떠올렸습니다(슥 9:9).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세상을 화평하게 하려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고 박해당하는 길, 죽음의 길로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고난보다 영광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니 고난에 동참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 죽음을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 대속으로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눅 9:51).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과 환호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향해 가는 첫걸음, 곧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죽으라!’ 죽는 자만이 부활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죽음으로부터 거듭남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새 생명은 십자가와 십자가 죽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십자가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까?

❶ 부활보다 십자가가 먼저임을 깨닫습니까?

❷ 죽음으로부터 나의 사명이 시작됨을 깨닫습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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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는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을 보며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했습니다. 무리는 가난과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줄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❶ 관련설교 – 2010 종려주일에-죽으라구!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여리고부터 예루살렘 가까이 감람산에 이르셔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환영 인파가 있었습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며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찬송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자손이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어쩌면 로마의 지배에서부터 구원할 ‘정치적인 왕’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그들이 안고 있던, 육적인 모든 문제들, 육체적인 가난과 질병, 정치적인 압박, 사회적인 혼란, 그리고 종교적인 자유의 모든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해줄 그런 왕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민중의 기대를 더욱 충족시켰던 것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모습이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 장면이 어쩌면 ‘만왕의 왕’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미 스가랴 9장 9절에서 예언되었던 그 모습이기에 사람들을 더욱 흥분시키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 죽음을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 대속으로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관련설교 – 2010 종려주일에-죽으라구!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 기쁜 날을 영광의 날로 지키지 않고, 수난주간의 시작으로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우리들의 의문이 있는 것과 동시에 기독교의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가고 계실 때, 그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요 죽음의 십자가인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고난보다는 영광을 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사역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우리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을 자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영성의 꽃은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죽음으로부터 거듭남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새 생명은 십자가와 십자가 죽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관련설교 – 2010 종려주일에-죽으라구!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며 십자가만을 생각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만 했던 예수님의 심정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굳은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수평으로 펼쳐져 있는 십자가에서 팔을 벌리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만큼 사랑한단다, 아무리 팔을 뻗쳐도 만날 수 없을 만큼 많이 사랑한단다. 그리고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내가 죽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내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살아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면, 모든 이들의 성질을 죽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이번 수난 주간에는 이 십자가의 비밀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관련예화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팀 켈러, 정성묵 옮김, 두란노, 13.02.18) 

“죽음으로 세상 권력을 이기시다” 

예수님의 죽음은 폭력에 의한 죽음이어야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고 말한다. 이는 기적에 의한 피 흘림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피’는 자연적인 죽음 이전에 목숨을 내주거나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목숨은 이 세상에서 치를 수 있는 가장 비싼 대가다. 예수님이 목숨을 내놓으셔야만 죄의 빚이 청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빚 청산이 아니었다. 일종의 폭로이기도 했다. 

유대 대제사장과 서기관, 로마 통치자들은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예수님께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는 불의를 자행했다. 십자가는 정의와 진리가 아닌 권력과 압제를 추구하고 부패를 일삼는 세상 체제의 진면목을 폭로한다. 세상의 지배자들은 예수님을 유죄 판결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유죄를 드러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추태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의 속성도 드러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분이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아들인 덕분에 그분과 우리를 옭아매던 죽음의 마수가 풀렸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가치를 완전히 뒤엎어 용서를 이루셨다. 그분은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으셨다. 부패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지 않으셨다. 권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낮아짐으로써 승리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권력 추구와 남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세상 권력은 패배했다. 세상 체제의 마법이 깨졌다. 

 

세상의 부패 권력은 많은 도구로 사람들을 겁주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무서운 도구는 죽음이다. 언제라도 우리를 죽일 수 있는 대상 앞에서 우리는 겁을 먹고 그 대상의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으니 그분을 만난 사람에게는 최악의 죽음조차도 최상의 선물일 뿐이다. “얘야, 이제 일어나렴.” 죽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죽음은 무시무시한 힘을 잃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사랑 속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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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죽음이 시작이다

1. 십자가란
예수님께서 사명을 위해 향하는 목표는 십자가입니다. 무리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는 메시아의 상징입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를 떠오르게 하는 표징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세상을 화평하게 하려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길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고 박해당하는 길, 죽음의 길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 죽음을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 대속으로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향해 첫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죽는 자만이 부활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죽음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시작됩니다. 새 생명은 십자가와 십자가 죽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 십자가는 영성의 꽃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에 내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십자가 죽음은 세상의 죄는 죽고 새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십자가의 영성은 영에 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을 말합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사는 십자가의 생명의 꽃입니다.

십자가 죽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거듭나 새 사람 새 생명으로 부활되어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 새 생명으로 천국의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3.27
삭제된 묵상입니다.
김은실
"또다시 찾아오는 고난주간~때가 됐군!"
오늘 시작되는 묵상 제목을 보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의례적인 식상한 십자가의 복음처럼 들려졌습니다.
주일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고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부 우리 반 아이의 돌발 행동을 보며 "얘도 질풍노도를 겪는 때가 됐군!" 생각했습니다.
학년 쌤들 모임을 통해 올해 많이 변하고 새로워지는 청소년부 전체적인 분위기를 듣고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만청 예배를 드리러 가서 이용규선교사님의 전도서 말씀-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로 시작되는 본문을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번 마주하게 된 "때"를 통해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려는 뜻을 묵상해봅니다.
인간의 때와 인간의 방법과는 너무도 다른 주님의 시간, 주님의 방법~
십자가의 고난!
[이 사건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가치를 완전히 뒤엎어 용서를 이루셨다. 그분은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으셨다.]

꼭 이겨야만 되는 나의 본성, 세상의 가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질 수 있는 2023년 사순절이기를 소망해봅니다.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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