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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3월 2일 예수님은 ‘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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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13-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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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신적 존재, 즉 메시아임을 나타냅니다.

한 분 하나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믿는 믿음에는 핍박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충돌하고, 온 세상의 왕과 세상의 권세들이 충돌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큰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익투스’라는 물고기 문양으로 자신의 정체를 은연중에 알렸습니다. 익투스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헬라어 앞 글자를 딴 단어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이름에 담긴 놀라운 의미와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헤르몬산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물이 흐르는 아름답고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바쳐진 도시였으며, ‘판’(Pan)을 섬기는 거대한 신전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권력과 물질, 화려한 우상 앞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주일 예배 시간에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와 성공과 부 앞에서 예수님을 실제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찰스 콜슨은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1세기에 만약 당신이 공공장소에서 ‘예수는 하나님이시다!’를 외쳤다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예수는 주시다!’라고 외쳤다면, 이것은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다.” 당시 ‘주’(퀴리오스)는 황제를 칭하는 호칭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부르는 것은 물질과 소유와 삶의 모든 ‘주권’이 주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와 교회에 국한된 주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때는 일주일의 하루, 예배 시간만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라는 고백은 곧 나의 전 존재를 맡기고,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로 보고 듣고 선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고백합니까?

❶ 신앙과 삶, 모든 영역의 주님으로 고백합니까?

❷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며 방식입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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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❶ 관련 설교 – 2020년 변화산 사도신경 

  예수님께서는 왜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 도시는 헤롯 빌립이 로마의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도시입니다. 지중해 연안에 있던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붙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바로 그 도시, 헤롯 빌립이 로마의 황제에게 ‘가이사가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헌정한  

도시에서 예수님이 물으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고백하기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죠. 세상 사람들이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는 도시와 세상에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요? 

 

 

당시 ‘주’(퀴리오스)는 황제를 칭하는 호칭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부르는 것은 물질과 소유와 삶의 모든 ‘주권’이 주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❷ 관련 설교 – 2020년 변화산 사도신경 

  당시 로마는 유럽으로부터 중동을 거쳐 북아프리카 해안에 이르기까지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속국들이 있었는데, 각자의 토착 종교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는 각 지역의 종교와 문화를 억압하기보다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허락하려는 정책을 써왔습니다. 단, 로마에 세금을 내고 ‘가이사는 주시다’라는 고백을 한다면 말입니다. 무엇을 해도 좋지만 가이사가 ‘주권자’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는 주시다’라는 고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이들은 “예수님이 주시오.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명백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는 주’라는 고백은 ‘다른 주는 없다’ 즉, 가이사를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주’라는 고백은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것이며 그것이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든지 기쁘게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❸ 관련 예화 –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들아,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하고, 네 자신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네게 해롭다는 것을 알라. 어떤 것에 대하여 네가 사랑과 애정을 쏟는 정도만큼, 그것은 네게 들러붙게 될 것이다. 

너의 사랑이 순수하고 진실하며 합당한 것이라면, 너는 그 어떤 것의 포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네게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탐하지 말고, 네게 걸림돌이 되거나 내면의 자유를 빼앗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유하지 말라. 

네가 원하거나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내게 있는데도, 네 자신을 내게 온전히 맡기지 않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예수는 주’라는 고백은 곧 나의 전 존재를 맡기고,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로 보고 듣고 선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❹ 관련 예화 – 오스왈드 챔버스 [주의 형상을 본받아] 

  주님께 당신의 ‘마음의 보좌’를 드려라. 그러면 주께서 당신을 통해 주님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럴 때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인식하게 된다. 인간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善)이 드러날 때 절대로 착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어떤 특징을 볼 때 그들은 그러한 특징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고상함과 다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닮은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선함은 주님의 ‘친절’이요, 주님의 ‘인내’이며, 주님의 ‘순결’이다. 결코 사람의 것이 아니다. 경건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인간적인 속성이 뒤로 물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향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❺ 관련 예화 – 오스왈드 챔버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내가 보는 것은 오직 예수님, 예수님만 영원히, 

모든 것 중에 예수님만 보네. 

하나님께서는 내게 대답할 기회를 주셨다네. 

나는 영원한 선택을 하였네. 

나의 주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로. 

내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한  

그 무엇도 내 영혼을 주님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네. 

나는 외로운 길을 택하였지만  

그 길이 거칠고 험난하더라도 

무시받고 버려진다 할지라도 

주님, 나는 주님과만 인생을 함께 하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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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창
♡예수님은 “주” 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신적 존재, 즉 메시아임을 나타냅니다.
한 분 하나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믿는 믿음에는 핍박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충돌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이름에 담긴 놀라운 의미와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권력과 물질 화려한 우상 앞에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물으십니다.
세상의 가치와 성공과 부 앞에서 예수님을 실제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주’로 부르는 것은 물질과 소유와 삶의 모든 ‘주권’이 주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와 교회에 국한된 주님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라는 고백은 곧 나의 전 존재를 맡기고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로 보고 듣고 선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보고 듣고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3.03
최주창
예수님은 “주” 이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왜 주 이신가?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예수의 탄생을 고하여 하늘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는 평화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는 30세경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금식기도 하셨다.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복음을 전파 하였습니다.

예수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선고 받고 이튿날 아침 십자가를 지고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며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 거기서 강도들과 함께 신성모독 하였다는 중죄인으로서 십자가나무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사흘 만에 올리브산(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 후 재림하여 마리아 제자 등 사람들에게 나타나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11:25-26)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재림하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변모하여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같이 눈부셨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또 같은 분이시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보며 그 분의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여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진리를 받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한복음13:13-14)
2023.03.03
김은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아팠습니다.
잠을 잘못 잤나? 생각하며 대수롭지않게 하루를 보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범위가 넓어지고 할 수 없는 동작이 생겨서 파스를 붙치고 지내다 어젯밤에는 네이버에 증상을 검색했더니 오십견 같았습니다.
오늘은 출근 전에 정형외과에 먼저 들러서 X-ray 를 찍고 의사쌤의 여러 가지 지시를 따라 증상과 처방을 받은 결과 내가 검색했던 게 아닌 급성으로 근육이 경직되고 염증이 있다고 주사에 물리치료에 약처방까지 받았습니다.
내 몸이지만 나는 내 몸을 잘 아는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왜 아픈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어떤 습관을 버리고 취해야 하는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조차 내가 무엇 하나 할 수 없는데 내 영에 대한 주권을 주되신 예수님께로 완전히 이양하지 못하는 이 연약함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예수는 주’라는 고백은 곧 나의 전 존재를 맡기고,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로 보고 듣고 선택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어깨가 아픈 이유는 좋지 않은 습관과 근육을 잘못 사용해서 랍니다.
마찬가지로 내 주인되신 예수님의 방식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따라 살지 않으면 내 영이 병들고 주변이 힘들어집니다.
나의 주, 나의 예수님!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합니다.
202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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