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인간의 원형,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그 모습은 인간적인 동시에 하나님다움에 가장 가까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아름답고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창조의 순리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원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성경은 우리의 부유함을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에 관해서가 아니라 삶의 근간에 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자의 삶이 아니라 ‘부유한 삶’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커질 때, 복 있는 자가 됩니다. 가난한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완전한 다스림 가운데 들어가는 그것이 ‘천국’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는 병들었을 때’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가까이 갈 때,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임을 깨닫고 인정합니다. 하나의 연약한 피조물로서 벌거벗고 가난해집니다.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 기술과 과학의 힘으로 하나님이 된 듯 교만했던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됩니다. ‘가난함’은 절박함입니다. 그 절박함이 하나님을 더욱 찾고 갈망하게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항복과 진심 어린 겸비함이 가난한 마음입니다(롬 7:24). 나 자신이 결코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까?
❶ 내 마음이 가장 가난했을 때는 언제였고, 왜 가난했습니까?
❷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의 부유함을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에 관해서가 아니라 삶의 근간에 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❶ 관련 설교 – 2020. 2.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로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인 것 같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커질수록 복 있는 자가 됩니다.
그의 삶의 온 영역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금식기도’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금식이 아니더라도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잠시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정해 놓은 시간이 지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시간’에 집중했던 경험들 말입니다.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음식 생각이 간절합니다. 음식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다스림이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주린 심령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인생이 복이 있습니다.
자기 손안에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소유욕’입니다. 소유욕은 곧 ‘탐욕’이 됩니다. 탐욕의 근원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자신의 삶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하늘나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이 세상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무엇이 축복이고 무엇이 저주입니까?
만일 우리가 스스로 부요하다는 생각과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이 쓰실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그러니, 가장 빈곤한 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항복과 진심 어린 겸비함이 가난한 마음입니다(롬 7:24).
❸ 관련 설교 – 2020. 2.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로마서 7장 24, 21절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이 곤고함이 사도바울에게 축복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비참함을 깨닫게 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은 이미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 속에 선한 것을 원하는 마음이 있을 지라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더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humble"이요, ”poor in spirit"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결과는 “depend on God" 하나님을 의지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으로 연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축복입니다.
나 자신이 결코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❸ 관련 설교 – 365일 묵상 333 영적 가난을 아는 지식
캘빈 밀러의 [빈손 – 하나님의 계산법]에 나오는 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영적으로 가장 가난한 상태, 우리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상태에서 일하십니다.
빈손으로 자신의 것을 놓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원리는 성경의 핵심이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권리포기의 능력을 배운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거듭 보게 된다.
아브라함은 본토를 포기했으며, 그로 인해 한 민족이 탄생했다.
한나는 아이를 포기했으며, 그로 인해 선지자가 탄생했다.
요셉은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에 대한 적대감을 버렸으며, 그로 인해 그의 아들들이 가나안의 상속에 참여했다.
엘리사는 쟁기를 포기했으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양심이 되었다.
나아만은 자존심을 버렸으며, 그로 인해 문둥병이 나았다.
베드로는 그물을 놓았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바나바는 구브로(키프로스) 밭을 포기했으며, 그로 인해 네로보다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증오를 포기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한 대륙을 누비게 되었다.
놓는 것은 능력의 열쇠이기도 하다. 권리포기는 영적 풍성함을 얻는 길이다. 우리의 하찮은 것을 포기함이 진정한 중요함을 얻는 열쇠이다.
❹ 관련 예화 – ‘나의 불’을 끌 때 외부에 계신 ‘성령의 불’이 보입니다.
낚시꾼을 가득 실은 배 한 대가 엔진 고장이 일어나 바다 한가운데서 멈추어 섰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며 칠흑 같은 밤이 다가오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누군가 비상 등불을 찾아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노를 찾아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방향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망망한 바다 가운데서 어느 쪽으로 가야 육지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서서 등불을 끄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지만, 등불을 끄자고 주장했던 그 사람이 나서서 불을 꺼버렸습니다. 배 안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빛이 보인다! 육지의 불빛이 보인다!” 반딧불 같이 작고 희미했지만 분명히 육지에서 비추는 불빛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있었던 비상등불 때문에 가려져 있던 육지의 불빛이 주위가 어두워지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 맹세, 결심 등 우리의 불빛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불빛을 껐을 때, 외부에서 성령의 불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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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령이란 무엇인가?
정신의 근원이 되는 의식의 본바탕으로 육체를 떠나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주체이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 작용이 일어난 곳 마음속의 영과 혼이다.
심령의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심령이 가난해져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찬양하며 충성하는 영혼의 마음 즉 심령의 능력이 있어야 천국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2. 심령이 가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국을 차지하는 복이 있으려면 심령이 가난해 지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이란 무엇인가?
자기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영으로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가난해지는 것이 능력이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이사야64:6)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속의 영혼 심령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의 영적으로 무능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영적 심령으로 가난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 마음속의 심령이 탐심과 욕심 정욕 시기 분노 등이 꽉 차 있으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으로 변환되어 소멸시키고 심령이 비어 있어야 심령이 가난해 지므로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에게 아무것이 없어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내에게 가진 것이 자아가 부서진 상태로 됩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그 모습이 인간적인 동시에 하나님다움에 가장 가까웠을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의 순리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복입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부유함을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자의 삶이 아니라 부유한 삶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커질 때 복 있는 자가 됩니다. 가난한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완전한 다스림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천국입니다.
4.인간이 병들어 갈 때 가난한 심령이 됩니다.
하나의 연약한 피조물로서 벌거벗고 가난해집니다.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 기술과 과학의 힘으로 하나님이 된 듯 교만했던 인간은 병들어 갑니다.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그 절박함이 하나님을 더욱 찾고 갈망하게 됩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항복과 진심어린 겸비함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나 자신이 결코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신실한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가갈 수 있습니다. 진심어린 겸비한 가난한 마음으로 신실한 믿음이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천국이 너의 것임이요>
아침에 출근 전에 묵상할 때는 쭉 묵상만 했는데요
퇴근하고 밤에 묵상하는 것으로 바꿨더니
전화 받으랴, 카톡 답문하랴... 묵상하는 중에도 분주합니다
대신 좋은 점도 있습니다
묵상집을 읽었는데 볼일 보고 와서 다시 또 읽으니
읽었던 구절이 새롭게 보입니다
오늘 밤에 묵상글을 쓰던 중 여자 청년 한 명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한 후에 다시 묵상집을 읽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이 말씀은 이미 두세 번 봤었는데요
통화하고 와서 다시 보니 하나님의 약속으로 읽혔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명진아, 너 많은 선물 받아봤지?
그 중에 인상 깊은 감동적인 선물도 있지?
내가 주는 건 너에게 감동을 줬던 세상의 선물과 레벨이 달라! 난 천국을 준다!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너의 것이야
난 천국을 선물로 주는 하나님이야
네가 가난한 심령으로 나를 찾으면 내가 너를 다스릴 거야
내가 다스리는 천국을 너의 삶에 선물로 줄 거야”하는 약속의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주님! 이 말씀을 다시 읽으며...
하나님 마음의 방점이 선물인 복, 천국에 있는 게 아니라요
당신을 가난한 심령으로 찾길 원하시는 아버지 마음에 강조점이 있음을 느낍니다
전화 오고, 카톡하고....분주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제가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길 원하시지요?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절박한 마음으로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길 원하시지요?
주님! 주님을 찾는다고 해서 복, 천국을 선물로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길 원해요!
<가난한 심령=절박함>
절박함...이라는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께서 과속을 하는 택시를 타셨습니다
그 택시 운전기사가 어찌나 과속을 하는 총알택시였는지!
아는 분께서 택시에서 내리신 후
“예배 때보다 더 절박하게 기도하게 되더라
목사님보다 운전기사가 나를 기도하게 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묵상집에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5:3)의
가난함을 절박함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가까이 갈 때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임을 깨닫고 인정합니다..
가난함은 절박함입니다 그 절박함이 하나님을 더욱 찾고 갈망하게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닫는 것입니다(87쪽)
지인이 택시 운전기사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 느꼈을 때
절박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저는 아까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심령이 가난한 자’라고만 생각했는데요
다시 묵상집을 읽으면서
‘가난함=절박함이다! 그냥 찾는 게 아니라 절박함으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마음으로!
간이 절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