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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3월 12일 무엇이 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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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2, 야고보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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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팔복의 말씀은 축복과 저주를 아주 다른 관점에서 봅니다.

세상 관점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이 복되다고 하신 방법과 태도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택할지 결단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것이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간결하고 명확하신 어조에는 세상과의 타협이나 조정의 여지가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실수 없으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은 또한 사랑이시기 때문에 차선을 주실 수 없습니다. 최선이 아닌 것은 늘 차선입니다.

복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팔복이 그저 이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팔복이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비현실적인 것 같아 지키지 않겠다는 그들의 판단과 결정이 담긴 말입니다. 복인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복인가, 무엇을 택할 것인가?’는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세상에 속할 것인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팔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선이자 진정한 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복이라 말씀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심령의 가난, 참된 온유, 깨끗한 마음, 화평 등을 택하고, 성령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좋은 것이 있습니다(약 1:17).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코 아낌이 없으십니다(롬 8:32).


내게 있어 참된 복은 무엇입니까?

❶ 팔복이 하나님의 최선이며, 진정한 복임을 믿습니까?

❷ 나는 어떤 세상에 속해 있으며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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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관점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이 복되다고 하신 방법과 태도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택할지 결단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것이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❶ 관련설교 ➀ 2020 산상수훈-생각을 바꾸라 하시네 

팔복 말씀은 참 힘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축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도대체 세상 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입니다. 분명히 이런 태도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 한 자에서 시작해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 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선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굳이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도, 온유하지 않아도, 화평케 하지 않아도,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아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선택’한 그 삶이 복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런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죠. 

 

말씀을 묵상하며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런 축복을 받는 자들은 결과를 바라고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선택하니, 이런 복이 주어졌다는 것이죠. 유익이 되고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고 행한 일들이 복된 결과로 되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팔복 말씀은 너무 이상적이라 행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러한 행동들이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죠. 그것이 ‘복’이라는 선택이 ‘복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지키지 않으면 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복인가, 무엇을 택할 것인가?’는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세상에 속할 것인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관련설교 ➁ 2020 산상수훈-생각을 바꾸라 하시네 

모든 교회들이 교인들이 늘어나고, 건물이 커지고, 예산이 늘어나는 것을 자랑하는데, 우리들 스스로가 그렇지 않은 쪽으로 선택한다면, 그것이 복된 것이라고 여길 이유가 있다면, 더 이상 이 땅위의 교회에 크고 작은 것으로 축복을 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기꺼이 심령이 가난해지고, 온유해 지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화평케 하는 자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팔복의 말씀은 혁명이 아닌 개혁이다! 혁명은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이고, 개혁은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가 바뀌므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혁명은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하고 억압과 폭력이 동원되는 일입니다. 팔복이 복된 것은 자기를 바꾸는 ‘개혁’이기 때문입니다. 팔복은 철저하게 자신을 바꾸려는 결심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복된 삶을 살기로 결심하며 삶을 바꾸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팔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선이자 진정한 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좋은 것이 있습니다(약 1:17). 

관련예화 (『다시 읽는 팔복』 제임스 C.하웰, 한국장로교출판사, 21.06.01)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도 있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을 추구하는 이도 있다.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복’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이들이다. 물론 ‘더 나은 삶’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의견이 있을 테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을 “성경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수많은 의견은 하나의 물줄기로 수렴된다. 그것이 바로 팔복이다.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삶’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풀어서 말하자면, 팔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살던 이가 이 땅에서 사는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이들이 하늘의 방식대로 사는 이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은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성공하는 비법’ 따위는 없다.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조금이라도 맛보았고,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팔복에 나타난 삶을 어떤 형태로라도 살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알고 싶다면, 내 삶과 팔복 사이의 거리를 재보면 될 일이다. 

 

관련예화 (『교회 밖 하나님 나라』 김형석, 두란노, 19.02.21) 

“흘려보내야 성장한다.” 

먼저, 교회가 과거가 아닌 미래로 나아가려면 교회가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나라와 민족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교회는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권위주의에 빠지면 죄악이 됩니다. 교회는 있어야 하지만 교회가 전부요 목적이 되면 교회주의에 빠집니다. 과거에 천주교가 교회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리를 교리로 바꾸면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교리가 진리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의 우산 안에 사람들을 가두려고만 하니까 사람들이 답답해서 뛰쳐나가는 것입니다. 목사님 말씀 들었으면 그 말씀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만 머무르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옛날엔 교회가 사람을 키웠으나 이제는 우산 안에 가두어 놓으려 합니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내가 교회에 가고 교회가 나를 축복합니다. 우리 가정이 교회와 더불어 있고 교회와 내가 더불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통해서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내가 교회로부터 받은 복은 복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면 그때 하나님 나라의 한 시민으로서 복 받게 돼 있습니다. 사회를 걱정하는 교회, 하나님 나라를 책임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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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창
복이란 무엇인가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 복입니다.
복이란 영적 물질적인 은택을 통해 선과 유익의 복된 상태를 묘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누리는 행복을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땅을 유산으로 주며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여 마침내 네가 여러 민족을 낳게 하실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된 복의 내용이 물질적이고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자녀 생산 소유물 증식 민족 번성 영토 획득으로 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다윗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복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정점은 땅의 모든 족속에게 영적 은택을 입어 영의 복을 얻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팔복입니다.

팔복의 말씀은 세상 관점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이 복되다고 하신 방법과 태도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택할지 결단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것이 복되다 고 말씀하십니다.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지켜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복인가 무엇을 택할 것인가? 는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한 중대한 질문입니다.

팔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선이자 진정한 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복이라 말씀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심령의 가난, 참된 온유, 깨끗한 마음, 화평 등을 택하고, 성령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하나님 통치 안에 들어가야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 예수님 통해 영적 말씀의 팔복을 깨닫고 영적 진리의 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3.13
김은실
예수님 당시 시대적 배경과 유대인들의 신앙관 기타 등등 그들 중 가장 천하고 약한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비유와 언어로 쓰여진 성경이 샤머니즘, 권선징악,기복신앙, 유교적 관점에 물든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 식대로 재해석되거나 왜곡되기도 하고 이해의 범주가 아닌 생활상으로 오해하며 받아들여진 50년의 모태신앙의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좀더 일찍 말씀에 대해, 신앙과 기독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덤볐다면 지금쯤 팔복을 이땅에서도 누리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오만함을 가져봅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이 내게 없고, 세상이 인정해주는 복을 얻지 못하여 구해도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지않는 자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며 그걸 얻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습니다.

이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함으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을 맛보아 아는 지혜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 싶습니다.
다만 그 복을 말하는 나와 세상의 복을 구하는 남편, 그 사이에서 힘들어 하는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간섭하심을 구합니다.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께는 내 인생의 7,80년은 찰나의 순간일 뿐임을 그래서 그 순간의 이 땅의 삶은 티끌같을 뿐임을 날마다 상기하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순례자로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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