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신앙과 인생의 분기점이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랍비요 선생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선생으로 여기면, 그분의 가르침을 격언이나 지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조언 혹은 처세 정도로 여기게 됩니다. 내가 말씀을 판단하며 취사선택하고 조합하는 주체가 됩니다. 삶의 주도권이 여전히 내게 있는 것입니다. 윤리적·도덕적 가르침과 예수님의 말씀 사이에 차별성이 없으며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도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종교 의식과 고행으로 점철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사도신경).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스탠리 존스의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에 나오는 글입니다. 한 의사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의사가 곁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라”고 전했습니다. 죽어 가던 의사는 경이로움에 가득 차서 조용히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새벽이 밝아 오자 임종을 앞두었던 의사가 기쁨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무엇’을 믿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겠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구약시대부터 간절히 바라온 메시아,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밝히 드러났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들어간 자는 천국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❶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받아들입니까?
❷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신앙과 인생의 분기점이 됩니다.
❶ 관련 설교 – 2020년 변화산 사도신경 중
세계 인구의 20%인 무슬림교도들에게 예수님은 무하마드 다음으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랍비’라 불리는데, 이 말의 뜻은 ‘선생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선생님’ 정도일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보편적 인식과는 달리 우리는 예수님을 특별하게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의 고백 ‘나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는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도 오늘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❷ 관련 설교 – 2020년 변화산 사도신경 중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 메시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어떤 자리에 임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예수님이 구원자로 임명되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에서 메시아를 대망하는, 즉 기름부음 받은 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분이 우리의 왕이며, 그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❸ 관련 예화 – 이재훈 목사 저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믿음 중심에는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임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기술은 경험과 학습이 축적되면서 전문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의학이면 의학, 공학이면 공학, 또 어떤 기술이면 기술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왔다면 그는 그 분야에 있어 전문가입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지식으로 축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믿음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축적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믿음 안에 살았다 할지라도 오늘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다윗이나 사울 등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실수를 보면 내가 과거에 얼마나 믿음 생활을 잘했냐 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이라는 이 시간 속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전문적 기술자가 되면 안 됩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착각하기 쉬운 것이, 설교를 자주 하다 보면 자신의 믿음이 좋은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잘한다고 믿음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설교가 하나의 기술이 될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 무서운 차이를 깨달아야 우리는 겸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유일한 비전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하나님은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을 우리를 통해서 행하십니다. 교회의 비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❹ 관련 설교 – 2010년 설교 크리스천 베이직 골로새서강해 4.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이동원 목사의 책 [짧은 이야기 긴 감동Ⅱ]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금세기의 위대한 크리스천 평신도였던 C. S. 루이스가 캠브리지 채플에서 한 번은 설교를 하면서 ‘예수의 구주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학생이 C. S. 루이스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위대한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이다’라는 케케묵은 기독교의 교리를 얘기했음으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 C. S. 루이스는 그 청년에게 이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삶이라고 믿는가?"
“그렇지요."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완벽한 도덕적인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완전하게 따라 갈 수는 없겠지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이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 분은 자네에게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믿음을 가진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했으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전 인격적인 고백입니다. 믿음을 지키되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완전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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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할 때 내 삶에 구원자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인생의 분기점이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도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종교 의식과 고행으로 점철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구를 믿느냐? 나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것을 그 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즉 구원자이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며 기도하고 그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밝히 드러났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들어간 자는 천국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이신 메시아를 믿고 구원 받아 천국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받아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집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는데 애띤 여고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이 편의점 주인에게 좀 전에 교통카드에 충전한 돈 중에서 2천원을 빼달라고 부탁하고 주인은 안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느라 3분 이상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이도저도 안된다고 난감해하며 계산을 기다리던 내 눈치를 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급하기도 해서 학생에게 현금 2천원이 필요한 거냐고 물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적이니 카드만 딸랑 들고 와서 현금이 없는 상태라 일단 먼저 계산하고 나와 딸을 만나 물건을 전해주고 딸에게 있던 현금 5천원짜리를 빼앗아 얼른 뛰어가서 그 학생에게 쥐어주고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주님! 당신의 사랑이 느껴지게 하소서~" 짧게 기도했습니다.
타지에서 딸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입장, 더군다나 아들을 혼자 외국에 떨어뜨려 놓고 있어서였을까 그 학생의 모습에 내 자식같은 애틋함이 생겨 모른 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 학생이 난처한 순간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아주 작은 길을 제시했지만 예수님은 내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초월하는 진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의 종교가 말하는 신과 감히 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훌륭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이 땅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게 아니심을, 죄로부터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제물로 기꺼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구세주이심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이신 성품을 본받아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신앙의 분기점>
1)저희 집에서 찻길 하나 건너면 헬스장, 수영장, 라켓볼장이 있습니다
체육관 운동장도 있습니다
맘만 먹으면 손쉽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인데요
엄마와 저는 운동은 따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엄마와 제가 운동장 앞을 지나갈 때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제가 엄마께
“저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한번씩 아파보신 분들이야!
우리랑 의지 체계, 자체가 다르다! 대단하신 분들이야”말하곤 합니다
아파서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갑자기 살이 쪄서 몸이 둔해져 생활이 불편하거나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해서 운동을 하거나
열심히 하려면? 분기점이 되는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2)오늘 아침에 신문 기사를 봤습니다
20년간 매일 10킬로미터씩 뛰었다고 하는 네이버 전무가
나오는 기사였습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평일에 10킬로미터씩 달렸고요
주말에는 20킬로미터씩 뛰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존경스러운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은 왜? 어떤 계기로?였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이런 일을 꾸준히 할 수가 없어서요
분명히 분기점이 되는 사건, 계기가 있었을 겁니다
기사를 보니 20년 전인 2003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하고 위대한 일을 하려면?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분기점이란? 사물의 속성 따위가 바뀌어 갈라지는 지점이나 시기입니다
세상일에도 사람이 바뀌는 지점이 있듯이
오늘 묵상집을 보면 신앙에도 분기점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신앙과 인생의 분기점이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랍비요 선생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선생으로 여기면
그분의 가르침을 격언이나 지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75쪽)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며 어떤 고백을 하느냐가
신앙의 분기점이 된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래처럼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그리스도the Christ,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the living God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들으시고
‘흐믓하다, 베드로가 고백을 잘하네! 고백 맛집이야’하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향한 고백을 흘려듣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예수님을 향한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I will build my church고 하셨습니다
그냥 교회가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I’ will build my church
예수님을 향한 사람의 고백을 하면?
예수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십니다
주님! 신앙의 분기점이 무수히 많은 돈이었으면?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 삶이었으면?
저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고행을 하며 얼마나 고달프게 살았을까요...
하지만 주님이 제게 요구하시는 건?
예수님을 향한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때 그것 자체가 분기점입니다
내가 아닌 예수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시며 일하실 겁니다
성령님! 세상일도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있을 때
사건의 전, 후가 바뀝니다
신문 기사에 날 정도로 위대한 일을 이루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고백이 신앙의 분기점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예수님을 향한 고백을 할 때 예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전, 후를 직접 목격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