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모든 부모가 좋은 부모는 아닙니다.
공경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부모,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모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동학대나 불의한 일에 자기 자녀를 이용하는 부모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공경에 쓰인 히브리어는 ‘카베드(kabed)’입니다. 이 말은 ‘무겁게 여기다, 비중 있게 생각하다, 중요하게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부모공경은 우리 삶에서 부모를 비중 있게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경에도 중요한 전제가 붙습니다. 바로 “주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부모 공경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말라고 명령하는 부모의 경우입니다.
한편, 신앙이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는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안식일 계명을 준수한다는 핑계로 부모 공경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린 바 되었다’라고 하며 물질로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모가 불신자여서 신앙생활과 부모 공경을 병행하는 것이 고단하고 힘들다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부모에 대한 의무 모두를 중시합니다.
나의 삶에 나타나는 순종의 흔적이 축복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기 위한 경제적 헌신의 흔적, 시간적 헌신의 흔적, 마음을 다하는 순종의 흔적들이 내 삶에 각인되어 있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갈6:17). 예수의 길,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며 감내해야 했던 아픔을 가리킵니다. 부모님을 위해 흘린 ‘피, 땀, 눈물’의 흔적이 우리 삶에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나에게는 어떤 순종의 흔적이 있습니까?
❶ 내 삶에서 부모님(공경)은 어느 정도의 비중입니까?
❷ 경제적·시간적으로 마음을 다하는 순종의 흔적이 있습니까?
순종의 흔적들이 내 삶에 각인되어 있습니까? 부모님을 위해 흘린 <피, 땀, 눈물>의 흔적이 우리 삶에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➊ 관련설교 수영로교회 2016년 09월 18일 설교 “축복을 약속하는 계명”
사도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장수한 제자입니다.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 예수님도 십자가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십자가 아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예수님도 효도하신 분이십니다. 그처럼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육신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스승의 말씀에 일평생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의 친어머니가 아니지만 자기의 어머니처럼 모십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합니다. 내 육신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안, 이 땅의 어르신들, 연세 드신 분들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 사회 전체를 축복해 주실 겁니다. 오늘 온전한 부모공경을 하는 가정이 얼마나 복을 받고 사는 가를 교회사 속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같은 목사님의 가정이 그런 가정입니다.
순종은 축복이 됩니다. 성경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원리, 순종이 축복이 됩니다. 그 순종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훈련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순종은 쉽지 않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본성을 꺾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❷ 관련설교 ➀(2018 다시 세우는 언약 십계명5)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감정적 차원으로 끝이 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새겨진 그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은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당신의 부모님을 위해 흘린 피와 땀의 흔적이 있을 때, 우리들의 삶에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즉, 우리들의 삶의 공경과 순종의 흔적은 부모를 향한 도리를 다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이 바로 그 흔적을 보면서 가슴에 새기게 되고, 따라하게 되는 축복이 임하는 것이지요.
결국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축복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것은, 부모와 자식 그리고 모든 세대 간을 연결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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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세상에서 불순종으로 살아가는 삶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어둠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공경은 성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신앙 때문에 부모님을 소홀히 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부모님에 대한 의무 모두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님을 위해 흘린, 피, 땀, 눈물의 흔적이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씀에 순종이 되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게 됩니다.
순결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순종은 우리의 삶에 축복되고 순종의 흔적이 되어 맑고 깨끗한 세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 흔적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기쁨과 사랑과 평안을 누리고 사는 행복한 가정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지 오래 되지만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근 1년여 동안 바뿐 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가다시피 보살핀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갔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살고 계셨는데
그때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보살피지 못한
아픈 마음이 있습니다. 믿음의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공경하지 못하고 불순종으로 인하여 순종의 흔적을 남기지 못한 마음은 슬픈 마음입니다. 부모님 공경은 하나님 사랑임을 깨닫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들의 이유인즉 엄마아빠도 할아버지,할머니랑 같이 안사니까 나도 결혼하면 아내랑 자녀들이랑 살아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유인데 막상 아이한테 같이 안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왜그리 서운했을까?
오늘 말씀에 그 일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내 삶에 부모에 대한 공경과 순종의 흔적이 있어야 내 자녀도 보고 배운다는 목사님의 말씀 때문이었을 겁니다.
80대에 접어드신 부모님이 양가 네분이라 마음 한쪽이 무거운게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뭔가 나를 불편하고 힘들 게 하지 않으셔도 한분씩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씀만으로 휴화산을 보는 느낌입니다.
지난 명절은 마침 설날이 주일이라 맡은 아이들도 있고 해서 예배 다 마치고 시댁에 저녁에야 들렀는데 맏며느리가 음식도 안하고 차려진 밥을 먹는게 너무 송구했는데 혹시 이것도 고르반~~이라 핑계삼은 건 아닌지 찔리기도 합니다.
참 여러모로 생각하고 반성하게 하는 오늘 묵상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님을 제대로 공경하고 순종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자녀들에게 웃어른을 섬길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순종의 흔적>
엄마와 제가 TV를 보면 서로 예쁘다고 하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저는 아이유처럼 작고 마른 사람을 “예쁘다”라고 하는데요
엄마는 얼굴에 살집이 붙어서 오동통한 사람을 “예쁘다”라고 하십니다
옷을 보고도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짧은 부츠컷 바지를 맘에 들어하지만
엄마는 “바지 길이가 왜 그렇게 떼똥하냐..”맘에 들어하지 않으십니다
엄마와 저는 거의 30살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30년의 세월이 절벽처럼 가로놓여 있기에 미적 기준도 당연히 다릅니다
엄마는 제 스타일을 존중해주시는 편인데요
유독 머리에 간섭을 하십니다
제가 머리를 기르면 자르라고 하십니다
대학생 때부터 머리를 자르라고 하셨으니까요
잔소리의 역사도 유구합니다
지난 1월 달은 방학이었지만 워낙 바빴습니다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 빼고는 방에 콕 박혀 있었고, 거실로 잘 나가질 못했습니다
뭔가를 먹을 때만 엄마를 잠깐 봤고 머리도 묶었으니까요
엄마께서 머리를 자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여유가 생겨서 거실에서 쉬었습니다
제 머리를 보시고 엄마께서 “머리 좀 잘라”하셨습니다
“지금 내 나이가 몇 갠데 머리를 자르라 마라야..”했는데요
금요일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묵상집을 읽고
금요일에 자발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저에게는 머리를 자르는 게 부모님을 생각하고, 순종한 흔적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아닌 몸에 있다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Jesus고 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
Finally, let no one cause me trouble, for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Jesus
바울은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let no one cause me trouble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바울을 괴롭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바울은 이미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을 정도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예수의 흔적the marks of Jesus=고문당한 상처일 겁니다
저라도 몸에 예수의 흔적on my body the marks of Jesus을 지닌 바울을 보면?
‘야, 쟤는 이미 몸이 만신창이네 괴롭게 하지 말자’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집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한 흔적을 설명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기 위한 경제적 헌신의 흔적, 시간적 헌신의 흔적,
마음을 다하는 순종의 흔적들이 내 삶에 각인되어 있습니까?(47쪽)
부모님을 공경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헌신해서 입은 손해,
시간을 써서 입은 손해 등을 흔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바울의 몸에 있었던 흔적, 부모를 공경하며 얻은 흔적은
모두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바울 몸의 흔적을 보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구나”느꼈을 것이고요
순종의 흔적을 보며 자녀들이나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면 저런 손해도 입을 수 있구나”할 것입니다
흔적을 통해 타인들이 보고 배우는 바가 있을 겁니다
주님! 바울처럼 하나님을 열심히 믿을 때,
부모님을 공경할 때!
눈에 보이는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순종의 흔적들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상처, 손해의 흔적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있도록 일하시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제가 머리를 자르는 게 순종의 흔적이라고 말했던 게 민망해집니다
머리를 자르는 건? 바울의 몸에 있는 흔적처럼 고통스럽지도 않고요
부모를 공경할 때의 경제적, 시간적 흔적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손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부모님을 공경할 때 손해를 입는다면?
‘아. 이게 예전에 묵상했던 그리스도의 흔적이고, 순종의 흔적이구나’
깨닫게 도와주세요
상황에 불평, 불만하는 게 아니라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왔도다!’라고 기뻐하며
즐겨 순종하게 인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