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16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17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화목제는 이웃과 함께 축하하고 감격하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감사제), 서원한 일을 이루게 되었을 때(서원제), 예기치 않은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낙헌제)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목제의 특징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이웃에게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수직적인 관계의 회복은 수평적인 관계의 변화로 연결됩니다.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주변에도 전파됩니다. 예배는 <나눔>을 통해 완성됩니다.
화목제물을 먹는 데에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감사제의 경우에는 그날이 지나기 전에, 서원제나 낙헌제의 경우에는 다음 날까지 제물을 다 소진해야 했습니다. 기한을 넘기도록 남아 있는 제물은 모두 불태워 버려야 했습니다. 만일 규정을 무시하고 남은 제물을 먹으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드린 제사도 무효가 됩니다. 소 한 마리가 보통 1,300~1,500근이 된다고 하니, 제사장의 몫을 떼어 내도 나눌 고기의 양이 엄청났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 만에 모두 소진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 심지어 ‘미운 사람’에게까지도 나눠 줘야 했을 것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화해의 장입니다.
여전히 어색하고, 아직은 웃을 수 없는 사람들과도 함께 앉아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눠야 합니다. 억지로 짊어지는 십자가일지라도 순종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제물을 나누는 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십니까? 일주일쯤으로 정해 주셨다면,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요? 감사와 감격, 즐거움이 절정인 순간에도 나눌 수 없다면, 시간이 지나도 나눌 수 없습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과 생각 그대로 즉시 행동하십시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시고 나서 긴 토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헨리 블랙커비,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나의 예배는 이웃과 삶으로 이어집니까?
❶ 수직적인 관계, 수평적인 관계가 균형 잡혀 있습니까?
❷ 예배를 통해 나에게 주신 마음과 생각이 있습니까?
화목제의 특징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이웃에게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수직적인 관계의 회복은 수평적인 관계의 변화로 연결됩니다.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주변에도 전파됩니다. 예배는 <나눔>을 통해 완성됩니다.
❶ 관련설교 – 2003 온전한 나눔으로
저는 말씀을 준비하다, 문득 우리나라의 민요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선창을 하고 후렴구에서 모든 사람들이 따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 . .쾌지나 칭칭 나네. . .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이 예물을 드립니다.”
그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축하하고, 같이 감격하며 그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서원한 일을 이룰 때, 예를 들면 하나님께 아들이 목회자가 되도록, 혹은 건축헌금을 하도록 약속을 했는데,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서원한 모든 것을 이루고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모든 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축하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삶에 예기치 않았던 즐거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기쁨을 혼자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그 다음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것입니다.
만일 규정을 무시하고 남은 제물을 먹으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드린 제사도 무효가 됩니다.
➋ 관련설교 – 2003 온전한 나눔으로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싸우고 난 아이들을 억지로 화해를 시킬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얼굴을 보라고, 손을 잡으라고, 너희의 입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 .
아주 어렸을 때는, 서로 안아주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힘든 행동을 통해서 무언가 화해와 사랑의 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어색하고 강요적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강요와 어색함 속에서 화해가 이루어짐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제물을 나누는 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십니까? 일주일쯤으로 정해 주셨다면,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요? 감사와 감격, 즐거움이 절정인 순간에도 나눌 수 없다면, 시간이 지나도 나눌 수 없습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과 생각 그대로 즉시 행동하십시오.
➌ 관련설교 – 2003 온전한 나눔으로
눈물의 운동회라는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20년 이상 복역한 수인(囚人)들은 물론 모범수의 가족들까지 초청된 특별행사였습니다.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오랫동안 가족과 격리됐던 재소자들에게도, 무덤보다 더 깊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그날 잔치는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미 지난 며칠 간 예선을 치른 구기종목의 결승전을 시작으로 각 작업장 별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습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줄다리기를 할 때도 얼마나 열심인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잘한다. 내 아들… 이겨라! 이겨라! 여보, 힘내요… 힘내!
뭐니 뭐니 해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신호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 주느라 당신 눈가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니, 서로가 골인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이상한 경주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레이스였습니다. 그들이 원한 건 1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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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위해 동물의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로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 등 이웃과 함께 축하하고 감격하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이웃에게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실 때 감사와 감격이 주변에도 전파되어 예배는 나눔이 완성됩니다.
화목제물을 먹는 데에는 규정이 있습니다. 감사제는 그날이 지나기 전에 먹고 서원제나 낙헌제는 다음날 까지 소진해야 합니다. 기한이 지나면 불태워 버리고 먹으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하여 기한 전에 제물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심지어는 미운 사람과도 나누어 먹으며 화목이 되고 화합이 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화해의 장입니다. 여전히 어색하고, 아직은 웃을 수 없는 사람들과도 함께 앉아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눠야 합니다. 억지로 짊어지는 삽자가일지라도 순종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과 생각 그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쟁을 끝내고 화평과 친교와 연합이 이루어져 온전히 나누는 화목한 감사 예배라 생각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사람들과 나누는 삶, 화평과 친교와 연합으로 온전히 나누는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