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는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에 담긴 예배의 의미는 <완전한 죽음>입니다. 내가 완전히 죽었음을 인정하며 나의 자아를 철저하게 부인한다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겼습니다. 예배에 쓰이는 히브리어 ‘티쉬타하바’,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경배하다, 절하다, 섬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되시며 내가 피조물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음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저절로 머리를 숙이며 그분께 경배하게 됩니다. 그분의 주권에 순복하게 됩니다.
예배는 나를 위한 의식이 아닙니다.
개업 예배, 돌 예배, 칠순 예배, 목사 안수 예배, 은퇴 찬하 예배, 졸업 예배 등 수많은 예배가 있습니다. 만일 예배에 붙은 <수식어>가 강조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그들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거나 축하를 위한 의식 중 한 순서가 아닙니다. 영적인 측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받고 생명을 공급받는 일은 귀하지만, 그것 자체가 예배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와 교통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더러움과 죄를 온전히 보게 됩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당사자가 직접 제물을 잡고, 가죽을 벗기며 각을 뜹니다(6절). 또한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습니다(9절). 내장은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어 냄새가 고약한 부위입니다. 내장과 제물을 깨끗이 씻듯 하나님 앞에서 나의 더럽고 추악한 죄들을 낱낱이 드러내고, 깨끗이 씻음받으십시오. 가죽을 벗겨 내듯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를 감추고 가리기 위해 썼던 체면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 내십시오.
우리는 예배하며 온전한 죽음을 경험합니다.
제물을 잡고 각을 뜨며 나의 전 존재가 조각조각 찢기고 해체됩니다. 내가 죽어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온전한 죽음으로 예배합니까?
❶ 하나님께 예배드립니까, 내 만족을 위해 예배합니까?
❷ 내 전 존재를 드러내고, 찢고 해체하며 예배드립니까?
예배는 나를 위한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➊ 관련설교 – 2017 참된예배가 능력이다
수년 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강의가 있었습니다. 하와이 New Hope Community Church의 웨인 코데이로 목사님의 경험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건물이 없었던 그 교회에서 어느 날 참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는 부흥하고 있었으나 예배처소가 없어 공원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상황. 토요일과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이 교회는 찬양과 워십이 중심이 되는 소위 현대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악기를 사용해야 하는 이 교회에서 비가 온다는 것은 예배에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기 시작했고, 예배를 위한 기도이기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라는 확신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배 내내 비는 내리고, 준비한 예배를 드릴 상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서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의 마음속에 들리는 물음을 들었습니다.
“웨인! 너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한 번도 이 예배 가운데 나와 함께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구나. 아무리 비가 오지 않는다 해도 내가 이 자리에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예배일 수 있겠니?”
➋ 관련설교 – 2013 주님은 나의 최고봉1 최고의 예배
예배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ritual’입니다. 이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예배의 중요한 전통 중에 하나가 ’remember’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기억하면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즉, 예배는 우리의 “생각의 방식” – way of life- 을 바꿔주는 힘이 되는 것이죠. 예배 가운데 산다는 것이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만 드리고 예배자의 삶을 살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 그리고 예배자의 삶을 살기 위해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말입니다.
(다음 장에 계속)
내가 죽어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❸ 관련설교 – 2012 삶을 바꾸는 예배
저와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물어보십시오. 제가 얼마나 떨며 예배를 준비하는지 말입니다. 몇 주 전 원고를 마무리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중에 다시 원고를 보고, 토요일에 다시 수정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주일 새벽에도 수정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려고 나를 열어놓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저는 예배를 인도하기 몇 시간 전부터 말씀을 가지고 고민하고 씨름하며 준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하는 일은 예배를 돕는 일입니다. 사실 예배의 주인공은 여러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여러분들이 영적인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❹ 관련설교 – 2011 온전한 예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보다는 마음을 드림으로 예배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마음은 드리기 쉽지만 몸은 드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주께 바치옵니다” 그런데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단 앞에서 우리가 찢겨지고, 죽임을 당하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산 제사로 드리는 순간 우리들의 피 흘림이 전제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다시 말하면 오늘의 예배를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한 우리의 피 흘림과 희생이 없이 이 예배는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산 제사를 방해하는 첫 번째 요인이 바로 우리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입니다. 게으름입니다.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근성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6장 41절에서 잠을 자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중에도 거룩한 예배를 위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몸이 따라가지 않으므로 인해, 거룩한 피 흘림을 감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예배되지 못함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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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란 무엇인가?
희생 제물을 가죽만 빼고 모조리 불에 태워 그 향기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헌신의
예배입니다.
즉 번제는 죄를 사하는 목적으로 생명이 있는 것으로 자신의 생명을 대속시키므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법을 거부해 진노를 사게 된 것들을 해결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리라 말씀하십니다.
번제의 제물로 소나 양을 택하여 수컷으로 제물로 받치란 것은 순종하는 짐승이므로 흠 없는 수컷으로 순종 잘하는 깨끗한 것으로 번식시키는 말씀을 전도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 지니 란 내가 직접 안수하여 내 죄가 짐승에게 전가하고 짐승의 흠 없음은 내게로 오게 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합니다.
또한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를 벌려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함은
번제물의 가죽은 내 마음을 버리는 것이며 각을 뜯는다는 것은 내 머리에 있는 생각들과 내 뜻을 불태워 모든 더러운 생각들을 마음에서 없애고 빈 마음 깨끗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온전히 자아가 죽으므로 인하여 희생과 감사로 기도를 올리며 예배드리라는 말씀에 깨달음이 옵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예배로 옛 자아를 죽이고 새 자아로 거듭나기를 기도 합니다.
칼을 들고 죽일 때 팔딱거리는 동물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온몸과 사방에 튀는 피비린내부터 각을 뜨고 뼈를 도려내고 내장을 분리해 씻고 행하는 모든 과정이 초보자에게는 하루종일이 걸리고 온몸이 땀과 피로 범벅되는 역하고 고역스러운 일이며 몇날며칠 악몽도 꿀 수 있는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일지라도 그 대속제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으리라 말했습니다.
그 생생한 과정을 들으면서 구약시대에 살지않음과 예수님의 희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게 느껴졌었습니다.
반면 오늘날의 나의 예배는 뭐하나도 희생이나 수고나 헌신이 없이 잘 갖춰진 예배 시스템에서 초단위로 짜여진 예배 콘티에 감탄하며 내가 받을 은혜나 계수하고 있는 수준이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마음 하나,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 하나, 몇발짝 더 걷는 주차 문제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고 내 설움과 이기심만 드러내어 하나님께 위로해달라고 부르짖는 게 예배랍시고 심리적 안정을 찾고 세상에서의 일주일은 논크리스챤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도 죄의식없는 권사라니 무섭고 두렵습니다.
적어도 내 십자가는 내가 지고, 옛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고, 날 대속하신 예수님 생각만으로 눈물 쏟아내는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죄성 가득한 마음과 생각을 찢어 내버리고 몸에 체득되어버린 타성과 안일을 각을 떠 내버리고 거룩한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주님~~
예배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을 뜯어고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인공인, 하나님만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되게 하소서.
<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를 자주 봤었습니다
대본도 최소 열 번 넘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탐독을 했는지?! 출근하며 길을 걸어갈 때도
대본을 쥐고 읽으면서 걸었습니다;;;
드라마에 ‘오스카’라는 월드 스타 가수가 나옵니다
오스카가 후배 가수를 양성하고 싶다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무명 가수를 한 명 발탁했는데요
무명 가수가 오스카에게
“나 키우고 싶다며! 근데 댁은 누구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 스스로 빛나고 싶은 사람이지”(4화, 21쪽)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스스로 빛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굴 키우거나 누굴 섬길 수 없습니다
모든 관심이 스스로 빛나고 싶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까요
스스로 빛나고 싶어한다면?
온전한 섬김의 예배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집에선 예배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임을 설명합니다
-개업 예배, 돌 예배, 칠순 예배, 목사 안수 예배..수많은 예배가 있습니다
만일 예배에 붙은 수식어가 강조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그들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거나 축하를 위한 의식 중 한 순서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63쪽)
개업, 돌, 칠순, 목사 안수....
스스로 빛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잔치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예배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요
오직 하나님임을 더 분명히 하며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목사님이 든 예화처럼 아무리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
최고의 주인공 자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되시도록
영적으로 잘 분별하고 행동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