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교만은 스스로 영광 받으려는 허영심입니다.
교만한 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경받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부요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벌거벗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계 3:17). 하나님 앞에서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눈, 사람들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이 중요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향하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겸손은 자기 비하나 경시가 아닙니다. C.S.루이스는 겸손과 경시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더 낮아지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신 8:14-20). 어떤 도움도 바랄 수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겸손이란 곧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감사하다’라는 고백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내가 아닌 ‘바로 당신 덕분에’ 이런 혜택을 본다며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만 바랄 때 교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겸손과 낮아짐으로 교만을 이기고 있습니까?
❶ 나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매사를 바라봅니까?
❷ 하나님 없이는 소망이 없음을 진심으로 인정합니까?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그들의 마음이 더 낮아지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신 8:14-20)
❶ 관련설교 ➀ 겸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 (2007 성품이 말한다, 겸손)
겸손은 인간을 가장 품위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과 같으며,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독선적이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성품의 기초가 바로 “겸손”입니다.
❷ 관련설교 ➁ (2007 성품이 말한다, 겸손/ 2020 후기 변화산)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겸손입니다.
40년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낮추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광야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존재, 인간의 연약함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겸손함은 인간들로 하여금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들었지요.
축복의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모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이 무엇입니까?
민수기 8장 14절을 Living Bible에 보면 이렇습니다. “that is the time to watch out…." 이 말씀은 신명기 8장 처음부터 시작되는 구절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던 그 땅을 얻게 될 때, 모든 것이 풍족하게 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살 것 같은 세상이 될 때, 교만하여 질 것을 염려하며 모세가 이 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의 가장 큰 위험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본문 14절에 보니까,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반대로 말을 하면 겸손한 때는 여호와를 기억하지만 교만하여 지면 여호와를 잊어버릴 확률이 많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기도
주님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에게만은 절망치 않게 하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비탄을 맛보게 하시고
고뇌의 불꽃이 나를 휩싸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옵시고
내가 스스로 견디어 나감을 돕지 마옵소서.
그러나 나의 고집이 분쇄된 후에
그렇게 만드신 분이 주님이었음을 보여 주옵소서.
주님이 그 불꽃과 고뇌를 낳으셨음을 알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나는 즐거이 멸망하고 즐거이 죽겠사오나
다만 주님의 품 안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❸ 관련설교 (2020 후반기 변화산 Decesion, 겸손하기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42:1) 여러분들은 사슴의 갈급함을 아십니까? 옛날 근동지방의 사람들이 먼 길을 떠날 때는 사슴을 데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사막 한 가운데서 물을 찾아 헤맬 때, 물에 주린 사슴을 풀어 놓으면 물 냄새를 맡습니다. 죽을 지경에 까지 이르는 사슴이 사막에서 물을 찾아 달려가고 나면, 물을 먹지도 못하고 물 앞에서 폭 꺼꾸러져 죽습니다.
이것이 시편기자가 보았던 사슴의 갈급함입니다.
이러한 갈급함 가운데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갈급하며 만들어져 가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 순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존재,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나의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 존재, 그로 인하여 모든 피조물 앞에서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서 있는 겸손함, 이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성품입니다.
❹ 예화들 (2020 후반기 변화산 Decesion, 겸손하기로)
영국의 명문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간디가 이끄는 공동체에 와서 살게 되었다.
공동체에서 그의 보직은 변소 청소였다. 며칠 안 있어 그는 간디에게 항의했다.
“제가 누군지 안 보이세요? 저는 큰일을 할 수 있다고요.”
간디가 대답했다. “자네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네.
내가 모르는 건 자네가 작은 일도 잘 할수 있는가 하는 걸세.”
누군가 알베르트 슈바이처에게 물었다.
“왜 여행을 할 때마다 삼등석을 이용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아주 명료했다. “사등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