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 최악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찾아보자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 아닐까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그분의 인도하심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순간,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 알 수 없습니다. 그 선택이 가져올 미래도 알 수 없습니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 없이 선택한 인생은 마치 ‘터진 웅덩이’를 파듯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음을 경험할 뿐입니다(렘 2:13).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습니까?
인간적인 선택을 하면 인간적인 결과를 얻지만, 하나님 중심의 선택을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선택’에 있어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창 13장).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지만, 롯은 안목의 정욕을 따라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습니다.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에 롯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5)”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자리에 앉아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려 했습니다(창 3:5). 그러나 되레 늘 선택의 상황에서 갈등하며 번민하는 존재, 동시에 ‘후회’를 달고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모르게 되었고, 삶의 방향을 잃은 채 숨어 버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선택은 자유일지 모르지만, 결과에 대한 선택권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안타까운 결과들은 그대로 우리 삶의 족적이 됩니다.
내 인생에 최악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❶ 왜 선택했으며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❷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셨습니까?
우리는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 알 수 없습니다. 그 선택이 가져올 미래도 알 수 없습니다.
❶ 2021 복음책방, 무엇이 선인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선이 있다!]
Part 1 <선해 보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 책의 화두인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선(선과 하나님의 차이)에 대해 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선’을 판단합니까? 우리 눈에 선해 보이는 모든 것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요?
p.13 너그러움, 겸손, 정의는 선한 것, 이기심, 오만함, 잔인함은 악한 것, 이 둘을 구분하는 건 매우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선한 것이 그렇게 명백하다면, 왜 히브리서 5장 14절에서는 우리에게 선을 알아보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컨퍼런스 참석 차 스웨덴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는 동안,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한 유명 인사가 숨지고 말았습니다. 사망한 그 유명 인사는 존 비비어 부부가 평소 존경하고 열렬히 환호하던 사람으로, 똑똑하고 아름다운 정치가인 데다가 자신의 세계적인 명망을 이용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고아들과 지뢰 피해자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존 비비어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던 한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무릎 꿇고 기도를 하며 묻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닫게 됩니다(p.22-25 참조).
p.25 나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이라는 단어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속하지 않은 선도 있다. 그것은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 |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선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 선하게 보인다고 그것이 선(善)이라고, 최선(最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선이라 할 수 없습니다. GOOD or GOD? 이 세상에는 ‘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❷ 2021 복음책방, 무엇이 선인가? [선과 악, 겉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Part 1의 내용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았습니다. 우리가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선과 하나님의 선의 차이, 그리고 그 둘이 불일치함으로 생긴 인류 최대의 스캔들(선악과 사건)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담았습니다. Part 2 내용으로 넘어가기 전에 놓은 초석입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 왜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나요?” 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올까요? “내 마음이다.”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 마음,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과 악에 대해, 그 차이에 대해 모두들 알고 있는 듯합니다. 어린 아이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기 있는 드라마들도 그렇죠?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들의 방해와 온갖 역경을 이기고, 마침내 정의를 이루어 승리하는 결말의 드라마들을 많이 봅니다. 이런 드라마들이 인기 있는 건 아마도 선이 악을 이기는데서 오는 희열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선’의 개념에 있어, 오늘 이후로 작별을 고해야겠습니다. 선과 악, 겉으로 구별할 수 없다(p.26)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p.45 하와는 자신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굳게 믿었다. 그것은 좋은 선택이며, 그녀와 남편의 삶을 더 좋게 해 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겉으로 좋아 보이는 것에 대해 당신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보다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하와처럼 속고 있는 것이며 그 결과 큰 슬픔에 빠지게 될 것이다. |
우리의 기준에 좋아 보이는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되고, 슬픔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기준, 가치관 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나, 내 생각, 내 기준이 있던 자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❸ 경기일보 오피니언 <삶과 종교> 2012.11.27. 기사 [최선의 선택]
해안선에 등대가 우뚝 세워져 있었습니다.
배들은 항상 등대 불빛을 보며 방향을 잡고 안전하게 항구로 들어오곤 하였습니다. 등대 기름 창고에는 기름이 늘 충분히 공급되어 있었습니다. 등대에 불을 밝히라고 정부에서 공급해 주는 기름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동차가 지나가다가 기름이 떨어져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주유소가 없는 곳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기름을 조금 주었습니다. 이튿날 가난한 할머니가 오더니 추워서 못 자겠다면서 기름 보일러에 기름을 좀 채워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정이 딱하여 조금 주었습니다. 또 한 자매가 와서 내일이 시험인데 등을 밝힐 기름이 떨어졌다고 기름을 달라고 하기에 입장이 난처하여 조금 주었습니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금씩 기름을 주다보니 등대에 넣을 기름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떨어진 그 날 밤 배 몇 척이 파선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며칠 후에 조사단이 파견되었습니다. 기름을 충분히 주었는데 왜 등대 불이 꺼졌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등대지기는 사정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 말을 다 들은 당국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오직 하나 등대에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직무 유기입니다. 구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선택을 하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기에 내리는 결정은 잘못된 결정인 경우가 많으며, 최선이 아닌 차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결정,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에 원칙이 세워져야 합니다. 원칙은 상황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원칙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