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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환난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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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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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자유,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생각해보세요. 그 고난에서 기쁨을 얻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사무엘하 22:31-41+ 요한복음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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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2:31-41)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7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38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39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
40 이는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를 내게 굴복하게 하셨사오며
41 주께서 또 내 원수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내게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환란 때에 방패요 요새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31-33절)
  • 피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34-37절)
  • 환란과 고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는 무엇입니까? (38-41절)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31-33절)
세 구절 모두 하나님으로 시작된다. 하나님만이 참된 방패요 반석이요 요새시다. 하나님은 세상 풍파와 당황스러운 일들 가운데 말씀으로 보호막이 되어 주신다. 사탄의 공격에 방패가 되어 주시며, 사람의 공격과 비방 가운데 피할 피난처가 되신다.

나의 발, 내 손, 내 걸음(34-37절)
하나님은 손과 발을 통해 환란에 적극적으로 맞서게 하시며, 통과하여 훈련하게 하신다. 암사슴은 ‘내적인 안정과 생산능력, 강인함, 외적인 환경과의 경쟁력 및 아름다움, 다리가 가늘면서도 재빠름 등을 상징한다.’(34절) 하나님은 친히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신다(35절). 이 싸움은 ‘외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내 안에 침투해 들어오는 여러 가지 악한 세력과 병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말씀의 방패로 나를 막아주신다(36절).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흔들림 없는 담력을 얻는다. 발걸음에도 떨림 없이 당당하게 디디게 하신다(37절).

내 원수를 뒤쫓아, 전멸, 굴복, 끊어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38-41절).
신앙의 힘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 뿐 아니라 극복하고 맞서 섬멸하게 한다. 띠는 옷에 둘러 묶어서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거추장스럽지 않게 한다. 하나님은 때에 맞게 기능하고 활동하는 데 실족하지 않도록 힘과 능력의 띠를 띠워 준비시키신다(삼상2:4, 시65:6, 눅12:35, 엡6:14). 여기서의 원수는 ‘극복되어야 할 모든 사회악과 파괴적인 세력을 뜻할 수 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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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을 보는 성도의 관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 예수를 믿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보통의 경우 ‘삶의 문제로부터 구원받기 위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문제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에서’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91편 9-10절을 말씀을 보겠습니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가만히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에게는 어떤 재난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화나 재앙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를 해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분명히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구원받은 성도들의 착각 중 하나는 성도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는 생각이죠. 그러나 성경은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믿고 있으니, 환난을 당할 때 담대하라고 아주 분명히 말합니다. 챔버스는 성도들에게 이런 고백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성도는 어려움을 당할 때 큰 기쁨이 넘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상황이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꿈꿨던 목사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께 가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고통으로 여러분을 해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여러분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승리의 노래를 하게 될 때, 싸움은 외적인 고통으로 인해 고귀한 성격을 지닐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이 외적 싸움을 통해서 여러분이 훨씬 더 풍성한 지식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즉 사탄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닥치게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허락하시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시행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이 가져오는 것은 정결케 하는 일일 뿐이며, … 앞으로 닥칠 더 큰 시험들에 맞설 수 있도록 힘을 강화하는 과정이며, 여러분의 영혼이 더 높은 세계에 닻을 내리는 일이고, 여러분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여 여러분 마음속에서도 하나님만 높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성도가 외적인 문제들로부터 고통 받는 과정 자체가 유익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 안에서 허락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같은 고난을 통해 어떤 이는 하나님을 부인하기도 하지만,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을 통해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고통의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끝없는 의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특권은 그런  고통의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신앙의 성숙을 경험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수십 번의 수술을 해야 했던 이지선 자매가 간증을 하며 불렀던 찬양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사람들에게 답을 주기 위해 애썼던 필립 얀시의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라는 책에서 보았던 내용입니다.

“내가 볼 때 기독교는 고통을 줄여주는 종교가 아닌 것 같다. 기독교는 우리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맞서고, 헤쳐 나가며 일하여 결국에는 그것을 승화시키도록 힘을 준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히말라야에 사는 고산족은 산양을 사고, 팔기 위해 산비탈로 향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산양을 사고, 팔 때 크기가 아닌 성질에 따라 값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산양의 성질은 산비탈 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 산양을 놓아두고 가만히 지켜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양이 산비탈 위로 풀을 뜯으려 올라가면 아무리 작고 마른 산양이라도 값이 오르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몸이 크고 살이 쪘다 해도 값이 내려갑니다. 위로 올라가는 산양은 현재는 힘들더라도 미래에는 넓은 산허리의 풀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랄 것이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산양은 결국 협곡 바닥으로 향할 것이고 그곳에 이르러서는 굶주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 이야기와 연관지어, 오늘 묵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문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복하는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난관을 극복할 때 생명을 주십니다.”

오늘 묵상에 아주 인상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The strain is the strength.”

“긴장이 힘이다!”라는 말이죠. 긴장하며 사는 것이 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고난을 만나는 순간 얼마나 긴장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긴장이 삶을 생명력 있게 만든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육체적으로는 더욱 지치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상식적으로 대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낍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려움 앞에서 상식을 넘어선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하나님께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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