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6
한 줄 노트
- 말씀을 들은 모두가 참된 제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결단하지 못하면 여전히 관망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 빚을 갚기 위해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5:26)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주인은 만달란트 빚진 자에게 어떤 처분을 내립니까? (25절)
- 종의 간청에 주인이 내린 결정은 무엇입니까? (27절)
- 주인의 은혜를 입은 자가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28-30절)
- 결국 그 사람의 처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34절)
- ‘자유인’과 ‘옥에 갇히는’ 처지를 가른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천국은(23절)
본문은 ‘천국’에 관한 비유이다. 천국의 핵심은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본문은 천국 백성, 즉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말한다.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25절)
만 달란트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액수였다. 만달란트 빚진 자에게는 어떤 소망과 가능성도 없다.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결국은 가족 모두가 노예가 되어야 했다. ‘다 갚겠다’는 말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주인이 불쌍히 여겨(27절)
‘불쌍히 여기다’에 쓰인 헬라어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실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빚을 탕감 받고 노예 신세를 면할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주인의 자비와 긍휼 때문이다.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34절)
종은 결국 ‘불쌍한’ 신세로 돌아간다. 빚을 모두 갚는 것은 불가능하니 노예가 되거나 평생 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는 자비와 긍휼로 ‘자유’할 수 있었으나, 결국 빚진 자의 삶, ‘감옥’의 삶,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
피할 수 없는 형벌을 주시는 이유
오늘 묵상은 지난 이틀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내용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일이 가능한 것은 ‘기질의 변화’로부터 옵니다. 문제는 우리 속에 있는 죄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이냐 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은 구석에 지옥을 만들어둔 천국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순결하고 거룩하며 의롭게 만들기로 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챔버스의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순종의 문제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거나, 일부분을 제외하고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잔인하고 혹독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영생의 문제라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적당한’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 묵상에서는 우리가 지금 당장 화해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구석에 작은 지옥을 만들어둔 천국은 없습니다!
오늘 묵상의 원문 제목은 ‘피할 수 없는 형벌’(The inevitable penalty)입니다. 오늘 묵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적절한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을 때부터 우리는 성령님의 세심한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간섭은 필연적으로 우리 속에 있는 죄를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형벌’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 죄에 대해 심판받도록 재촉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심판을 저항하는 게 문제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참 무자비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갚아야 한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피할 수 없는 형벌의 감옥에 가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죄란 무엇일까요?
“그 죄성은 바로 자기 주장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그 죄성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그분의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후 당신은 하나님과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십자가의 구속]에 나오는 글이 오늘 묵상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우리는 거룩하지 않은 것을 제단에 드릴 수 없다. 바울이 말한 ‘형제들’은 성도들을 의미한다. 위 구절은 거룩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주님은 십자가에 의해 주의 생명에 들어간 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때 주님은 “죄를 양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누구라도 죄를 양도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네 자신에 대한 권리를 내게 양도하라”는 뜻이다. 우리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거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 앞에서 보여주는 일이다.
챔버스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그동안 보여 왔던 죄성, 즉 자기 주장을 깨닫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자기 주장이라는 죄성을 깨닫는 것은 곧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금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피할 수 없는 형벌과 감옥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의 의미는, 실제적인 감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이 죄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게 하신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괴로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상태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이전 묵상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슬픔을 깨닫게 하심으로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이런 죄성을 깨닫게 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 하는가입니다. 어제와 그제, 묵상했던 것처럼 지금 원수와 화목하기를 원하고 또 행동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결단’이라는 말과 더불어 복음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의 복음은 의지와 양심을 위한 것이지 머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머리로 산상수훈에 대해 따진다면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서 외치는 주님의 메시지를 망쳐놓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님께서는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의 도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고,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주님은 ‘제자의 도’, 즉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우선순위와 결단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후 모든 사람이 십자가를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요?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이유를 챔버스는 ‘빚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지금 이웃과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원한다면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각적인 순종이야말로 우리를 순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