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한 줄 노트
-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점차 제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순종의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 순종은 깨닫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답답한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순종의 문을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당신의 가슴 속으로 깊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11:25-27)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예수님은 누구와 말씀하고 계십니까? (25절)
-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부르십니까?(25절)
- 예수님은 무엇을 인정하며 감사하십니까? (25-26절)
- 어떤 자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27절)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25절)
예수님은 매 순간 아버지와 함께이며 교통하셨다. 친밀하고도 충만한 교제를 누리셨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관심과 뜻과 의지와 의도를 온전히 아셨고 전적으로 응답하셨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아셨다(27절). ‘예수님의 모든 행위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님은 이 독특한 친밀성으로 하나님을 ‘내 아버지여’라고 부르셨다(26:39,42).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25절)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 창조주 되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은 복음 사역의 결과와 열매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인정하신다(26절). 세상은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너그럽지만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도 깨달을 수 있게 하신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 어린 아이들(25절)
‘슬기로운(헬, 쉬네톤)’은 ‘이해력을 가진, 신중한, 학식 있는, 지성을 갖춘’의 뜻이 있다. ‘어린아이들(헬, 네피오이스)’는 ‘젖먹이, 경험 없는 사람들’, 즉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가리킨다.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 서기관들, 예수님의 권능을 많이 본 고을들(20절)은 예수님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앎’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게(계시) 하시려고 제자들을 부르신다(27절).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이는 지식, 깨달음, 철학을 습득할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1. 영적 관계와 영적 상태 구별하기
오늘 묵상의 주제는 늘 챔버스가 이야기하던 것과 배치되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챔버스는 우리의 영적 체험이 중요하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며 지속적인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묵상에서는 ‘영적 관계’란 단계적으로 자라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영적 상태’와 ‘영적 관계’를 구별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가 결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상태’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을 통해 영적 관계에 들어간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은 영적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에 ‘점진적’이라는 말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챔버스의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점차적으로 깨끗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됩니다. 이것은 순종의 문제로서 순종하는 즉시 관계가 완벽하게 됩니다. 한순간이라도 순종에서 벗어나면 어둠과 죽음이 당장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늘 이야기 했듯이 순종은 결단입니다. 결단의 결과는 명확합니다. 순종하는 즉시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 주님을 따라갑니다. 한편 순종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순종’이란 말의 독일어 단어는 ‘nachfolge’인데 ‘제자도’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nach’라는 말은 ‘after’ 그리고 ‘folgen’이라는 동사는 ‘follow’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의 뒤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바로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자의 삶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따라간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라는 결단의 문제일 뿐입니다.
나치에 항거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에게 있어서 ‘순종’이란 바로 이러한 ‘영적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그의 책, [본회퍼와 함께하는 하루] 에 나오는 글입니다.
“진리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누가 빛으로 나아옵니까? 진리를 행하는 사람입니다(요 3:21). 이는 무슨 뜻입니까?
진리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한다든지 단순히 마음으로 원하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악이 싹트게 하는 위선과 어둠의 반대로 행해야 진리가 일어납니다. 어둠 속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행하겠습니까?
생각만으로는 빛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행동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아무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리의 행위를 통해서입니다. 진리 자체가 당신의 행위를 통해 당신을 빛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강조점은 진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행동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행위로 의롭게 된다”라는 말이 옳지 않은 것처럼 “생각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말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빛으로 나오고자 하며 성령의 임재를 원한다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행해야 할 때입니다. 힘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행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끊임없는 질문에서 벗어나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 말씀 아래 살게 됩니다.…
우리의 행위 가운데 나타나는 진리가 빛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2. 순종의 깊은 의미
순종의 조금 더 깊은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챔버스의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우리의 순종에 의해 열릴 때까지 봉해져 있습니다. 당신은 철학이나 사고를 통해 그 계시들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즉시 섬광이 들어옵니다.”
이 말은 ‘순종’이 영적 상태가 아닌 영적 관계의 문제라고 지적했던 첫 번째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순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특권은 순종하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일들을 순종하는 순간 깨닫게 되는 일입니다. 순종은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 깨달음이나 철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없습니다. 이 표현도 참 좋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노심초사한다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빠져들어갈 때 (soaking in it)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순종은 하나님 안에 흠뻑 빠져드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종의 지점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흠뻑 젖어 있는 시간’이 수없이 필요합니다. 슬쩍 하나님을 경험하는, 소위 시쳇말로 ‘간보기’로는 순종의 지점에 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서 고백됩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앎으로 하나님을 믿으려 하였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는 순종의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로 순종을 미루게 됩니다.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겠지, 그리고 이해하면 순종할 수 있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순종’이란 어떤 거창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이해하면 순종하겠다는 마음에는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문장을 마음에 새기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순종하기까지는, 절대로 그분에 대한 더 깊은 진리를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