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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

통독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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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진정한 삶의 규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아는 지식에서 출발합니다.
  • 기도는 단순하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평안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의 기도는 평안한가요? 만약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평안함을 먼저 구하십시오!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21:18-22 + 마태복음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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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18-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7:11)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20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21절)
  • 그로인해 어떤 일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까? (21절)
  •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22절)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19절)
이 시기는 본격적인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 무화과에 열매가 없는 것이 당연한 시기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배가고파 충동적으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열매 없는 유대종교를 상징한다. 그들은 형식만 무성하고 ‘제철’ 탓만 하며 멈춰있었다. 무언가 풍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열매나 영향력이 없었다. 앞서 성전정화를 통해 일침을 가한 예수님은(21:12-17) 동일한 맥락에서 무화과나무, 즉 ‘성전’ 중심의 유대 종교에 심판의 메시지를 선언하고 계신다.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21절)
이 구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믿음,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믿고 위임한 자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산’ 같은 장애물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 2) ‘산’을 성전이 서 있던 시온 산으로 보는 경우다. 유대 종교에 대한 심판 메시지와 동일하게 형식과 권력의 상징이 된 ‘성전’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하나님은 장소에 갇힌 분이 아니다. 형식에 갇힌 분이 아니다. 장소와 종교에 얽매지 않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이 강조되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22절)
‘받으리라’에 쓰인 헬라어는 신적 수동형이다. 즉, 주는 분은 하나님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기도할 때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고 구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성전이라는 장소가 응답의 관건이 아니라 믿음과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핵심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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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한 규칙

챔버스는 오늘 묵상을 통해 본문 말씀이 ‘주님의 영’을 소유한 자들에게 주시는 행동 강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어떤 행동을 하라는 것일까요? 모든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완전히 믿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고 그 분께 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어려움이 찾아와도 ‘나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다 알고 계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관계에 들어가기 전, 과거에는 어려움이 찾아 올 때에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이제 하나님께 찾아가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영을 소유한 사람들이 기억해야할 진정한 규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규칙에 의하면 우리가 염려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오스왈드 챔버스 욥기]에 보면  F. W. H. 마이어스의 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보면 고통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하나님께 보여드리며 간구하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나는 갈급하고 지치고 쇠약한데

이 고통에서 벗어날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네


세상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소식들은 내 작은 마음을 뚫고 들어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그 고통을 고하게 하네


그분의 발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전혀 부끄럽지 않고

고통의 상처 그대로 보여드릴 수 있네


나는 그분께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하네

그분 앞에 고통을 쏟으면 쏟을수록 달콤한 위로를 간구하게 되네


2. 진정한 행동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규칙’을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진정한 행동으로 그 규칙을 지켜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1월 3일 묵상에서 우리가 ‘구름과 흑암’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묵상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둠을 제거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 하나님이 우리와 전혀 무관한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 하나님은 전혀 공의롭지 못한 재판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가 진정한 규칙을 따라 진정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모든 어려운 일들과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식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없는 사건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 나오는 글이 있습니다. 누군가 로렌스 형제를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말하기를,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또 실행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께 의뢰하는 습관을 형성하려면, 우선은 우리가 부지런히 그분께 여쭈어야 하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분의 사랑이 내면적으로 우리를 일깨우는지를 신중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즐거운 날들을 보낸 이후에는 수고와 고통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그는 염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고, 또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그것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로렌스 형제는 삶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길러지는 습관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깨워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했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는 습관을 가졌기에 언제 어떤 상황이 와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안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신뢰하기 시작하면 ‘진정한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야기 하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참 아름다운 통찰이자 신앙의 고백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단순히 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할 수 있는 평강한 마음을 얻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음의 평강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평강은 분명한 확신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도한다면 그 기도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아주 귀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규칙을 알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진정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평안한 기도’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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