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한 줄 노트
-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온전히 주님께 사로집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히면, 온전히 자유로운 헌신이 가능해집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또 당신의 헌신이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나요?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23:44-49)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마가복음 10:28)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 예수님의 마지막 외침은 무엇입니까? (46절)
- 그 외침은 누구를 향한 외침이었습니까? (46절)
-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와 내어드림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45, 47-49절)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과 마음, 영혼의 고난을 묵상해 보십시오.
휘장이… 찢어지더라(45절)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장애물은 이제 없다. 하나님의 은혜의 현존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 제일 처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이는 이방인 백부장이었다(47절).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절)
예수는 사람의 손에 넘겨졌으나(눅9:44),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리며 맡기셨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영,혼,몸의 모든 정서와 감정, 고난을 뛰어 넘어 고요와 평정의 상태, 즉 평화로 이어진다. 예수는 십자가 한복판에서 아버지에 대한 신뢰 가운데 평화와 구원을 누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셨다.
가슴을 치며(48절)
후회나 애통을 표하는 유대인들의 행동.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취했던 행동(눅18:13)이며, 회개에 따른 행동이기도 하다.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무리들의 심경에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1. 진정한 구원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구원’에 대하여 이러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개인의 거룩을 경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주님과 연합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의 의미는 죄에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개인적 성화에 이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접촉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에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에 접촉하지 않은 구원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성품이 무엇인가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 사랑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그분의 사랑의 성품에 완전히 매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완전히 그분께 사로잡히게 됩니다.
오늘 묵상에서도 챔버스는 다시 한 번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단순히 거룩과 성화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라는 부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본질’과 ‘부수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에 대한 염려입니다. 만일 우리가 개인적인 거룩과 성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때, 자꾸 자신의 의지를 따라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넘어지고 실망하게 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놀라운 구원의 역사로 인해 부수적으로 찾아오는 결과물들인데 말입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이 무미건조해지고 우리의 사역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면, 이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잊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와 맞닿아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2. 구원의 결과
하나님의 성품과 온전히 접촉하게 될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진정한 구원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특징을 챔버스가 오늘 묵상 글에서 아주 명료하게 말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면 자신의 노력마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내어준다고 생각하셨을까요? 그 순간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고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the abandonment of God’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포기하고 내어주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접촉되는 순간, 우리도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게 됩니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쳐질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주님께만 완전히 사로잡힌 바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챔버스의 묵상은 자신이 겪었던 신앙의 여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이겠지요. 그도 사역을 하면서 사람들에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고민했던 때가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늘 말로는 그렇게 고백하는데, 사람들에게서 받는 평판이 우리의 사역을 좌우할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진정한 신앙과 위선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마가복음 14장 3-9절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화를 냈고, 어떤 사람은 이 여인을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람들의 반응에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온전히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의 헌신이 무척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서 자유가 사라집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사역 자체가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는데, 사람을 바라보면, 평가에 따라 의미도 기쁨도 달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