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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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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들 … 이삭을 데리고

창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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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때가 많습니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목적과 동일하다면, 그것이 ‘최고의 등정’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아브라함처럼 최고의 등정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야고보서 2:14-26 + 창세기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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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14-26)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창세기 22:2)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구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4절)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7절)
  • 행동하는 믿음의 전형으로 제시된 인물은 누구입니까? (21-25절)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14절)
‘구원 받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다.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는 마지막 날의 심판을 전제로 한다. 믿음이 행함을 통해 그 생명력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믿음을 가졌다(has)고 해도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말’ 자체로는 헐벗은 이의 배고픔과 추위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 없는 믿음은 심판대 앞에서 전혀 ‘유익’이 없을 것이다(15-17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
‘그 자체(헬, 카트 헤아우텐)’에 쓰인 헬라어는 재귀대명사(헤아우텐)와 분리의 뜻을 지닌 ‘카타’가 합해진 말이다. 즉, ‘카트 헤아우텐’은 ‘믿음 자체로부터 분리된 것, 본질로부터 소외된 것’을 뜻한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본질로부터 이탈된 믿음이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22절)
‘함께 일하다(헬, 순에르게이)’는 ‘지원하다, 기꺼이 도와주다’라는 뜻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순종(행동, 헬, 에르가)할 때 믿음(헬, 피스티스)이 그의 기능을 모두 수행했음을 뜻한다. 야고보 역시도 믿음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행함 보다 믿음을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그럼에도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된다(온전하게 되었느니라, 헬, 에텔레이오테).’ 행함 없는 믿음은 미완이요 불완전한 것이다. 믿음과 행함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영혼과 몸’의 관계처럼(26절) 분리될 수 없고 연합하여(순에르게이) 작용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즉각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것으로 이어졌다. 행함으로 증명되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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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2장 2절은 아브라함에게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을 통해 ‘지금’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챔버스가 지적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지금’이지 ‘나중’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논쟁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당장 하지는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명령을 미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에게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단순하게’, 이 명령에 대하여 가족들과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챔버스가 가장 우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동정심’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근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뜻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 문제를 가지고 가족들과 의논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데리고 그 산으로 올라 갈 수 있었을까요? 챔버스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을 “최고의 등정”(The supreme climb)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오늘 묵상 원문의 제목이죠.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주변의 것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결정하고 산에 오른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등정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산에 오르라고 명령하실 때,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중에’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희생은 현실 속에서 드려지기 전에 나의 의지 안에서 먼저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이미 의지적으로 결심했다는 것이죠. 챔버스가 자주 이야기하는 ‘의지의 양도’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서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 것은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습니다. 결심이 섰을 때는,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지식에 의지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심하지 못하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자꾸 지체하게 됩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결정 장애’라고 말합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오늘 묵상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최고의 등정’을 통해 ‘최고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큰 시험으로 여겨졌던 ‘희생’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챔버스는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희생 제사를 언제나 경계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스스로 희생을 자초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이 될지도 모릅니다. 자기연민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희생했다는 명예를 안고 자만심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명령하실 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달콤한 잔을 주시면 은혜로 마시고 쓴 잔을 주시면 주님과 함께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고통의 쓴잔을 마시며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어려운 일도 명령하시지만, 즐겁고 행복한 일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운 길을 가시게 하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지날 때는 인내하며 견뎌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했던 ‘최고의 등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련에 대하여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왜 이런 일을 하시는지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할 때는 섣부르게 하나님을 판단하기 보다는 ‘견디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시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기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증거는 명백합니다. 그가 산에 올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말리셨을 뿐 아니라 이삭을 대신할 제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여호와 이레’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산에서 미리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의 과정을 명령하셨다면, 그 길을 하나님께서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게 됩니다. 그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인격 중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더 고백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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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나눔
나윤주
빠른피드백 감사합니다 : )

안녕하세요. 주님은 나의 최고봉 본문이 빠져있네요. 본문파일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 )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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