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
창 22:16-19
한 줄 노트
-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에 ‘예’라고 대답합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의 축복된 약속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약속을 담기 위해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비웠습니까?
묵상 레시피
(고린도후서 1:18-22)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창세기 22:16-19)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 바울은 자신이 신실하다는 것을 무엇에 근거하여 주장합니까? (19-20절 상반절)
-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 됩니까? (19-20절 상반절)
-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까? (20절 하반절)
- 굳건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22절)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18절)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의 선교 일정들이 변경되는 것을 보고 ‘변덕스럽다’고 비난했다. 바울은 이것이 육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임을 피력한다(17절). 바울의 모든 행동은 ‘미쁘신 하나님’께 신실하게 순종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19절)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셨다. 예가 ‘되다(헬, 기노마이)’에 쓰인 헬라어는 현재 완료형으로 예수 안에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 ‘영원한 현재’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셨고, 이루고 계시며, 장래에도 완성할 것’임을 나타낸다.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수께서 하나님께 ‘아멘’의 순종을 했듯, 바울도 하나님께 순종했다. 이제 성도들도 하나님이 바울에게 순종하게 하신 일에 대해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21절)
‘굳건하게 하다(헬, 베바이오오)’는 ‘견고케 하다, 보증하다’라는 의미다. 이는 상업적, 법적 내용을 다룬 파피루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하나님이 바울과 성도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보증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직무를 감당하게 하신다. 성도들은 스스로의 신앙적 확고함이나 감정, 열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에 의해 확증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소유로 인치시고 성령을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주셨다. ‘인치다(헬, 스프라기조)’는 봉인된 서류에 찍혀 있어 서류 등의 내용물이 수송 중에 변조되지 않았음을 증거 한다. 또한 ‘인’은 누구의 소유인지를 나타내는 표이기도 했다. 성도들은 성령을 보증으로 받은 자로서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완성시킬 것을 확신한다.
영원한 목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챔버스가 지금까지 강조해왔던 주제를 다룹니다. ‘순종’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묵상입니다. 오늘 묵상의 원문 제목은 “영원한 목표”(The eternal goal)입니다. 즉, 우리 신앙인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순종’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 어떤 길을 갈지라도’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하시는 길에서 자신의 선택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순종을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순종은 우리가 선택할 여지가 없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때 ‘즉각적인 순종’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11월 11일 묵상의 내용,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던 ‘최고의 등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입니다. 챔버스는 이 순간을 가리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때’, 즉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그의 삶에도 진정한 목표가 되는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챔버스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성에 말씀하신다면 그분께 어떠한 질문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꾸 질문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자꾸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본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순종의 지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하실 때 올 수 있고, 함께 가자고 할 때 갈 수 있는 단계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던 순종은 수십 년 믿음의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즉, ‘순종의 훈련’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런 순종의 훈련을 해야 할까요? 순종은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게 되고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챔버스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가 순종에 의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할 때까지는 우리에게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365일 성경 안에서 뭔가를 읽어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약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약속해 주시는 분의 성품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그 약속이 무슨 유익을 줄 수 있을까요? 신뢰가 가지 않는 약속에 어떻게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그런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본성을 아는 단계까지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고민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의미하고 계시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이해하면 순종하겠다고 말하지만, 순종해야 이해가 됩니다. 어거스틴의 고백이죠. “나는 앎으로 하나님을 믿으려 하였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목표’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완전한 순종]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복을 베풀어 주시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으려면 완전한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차 탁자를 대할 때마다 거기에서 완전한 순종을 봅니다. 왜 차를 찻잔에 붓습니까? 찻잔이 비어 있고 차를 받기 위해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찻잔에 잉크나 식초 혹은 포도주를 부어 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찻잔에 차를 붓겠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채우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복을 베푸실 수 있겠습니까? 하실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하고 비록 의지가 흔들리긴 하지만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이여, 제가 주님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나와 내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께 드리는 것은 완전한 순종입니다”하고 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우리 삶 속에서의 순종을 통해 ‘아멘’이라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답할 때, 그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순종이란 마치 비어있는 찻잔과 같다고 말합니다. 찻잔이 깨끗하게 비어있는 상태라야 좋은 차를 채울 수 있듯이, 우리도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복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순종과 약속의 관계는 명확합니다. ‘예’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아멘’으로 대답하면 그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이러한 순종의 단계로 나아가는 영적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