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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이 주신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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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눅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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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주님께서 우리를 아프게 다루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꿰뚫고 계시는 분입니다.
  • 주님의 부르심은 엄격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셨다면, 지금 당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뜻입니다.

묵상질문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아직 마음속에서 핑계대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그 일이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9: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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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서기관의 결단과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57-58절)
  • 예수님께서 부르신 자의 반응과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59-60절)
  • 스스로 예수를 따르겠다는 자가 내건 조건은 무엇입니까? (61절)
  • 예수님이 하신 대답은 무엇입니까? (62절)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57절)
‘어떤 사람’은 서기관이었다(마8:19).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적대적인 관계에 비춰볼 때, 오늘 예수를 따르기로 한 서기관의 결단은 결코 충동적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언행을 꼼꼼히 살폈을 것이며 그 결과 유대인이 바라던 하나님 나라를 예수 안에서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영광에 이르는 과정에는 고난과 헌신이 따른다(58절).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59절)
예수님은 설명이나 약속 없이 ‘나를 따르라’ 간명하게 명령하신다. 즉각 따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5:27), 스스로 조건을 다는 사람도 있다(59,61절). 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이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헬, 퀴리에)’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례는 유대인들이 성전 예배, 절기, 할례 의식을 준수하는 것보다 앞세울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 예수님의 대답은 인륜을 저버리라는 말이라기보다 복음전파의 중요성과 시급함을 강조하신 것으로 보인다. 혹은 아직 부친이 살아있고 죽어 장사 지낼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핑계대지 말고 지금, 즉시!’따르라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61절)
‘내 가족(헬, 토이스 에이스 톤 오이콘 무)’은 헬라어로 살펴볼 때 ‘의사 결정권이 있는 남성들(토이스)’을 가리킨다. 즉, 자신이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했지만 의사 결정권이 있는 아버지 혹은 형제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결심은 그리 확고하지 않고 권위나 영향력에 의해 번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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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픔을 주시는 이유

오늘 묵상도 ‘go’ 시리즈로 앞선 묵상들과 연결됩니다. ‘준비하기 위해 가라’, ‘바른 관계를 위해 가라’와 더불어, 오늘은 ‘포기하기 위해 가라’는 묵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와 말합니다.
누가복음 9장 57절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그런데 이어진 주님의 말씀은 그의 의지를 좌절시킬만큼 혹독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그리고는 아버지를 장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과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고 오겠다는 사람에게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차갑게 말씀하셨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냉담하게 말씀하셔서 주님을 좇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실 필요가 있었는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픔을 주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엄격하게 다루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분명하게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당신에게 아픔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 당신은 주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아프게 할 정도로 뭔가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고 확신해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프게 다루신다면, 우리 안에 제거해야할 무언가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낭만적인 생각입니다. 주님을 따라 동행한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온전히 주님을 따라 가기 위해서는 발목을 잡는 모든 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여기서 제가 ‘잘라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잘라내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중요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군목으로 사역하시던 아버님이 은혜를 체험하고 다시 한 번 헌신을 다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가셔서 낚싯대와 바둑판을 쪼개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버님을 당시 유명한 부흥사로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낭만이 아니라는 말은 주님을 따르기로 할 때 ‘가서’ 잘라내고 포기할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2. 엄격한 부르심

주님께서 오늘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 중 세 가지를 조금 더 깊이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는 말은 즐겁게 주님을 따르려던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죠.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좋은 집에서 살고, 여유를 즐기고, 취미 생활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이지, 다른 어떤 것도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따르면서 좋은 집을 사는 것, 우리 육신이 몸담을 곳을 찾는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시작부터 주님과의 관계, 주님을 따르는 이유를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했나요?


두 번째,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한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쩌면 주님의 마음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아버지와 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챔버스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 대신에 가족들에게 민감한 충성을 앞세워 예수님을 맨끝에 둡니다. 충성에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십시오.”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사역’을 핑계로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길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어쩌면 이쪽저쪽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디에 충성하고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저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혼자 교문 밖을 나서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입니다. 아버지는 부흥회 강사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교인 가정 장례에 참석하시느라 졸업식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많이 슬펐지만, 우리 부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때는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평생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 제 안에 훨씬 크고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마 지금 제가 목회자로 사역할 수 있는 이유가 그런 분명한 생각 때문이 아닐까요?


세 번째로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따르기 전에 해결할 일이 몇 가지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뒤에 주님을 따른다면, 과연 언제 따를 수 있을까요? 우리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는 완전하게 준비된 상황이 있을까요? 주님의 엄격한 부르심은 작별인사 할 여유도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확실할 때는 작별의 여지도 없습니다. 부르심은 따라가는 것이지 멈춰 섰다 다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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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나눔
박영호
주님 재현이 때문에 맘이 많이 아파요 재현 건오를 죽이지 말고 사랑해주세요 나에게 상처 받은 맘을 만져주세요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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