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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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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막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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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를 때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묵상질문

주님을 따르기 위해 포기해야할 목록을 적어봅시다. 하나하나 포기하는 순간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12:32-34 + 마가복음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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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32-34)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마가복음 10:21)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32절 상반절)
  •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쁨으로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32절 하반절)
  •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33-34절)

적은 무리여(32절)
‘적은 무리’는 예수님께 몰려든 수많은 ‘무리’와 구별되는 소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무리(헬, 포임니온)’는 양 떼(행20:28)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연약한 양 떼로 보셨다. 제자들은 거대한 세상과 구별되는 존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예수님은 소수이며 연약한 제자들에게 ‘무서워 말라’고 격려하신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32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주신 것을 ‘기뻐하신다(헬, 유도케오).’ ‘기뻐하다’라는 헬라어는 ‘둘 중 하나를 더 원하다, 선호하다(고후5:8)’라는 의미가 있다. 즉,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과 제자들 중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주시기를 더 선호(기뻐)하신다.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33절)
이는 하늘에 보관되는 불변의 가치를 의미한다. 세상 재물은 가치가 변하고 언젠가 없어질 것이지만 하늘의 ‘주머니’는 낡지 않는다. 하늘 주머니를 만드는 것은 ‘구제’하는 것이다. 누가는 ‘구제’를 무척 강조했다(11:41,행9:6,10:2,4,24:17) ‘구제’는 움켜쥐고 축적한 나의 소유와 권리를 손을 펴 흘려보내는 일이다. 다른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보물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세상 창고에 보물을 두는 이의 마음은 세상에 있고,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는 이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 있다(34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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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라고 하시는 이유

9월 26일 “성령의 예리함을 따라”라는 제목의 묵상에는 ‘go’라는 단어가 없지만, 다섯 개를 묶어 하나의 시리즈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벌써 다섯 번째 ‘go’ 시리즈 묵상을 접하면서 점차 그 의미를 깨닫는 것 같습니다. ‘go’의 의미를 잘 살려서 제목을 묵상해 보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The ’go’ of preparation“ – 준비를 위해 가라!

“The ‘go’ of relationship” – 올바른 관계를 위해 가라!

“The unblameable attitude” – 형제와 화목하기 위해 돌아가라!

“The ‘go’ of renunciation” – 포기하기 위해 가라!

“The ‘go’ of unconditional identification” – 무조건적인 일치를 위해 가라!

여기에서 ‘가라’는 단어를 ‘살아라’로 바꾸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할 때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분문은 주님을 따르겠다고 온 부자 청년관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온 사람에게 요구되는 ‘무조건적 일치’(unconditional identification)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위해서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무조건적인 순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 됩니다. 부자 청년 관원은 주님께 매력을 느꼈고, 완전히 일치되고자 하는 열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부러움 같은 것도 느꼈겠지요. 또한 그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개인적 거룩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른 것을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자기 권리를 다 포기하고 다른 어떤 관계보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앞세워 주님과 하나 되려고 하는가를 보십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 즉 주님과 일치된 삶을 살겠다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화나 구원을 이야기 하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과의 관계에서 전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 주님의 제자가 되어 살겠다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가서 오로지 주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삶을 살아라! 그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


2.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따르라는 말씀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청년으로 하여금 구원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곧 구원받은 삶을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라는 말씀은 오직 주님만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챔버스의 말이 조금 모순되게 들립니다.

“이는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의지함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 그 길은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우리의 초점은 구원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개인적인 거룩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재산까지도 포기할 수 있을 때 구원이 임합니다.  개인적인 거룩을 위해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소유를 포기할 마음이 있을 때,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려고 결단하고 순종할 때 모든 것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픔을 주셨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시나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아픔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에게 보내시는 주님의 시선은, 그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뗄 수 없는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아프더라도 그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런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허술한 곳을 찾아 주님이 이런 시선을 보내고 계시다면,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의 길]에서 따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시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그분을 따르는 삶은 의미부터가 다르다. ‘나’를 떠나 ‘하나님’을 향하라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을 우리 존재의 중심에 모시라는 부름이다. 기꺼이 ‘나’를 내려놓고 점차 ‘주님, 제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라고 아뢰는 것이다. 이는 자아를 찾는 길이 아니라 자아를 비우고 버려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내 중심을 내어 드리는 길이다. 예수님은 평생 자신을 점점 더 버리심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두셨다. “나를 따르라”라는 그분의 말씀은 이런 뜻이다. “자아의 자리를 떠나라. 부모와 형제와 익숙한 집과 소유를 떠나라. 네가 중심인 너의 ‘나 세상’을 떠나 예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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