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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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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마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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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은 떠나라고 명령하신 그곳에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실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이 지금 당신에게 기다리라고 하십니까, 떠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하다면 순종하십시오.


묵상 레시피

◆마가복음 15:29-39 + 마태복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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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29-39)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숨지시다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11:1)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조롱했습니까? (29-30절)
  •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희롱했습니까? (31-32절)
  • 예수님은 어떤 형편에 놓여 있으셨습니까? (34절)
  • 예수님은 십자가와 죽음으로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38절)
  •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해 무엇을 고백합니까? (39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여 이르되(29절)
지나치는 자들은 쉽게 평가하고 가볍게 말한다(애 2:15). 깊은 헤아림과 공감보다 흔드는 말들로 요동치게 만든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 대해 좀 더 복잡한 심경을 가졌을 것이다(31-32절). 종교적 권위와 권력욕, 민중에 대한 통제 욕구, 시기 등. 자기 죄로 인해 십자가에 달린 이들조차 예수님을 욕했다(32절).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38절)
그들은 예수님의 무력함을 지적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조소한다. 그들은 자기를 구원하지 않음으로 남을 구원하는 십자가를 결코 깨닫지 못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후1:18).” 예수님은 십자가에 끝까지 매달려 있었고, 최선을 다해 가만히 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사명의 극대치를 이루신다(38절, 롬3:21-26, 고후5:18,21, 히6:19,9:3,10:20, 벧전1:18-20).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요19:30).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9절)
자녀이면 상속자요,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는다(롬8:17).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알았고 그에 순종한다. 조롱과 십자가, 죽음을 감당한다.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 고백은 유대인이나 제자 아닌 이방인 백부장의 입술로부터 나온다. 찢겨진 휘장을 통해 새로이 제시된 길로 들어간 첫 사람은 이방인이다(39절). 그는 예수님 앞에 있었고,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았다. 오직 십자가 아래 있는 자만이 예수님과 십자가를 바로 깨닫고 고백할 수 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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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

매일 묵상을 준비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챔버스의 아내 비디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출판한 후 9년이 지나서 44개의 묵상을 따로 뽑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게 됩니다. 오늘 묵상이 바로 그 44개 중 첫 번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선교의 사명을 고취하기 위해 출간되었기 때문에, 오늘 묵상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본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챔버스는 선교사에게 있어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했고, 선교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의 빈약함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1911년 성경훈련대학 개교 첫 날 그가 전한 메시지는 이러한 상황에 아주 명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우리 학교의 설립 목표는 게으른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선교에 대한 무지와 성령님은 무지를 장려하신다는 그릇된 관념을 뿌리째 뽑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스터디 가이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훈련받고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떠나라고 하시는 곳으로 오십니다. … 불순종할 경우 당신은 주님의 길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주님의 인도하심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떠나라’, 다른 하나는 ‘기다리라’는 명령입니다.

떠나라는 명령에 대해 머뭇거리는 것은 ‘염려’ 때문입니다. 염려하면서 순종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떠나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됩니다. 떠나라는 명령에 대하여 우리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말씀은 알지만 내 책임이 남아 있어서….”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겠다는 완고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요?


수년 전 [누가 왕인가?]라는 책을 쓰면서,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한 사람과 자신을 ‘왕’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순종하지만, 신뢰를 잃으면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우기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힘겹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경청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뜻을 막고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하실 거라고 확신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챔버스가 몇 번이나 언급한 ‘변화산 체험’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황홀한 영적 체험 가운데서 ‘여기에 초막 셋을 짓되’라고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의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순종할 때만이 온전한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기다리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의 인도하심은 명확하게 ‘떠나라’고 하시기도 하지만, ‘기다리라’고 하실 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 말씀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만일 주님께서 거기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셨다면, 거기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분을 기다리면 그분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며 기다림에 대한 바람직한 영적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다림이란 가만히 손을 접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스토미 오마샨이 쓴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에서 ‘기다림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행동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다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입니다.

인내를 배울 때 우리는 그분을 닮아갑니다.

시험받을 때, 광야를 걸을 때, 우리의 꿈을 포기할 때, 적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기다림의 때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까?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기다림의 때’를 하나님을 섬기는 시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현재의 상황을 참고 견딘다고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훨씬 견디기 쉽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그 다음에 어떤 일을 행하실지 간절히 기다릴 것입니다.


챔버스가 묵상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한 주제 중 하나는 ‘기다리는 가운데 누리는 영적인 평안함 혹은 자유’입니다. 이 평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있다”라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때로 사역자들에게는 가장 적극적인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고 해서 무능력한 것은 아닙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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