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 7:13-14
한 줄 노트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과 구원받은 자로서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용기 있는 제자로 살도록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입니다.
묵상질문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을 말해봅시다.
묵상 레시피
(베드로전서 4:1-11)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무엇 하라고 권면합니까?(1절)
-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2절)
-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3-5절, 7-10절)
- 말하는 자, 봉사하는 자 등이 기준 삼을 것은 무엇입니까? (11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1절)
그리스도의 정신과 생각으로 무장하라는 명령이다. ‘갑옷을 삼다’는 말은 전투를 예상하는 것이다. 성도로서의 삶이 녹녹치 않음을 예고한다. 이들은 육체 가운데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사람의 정욕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좇아 산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함께 했던 자들의 비방을 받을지라도 감내해야 한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11절)
성도가 해 나갈 모든 일은 이제 하나님으로 해석되고 정립되며 실행된다. 은사를 사용하고 말하며 봉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관련된다. 재력과 체력, 봉사에 대한 의지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또한 말이든, 봉사든,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1. 어렵지만 가능하다
오늘 묵상에서도 [주님은 나의 최고봉]의 핵심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제자로서의 삶은 ‘최상의 주님께 우리의 최선을 드리는 것’(our utmost for His highest)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 묵상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모든 고상한 것들은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고상한 것들’은 영광스러운 제자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한 어려움은 우리를 낙담하게 하기 보다는 극복할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 동기가 우리로 하여금 ‘최선의 것’을 ‘최상의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동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우리로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르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십니다.”
구원을 받는 것과 은혜로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고상한 제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스왈드 챔버스의 제자도]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체험할 때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아니다. 사람의 믿음을 구원의 바탕에 두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 .
구원은 구속을 통한 은혜의 선물이다. 하늘나라에서의 지위는 선물이 아니라 구원 받은 각 사람이 얻어 내야 하는 것이다. 구원과 성화는 다르며, 구속 받은 사실과 구속 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입증하는 것도 다르다. 구원을 받았어도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야비한 삶을 살 수 있고, 유한한 육체를 통해 주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는 삶을 살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을 구하려고 제자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속주의 생명과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제자를 만들라”고 보내셨다. . .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구원받은 우리는 그 구원의 은혜를 우리 삶에서 구현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우리 삶에서 실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늘 그렇듯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만일 구원의 삶을 실현하는데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실천’(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실천하는지 아닌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진위가 드러납니다. 삶의 위기는 단순히 은혜의 진위만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 가운데 성령에 이끌려 순종한다면, 그분이 우리 속에서 일하며 역사하고 계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2.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지만 그 즉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원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책 [예수의 길]에도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우리가 걷는다는 뜻이다. 말하고 살고 관계를 맺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 여정 가운데 있는 역경을 없애 주지 않으신다. 감히 말하건대 예수님을 따르면 모든 것이 변하면서도 모든 것이 그대로다. … 제자라 해서 삶이 더 쉬워지지 않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자신의 발로 걷는 사람입니다. 제자의 길을 간다고 말하면서, 걷기 싫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영광스럽지만 어려운 길, ‘모든 것이 변하면서도 모든 것이 그대로’인 길이 제자의 길입니다.
우리 삶에는 늘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때에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시간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판가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데 필요한 어떤 여건들을 회피하도록 돕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챔버스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 삶에서 경험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담력, 거룩이 필요합니다. 챔버스의 이 말도 참 멋집니다. 영어 원문을 제가 해석하여 옮겨 보겠습니다.
(의역)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을 나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강한 가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주님의 제자로 고상한 삶을 사는 것은 아주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노력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좋은 제자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몇 년 전 [살아내는 약속]이라는 책을 쓸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계명을 왜 주셨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을 지키는 일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저절로 삶에서 지켜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책에서 썼던 글을 조금 더 옮겨 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많은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당장 재산을 팔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나의 소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삶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소유의 유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