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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낙심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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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눅 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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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낙심하지 말고, 우리가 기도하는 그 분께 집중하고 그 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우리 일상 속에 가까이 계시니, 그 분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느껴야 합니다. 보이지 않고, 우리가 모르는 것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평범한 일상과 늘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끼고 있나요?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2:22-40 + 누가복음 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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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2-40)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21)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 성전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만난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28,36절)
  •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25,36절)
  • 그들은 왜, 어떤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습니까? (26,37절)
  • 그들 앞에 나타난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22-24,27절)
  • 그들은 그 모습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였습니까? (28-32,34-35,38절)
  • 요셉과 마리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왜 그런 반응을 했을까요? (33절)

    두 사람의 삶, 성전에 나타난 요셉과 마리아, 아기예수를 그려보며 묵상해 보십시오.

정결예식(22절)
출 13:1,11절에 근거하여 장자를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
모든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일생을 바쳐야 한다는 사상에 근거한다.
후에 레위 족속이 장자 역할을 대신하면서 다섯 세겔로 이 일을 대체할 수 있었다(민18:15-16).

산비둘기 한 쌍, 어린 집비둘기 둘(24절)
마리아의 정결례는 레12:1절에 근거한다.
규정에 정한 기한이 차면 번제를 위해 회막문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갔다.
어린양이나 비둘기 한 쌍, 어린 반구 두 마리를 바칠 수 있었는데 비둘기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이 가난한 편에 속했다고 추정한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25절)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기다리는 것, 혹은 위로자라는 의미를 지닌 ‘메시아’ 기다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짧은 기도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에나 접한 듯 새삼 놀라웁고

창 밖 울타리 한 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 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한 우주, 허막한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실상으로 깨닫습니다.

구상_ 말씀의 실상(1919-2004, 시인)「사귐의 기도」36-37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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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심의 이유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고 난 후, 실망한 채 엠마오로 가고 있던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이 만나주신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이나 지났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만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일, 즉 자신들이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과 그 결과를 추론하는 제자들의 생각은 주님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 다름으로 인해 제자들은 ‘낙심’했고,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문제는 제자들에게 찾아 온 ‘낙심’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낙심의 이유를 ‘정욕(lust)’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금 취하려는 육신의 정욕이요 다른 하나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기도의 응답만을 요구하는 영적 욕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보다는 ‘영적 정욕’의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영적인 것’과 ‘영적 정욕’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영적 정욕은 우리를 낙심으로 인도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영적 정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의 양’을 단지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기도의 내용’을 무시하며 하나님께 뭔가를 요구는 것이죠. 우리가 때때로 ‘작정 기도’라는 것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전혀 무관하게 우리의 목표를 세워놓고 하나님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낙심’이 찾아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셔야 한다는 고집은 정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기도의 의미는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낙심은 ‘우울증’의 일종입니다. 우리에게 낙심이 찾아왔다면 영적으로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 낙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낙심은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낙심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우리가 바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판단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보아야 할 것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많은 이단들이 등장합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영적 우월감’에 빠져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종종 ‘왜 지적인 사람들이 저런 이단에 빠질까?’ 의아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지식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지적 교만으로 인해 잘못된 이단으로 빠지는 경우들을 많습니다. 챔버스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환상을 기다리는 것 혹은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인 것처럼 지진과 천둥을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간구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기적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의 방식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그 분이 행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우리가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까이 있는 책임을 다할 때 우리는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평범한 것들 속에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낙심에서 헤어 나와 우리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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