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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제물로 드려질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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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딤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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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의 의지조차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쉽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 결단이 쉽지 않지만 온전한 제물이 되어 태워지는 순간 우리는 완전하게 구별될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손을 묶어 온전히 구별된 제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묵상 레시피

◆레위기 1:1-9 + 디모데후서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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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1-9)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디모데후서 4:6)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번제는 구약 시대의 대표적인 제사로 제물을 남김없이 온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 번제에 사용된 제물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3절)
  • 제물은 누구에게, 어떻게 받도록 드려졌습니까? (3절)
  • 제물에게 안수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4절)
  • 제물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5절)
  • 위 과정을 통해 볼 때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제물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 제물은 제단 위에서 어떻게 드려집니까? (9절)

흠 없는 수컷(3절)
소는 노동용, 우유와 고기, 가죽 등으로 매우 유용한 동물이었으며, 고대 사회에서는 특히 수컷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흠 없는 것((히)타밈)이란 출생할 때부터 사고, 병으로 인한 흠이나 결함이 없는 것이다.

회막 문(3절)
정문과 제단 사이 성막 뜰. 번제를 바치는 데 제물을 가져온 이가 직접 참여했으므로 제사장 아닌 일반인도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서 수소를 도살해야 했다. 제단과 회막 사이 구역은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받으시도록(3절) (히)라촌
(히)라촌은 희생의 효력을 확인해 주는 ‘전문적인 제의 용어’로 사용되었다. 열납 되는 제물. 하나님께서 제물을 바치는 자를 위한 대속으로 그 짐승을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2가지 필수 조건은 ① 흠 없는 짐승을 ② 바치는 자가 직접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하는 것이다.

번제(9절) (히)올라
올려놓다, 올라가다. 짐승 전체가 불에 태워지는 것과 일치한다. 이 히브리어는 번제 뿐 아니라 전체제(whole offering),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즉, ‘전부’를 태우는 것이다.


짧은 기도

주님, 저를 깊이 품어주소서.
저를 붙드시고 제련하시며 깨끗하게 하시고
불을 붙이시며 높이 들어 주소서.
저의 자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테이야르 드 샤르댕_저의 자아가 없어질 때까지(1881-1955, 프랑스 과학자, 예수회 신부)
「사귐의 기도」298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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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지의 문제

오늘 묵상의 원제목 ‘Are you ready to be offered?’는 어제의 묵상과 동일합니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숨은 의도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챔버스는 어제 묵상에서는 자기를 비워내는 자세를, 오늘의 묵상에서는 우리의 마음가짐,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나를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두 번 ‘자기연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연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의지를 드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자기연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의지의 드림’과 ‘자기연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하나님이 때때로 우리를 위기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 의지로 선택한 일로 인해 그런 어려움을 겪는다면 불평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택한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비참함으로 인해 더욱 더 ‘자기연민’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의 의지도 드려야 합니다. 의지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간 어떤 일이 발생해도 불평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오늘 챔버스는 왜 디모데후서 4장 6절을 본문으로 택했을까요?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한 내용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던 사도 바울의 삶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차가운 감옥에서 말년을 맞이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자기연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생을 치열하게 산 사람들의 특징은 ‘죽음을 의식’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의식하고 두려움 가운데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니 남겨진 삶을 더욱 값있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본문 말씀 중 ‘벌써’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어성경에는 ‘already’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그 의미가 ‘생각보다 일찍’ 죽음이 왔다는 말 보다는, ‘예견되어 있다’라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전제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도 바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죽음의 예견이 아니라, 그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가까이 왔으니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기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좌지우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입니다. 챔버스는 이 죽음 앞에서 우리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 묻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위기를 지나게 하십니다. 아무도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2 제물이 되면 구별됩니다

오늘 묵상에 나오는 두 번째 ‘자기연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제물을 제단 뿔에 묶는 것입니다. 이제 그 제물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이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특별히 우리의 의지를 드리는 일을 시편 118편 27절 말씀,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의지의 표현은 제단 뿔에 우리를 제물로 ‘묶어버리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이 움직이지 못하기 위해 뿔에 매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은유적인 의미로, 사람들이 제단 뿔을 잡는 것이 용서와 보호를 요청하는 구원의 방편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일은 그저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단 뿔에 손을 묶는다는 것은 또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유혹에서 이겨 나겠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단에 드려진 제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불로 태워지는 것이죠. 태워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고통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더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지를 주님께 맡겼어도 태워지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지막 고비에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고비를 지나가야 합니다. 챔버스는 제단에서 태워진 제물은 ‘구별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고 의지적 결단을 내릴 때, 그 제단에서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소멸되는 순간 온전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제물을 제단 뿔에 묶는 것입니다. 이제 그 제물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제단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태우고 거룩하게 하고 구별합니다. 곧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것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고 의지적 결단을 하면, 그 다음 구별을 가능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이 불이 타오른 후에는’ 이라는 말입니다. 의지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에서 기꺼이 타오르는 불에 자신을 맡기는 과정이 아프고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이 타오른 후에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그렇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단에서 태워진 나는 온전히 구별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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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나눔
한상원
오늘의말씀:

디모데후서 4장 6절

마지막 날을 연습하라
 
☆세월이 넉넉하지 않다.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력과 능력을 다 소진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가까웠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바울이 ‘벌써’라고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즉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넉넉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월의 덧없음을 아쉬워한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시90:10).

김창완이 만들고 산울림이 노래한 ‘아니 벌써’는 모든 사람이 부르게 될 노래라고 생각한다.

* 시간을 아껴야 한다. 열심히 살았던 바울에게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는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5-16).

여기서 ‘아끼다’는 ‘사다’ 또는 ‘속량하다’의 뜻으로서 세월을 아끼려면 땀과 절제 등의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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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우리의 의지조차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쉽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결단이 쉽지 않지만 온전한 제물이 되어 태워지는 순간 우리는 완전하게 구별될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손을 묶어 온전히 구별된 제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기도

하나님~
아직도 준비중이고
너무나 게으러고
너무나 소심하고
너무나 이기적인나를치유하여주옵소서!!

아멘~할렐루야!!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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