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한 줄 노트
- 영생하는 샘물이 되라는 명령은 끊임없이 흘러 누군가에게 복이 되라는 뜻입니다.
- 축복의 통로가 되는 근원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룻기 4:13-22)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요한복음 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예수님과 다윗 왕의 족보는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까? (18절)
- 보아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21절)
- 다윗 왕의 증조부인 오벳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17,22절)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15절)
나오미의 삶은 그가 고백한 것처럼 쓰디 쓴 삶이었다(1:21). 기근을 피해 떠났던 모압 땅에서 두 아들과 남편 모두를 잃고 이방여인인 며느리 룻과 초라한 모습으로 귀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빈손으로 돌아온 그들을 은혜로 채우셨다(14-15절).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15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다윗 왕의 족보 일부가 나와 있다. 베레스는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낳은 아이였다(창38장). 보아스의 아버지는 살몬인데 그는 여리고의 기생으로 알려진 라합과 결혼했다(수2:1-21,6:17-25). 오늘 태어난 아기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 다윗 왕의 증조부가 되는데 어머니가 모압 여인 룻이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마1장) 이방 여인들, 그들에 관한 일화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쓰시는 방법에 대해 묵상하게 한다. 예수님의 족보, 다윗 왕의 족보는 아주 작은 마을, 평범하다 못해 세상이 소외시킨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 진정한 축복은
어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마치 강물과 같아서,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장애물을 극복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묵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마치 샘물처럼 솟아나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그림은 물이 흐르는 도랑이 아니라 생수가 솟는 샘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주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차고 넘치는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성도의 책임입니다. 혹시 무언가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샘물의 근원이신 주님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구원의 은혜]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수로나 도관의 역할을 한다. 은혜는 샘의 근원이다. 믿음은 자비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통로와 같은 것으로, 이 통로를 통해 흐르는 물로 목마른 사람이 소생함을 얻는다. 그 통로가 파괴되는 것은 큰 비극이다. 로마에 가 보면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물을 흘러 보내지 못하는 많은 수로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아치들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수로는 물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완전히 보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믿음도 진실하고 건전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잘 연결시켜 줌으로써 영혼을 위한 자비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목마른 사람은 은혜의 샘에서 믿음이라는 수로를 통해 솟아나는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수로에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물이 공급되지 않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이상 넘치는 은혜가 흐를 수 없을 것입니다. 챔버스가 반복해서 말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복은 ‘개인적 축복’이 아니라, 생수가 나에게로부터 흘러넘쳐 누군가에게 복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기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흔히 ‘축복의 통로’라는 말을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생수가 우리를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통로는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입니다.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단강은 위로부터 흘러 계속해서 내려갑니다. 그곳에는 생명이 삽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흘러 사해에 고인 물은 더 이상 흐를 곳이 없습니다. 제가 성지순례에 갔을 때 요단강이 생각보다 맑지도 넓지도 않아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면 사해는 무척 넓고 깨끗해서 유명한 휴양지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생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흘러 들어온 축복을 나누지 않으면 ‘죽은 바다’가 됩니다.
2. 생수의 근원
그렇다면 어떻게 생수가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 역시 주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생수를 확실하게 공급받고 있다면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나눌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주님께 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나 경험을 나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권혁승 교수가 쓴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라는 칼럼이 참고하기 좋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생수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코르’는 땅속에서 솟아나는 지하수 샘물을 의미한다. 이 물이 흐르면서 큰 물줄기가 되고, 여러 개의 물줄기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 생수의 근원은 때를 따라 내리는 비와는 성격이 대조적이다. 이스라엘에서 비는 겨울 우기에만 내리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강우량의 편차가 커서 농경과 목축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생수의 근원 되신다는 것은 시기나 장소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제한 없이 넘쳐흐르는 생수의 복이 되신다는 선언이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넘치고 있습니까? 교회가 세상에 주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도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물질로 선행을 베풀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도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의 믿음과 그분과의 관계를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메마름도 없고 죽음도 없는 가운데 끊임없는 생수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흐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의문을 갖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그런데 이런 관점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면, 나에게서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내게서부터 흘러가는 샘물의 근원이 보이지 않습니다. 챔버스는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의 의미를 자신에게서 찾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의 역사에서 보면, 그 강물은 언제나 거의 보잘것없고 유명하지 않으며 무시당하지만 변함없이 주 예수님께 진실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고린도후서 6장 9-10절에서 사도 바울이 했던 말이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