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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까?

통독표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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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말씀이 당신을 짜증나게 하거나 삶에 걸림돌이 된다면 아직 육에 속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순간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강력한 성령의 빛 앞에서 자신을 고백하는 것은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이며, 아직도 자신을 변론하고 있다면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묵상질문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히 알기 위해 우리 안에서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 혹은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묵상 레시피

◆사도행전 2:14-42+ 고린도전서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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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4-4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고린도전서 3:3)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예언과 언약의 말씀들을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 영에 속한 자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17-21절)
  • 베드로가 전한 말씀의 내용과 핵심은 무엇입니까?22-36절)
  •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37절)
  • 베드로가 말씀들은 자들에게 요청한 결단은 무엇입니까? (38-40절)
  • 세례를 통해 예수께 정체성을 두자 어떤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42절)

베드로가(14절)
베드로는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실수가 많았고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했으나 예수님의 사랑과 용납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성령의 조명 아래 말씀을 깨닫고 담대히 선포하는 자가 되었다.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16절)
하나님의 영은 남녀노소,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부어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영의 사람에 속하게 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며, 성령의 인도 안에 믿음으로 반응하게 된다.

가르침, 교제, 떡, 기도(42절)
예수의 가르침 전부와(마28:20)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리킨다. 성도들의 교제(코이노니아)는 영적, 정신적, 물질적 교제(구제)를 포함했다. 떡을 떼는 일은 애찬, 성찬 둘 다로 볼 수 있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공동체의 가난한 지체들을 위해 떼는 애찬이 있었다. 예배와 신앙 공동체라는 점에서 ‘떡을 떼며’는 ‘성찬’으로도 볼 수 있다. 기도는 영에 속한 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기도의 본이셨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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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에 속한 증거

우리의 신앙에서 꼭 점검해야 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육에 속한 사람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는 이 기준을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데,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을 향해 무섭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것을 보니, 육에 속함이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시기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있습니까? 챔버스는 이렇게 점검해 보라고 말합니다.

“성경 안에 당신을 짜증나게 만드는 진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는 당신이 지금 육에 속한 상태임을 증거합니다. 만일 성화하는 과정에 있다면, 그러한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주 실제적인 적용입니다. 3월 4일 묵상에서도 ‘유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성경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유용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냐를 묻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적용되고 있음이 감사함으로 고백된다면 우리는 분명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면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불편하게 할 때 감사하십시오. 우리에게 말씀에 반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 34일 차에 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정체성을 둔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건 없이 사랑 받고, 은혜로 용납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불확실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비하하는 일도 기꺼이 용납한다. 확실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섬길 수 있다. 정체성이 불안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걱정한다. 그들은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만과 가식 아래 숨는다. 우리가 불안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섬겨주고 인정해주기를 원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무관심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미와 가치를 그들의 잣대로 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우리의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을 드러내 떠벌일 필요가 없다.”


2 영에 속한 증거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증거를 알았다면, 이제 영에 속한 증거가 무엇인지도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늘 변명하지만, 영에 속한 자가 되면 당장 죄를 자백합니다. 빛의 자녀가 되면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빛에 서는 자는 죄에 대하여 가장 민감해지며, 찬란한 빛 앞에서 우리의 변명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영에 속한 자가 되어 죄를 자백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잘못된 것들을 다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변론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스스로 어둠의 자녀임을 시인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육신에 속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주 실제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주십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실질적인 확인(practical test)이 곧 육신이 제거된 유일한 증거(only proof)입니다. ‘이 일이 전에 발생했다면 분명 내 안에 짜증과 분노가 있었을 텐데!’ 당신은 내면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며 놀라게 될 것입니다.”


가장 실제적인 증거!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내면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에 분노가 생기지 않을까?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지금의 모습이 바로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인 흉내를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2장 10절을 보세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여기서 “통달하신다”라는 말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라는 말입니다. ‘통달’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보니까 ‘어떤 것을 막힘이 없이 환히 다 알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부분을 ‘search’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구석구석 다 검색해서 알아낸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엠파스나 네이버와 같은 search engine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다와 같은 인터넷을 샅샅이 이 잡듯이 뒤져서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정보를 찾아주는 검색 사이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령께서 ‘통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라는 것 입니다. 강력한 search engine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어떤 부분에, 어떻게 관여하시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갑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아프게 하실 때, 회피하지 말고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아픔’을 통하여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성령의 빛이 육신에 속하여 있을 때는 아픔이지만, 영에 속한 삶을 살 때는 기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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