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한 줄 노트
- 평범한 일상에서 주님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사역’입니다.
묵상질문
지금의 일상을 ‘주님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일상 가운데 주님의 손길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3:12-17)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제자들은 예수님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13절)
- 예수님의 호칭은 제자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합니까? (14-15절)
- 행함의 여부로 판단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16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13절)
주(헬, 퀴리오스)라는 말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예수님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그분의 행동과 말, 명령이 가지는 무게와 도전은 더욱 커진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다면, 제자들도 이를 행할 준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분을 ‘선생’으로 모시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분의 말씀과 기준, 가치관, 태도, 명령, 본보기, 가르침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확신을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모든 영역을 예수님께 전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다. 만일 제자들에게서 그분이 명령하신 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주’와 ‘선생’, ‘보낸 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예수님 위에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16절).
주변 바라보기
오늘로 6회에 걸친 미니시리즈 3개가 끝납니다. 오늘 묵상은 어제 말씀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제 묵상에서 평소 준비되어야 하는 ‘개인적 예배’의 중요성을 얘기 했다면, 오늘은 우리가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세족 목요일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평범한 일상의 일이었습니다. 챔버스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상의 삶에서 성품이 드러난다는 것이죠. 우리가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는 바로 주님이 행하신 대로 우리가 가장 일상적인 일들을 하려고 할 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가장 일상적인 일, 즉 수건을 두르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주고 설거지를 하고 신을 신고 벗는 일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일상’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역’이란 특별한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변의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조성해 놓으신 상황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다른 상황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특별한 상황이 오면 특별하게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일상에서 하고 있는 일이 특별한 상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하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요한복음 13장 15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하신 일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겨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사람들입니다. 챔버스는 이 사람들을 주의해서 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바로 당신이 주님께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람들로서, 이를 알게 될 때 당신은 겸손하게 됩니다. 주께서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정확하게 그 사람에게 보여주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명확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사람이, 너희도 그렇게 섬기라고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꿈을 꿉니다.
“‘그래요, 주님. 제가 먼 훗날 선교지에나 가게 되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한창 전쟁 중에 전쟁 참호 속에서 전쟁 무기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이 참 많이 와 닿습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해 왔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을 맡겨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사역을 맡겨주셔서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저 다른 일을 맡겨주실 뿐입니다. 그것이 선교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일상일 수도 있겠죠. 만일 특별한 상황이 왔을 때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마치 전쟁의 참호 속에서 전쟁 무기를 만드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챔버스는 전쟁 중에 무기를 만들다 죽어갈 수도 있다고 비유합니다.
옛말에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병사를 키우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병사를 사용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루를 쓰기 위하여 10년을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하루를 쓰기 위한 10년의 준비는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루를 쓰기 위하여 평생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10리를 가야하는데, 고작 100m 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보이지도 않으니 일단 쉬겠습니다. 그리고 큰 일이 닥치면 그 때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꾸준히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가 왔을 때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타인을 섬기고, 일상에서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스터디 가이드]에 보면 오늘 묵상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상황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각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할 뿐입니다.
둘째, 사소한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게 하셔서 성품을 테스트 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변에 배치해 주신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 스스로 점검하면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넷째, 지금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도 선교 현장에 나가서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알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어려운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