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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예수님의 종

통독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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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질 때, 비로소 성령의 증거가 우리 안에 나타납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무엇을 포기했습니까? 포기한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없다면 아직 주님의 제자로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5:27-32 + 갈라디아서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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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27-32)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십니까? (27절)
  • 그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8절)
  • 잔치에 함께 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29-30절)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30절)
  •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31절)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27절)
‘보다(헬, 에데사토)’는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응시,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레위(마태)가 일하는 세관 곁을 여러 번 오가며 레위를 깊이 살피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예수님은 레위의 중심을 보셨다. ‘앉아 있는 것(헬, 카데메논)’은 현재분사로 자신의 근무지에서 줄곧 일했고, 부름 받은 때에도 성실히 자리를 지켰음을 나타낸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28절)
레위의 중심이 어떠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부르심에 대한 반응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는 직업과 육적인 안락함을 모두 포기하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 ‘버리고(헬, 카탈리폰)’는 ‘떠나다, 남겨두다, 소홀히 하다’라는 뜻이다. 레위는 그동안 ‘앉아 있던 자리’에 모든 것을 남겨두고 미련 없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따랐다.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29절)
레위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기쁨과 감사를 표시하며 예수님을 주빈으로 하는 큰 잔치를 배설한다. 많은 사람을 초청하여 예수님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든다. 그 자리에는 ‘많은 무리(헬, 오클로스 폴뤼스)’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병 고침을 기대하며 호기심으로 모인 사람들과 예수에 대한 적대감으로 주위를 서성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모여들었다.

건강한 자, 병든 자(31절)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스스로 바르다고 자부하는 자들을 ‘건강한 자’라고 부르신다. 그들은 자신의 실체를 보지 않는다. 예수를 거부한다. 병들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의사를 찾지 않는다. ‘병든(헬, 카코스)’ 것은 육체적인 연약함과 더불어 도덕적 악함을 뜻한다(마4:24, 요18:23). ‘죄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갈망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회개시키러(헬, 메타노이안)’ 오셨다. 이는 ‘마음을 고치다, 바꾸다’라는 의미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무가치함, 죄를 인식하고 통회하는 죄인들의 마음을 고쳐 새롭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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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위하여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은 누가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챔버스는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나의 독립을 내 손으로 부수고 최상의 주 예수님께 순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나 대신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야 합니다. 완전한 순종을 위해서는 내 안에 살아있는 독립성이라는 껍데기가 깨어져야 합니다.

챔버스가 말하는 핵심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인격적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인격적이라는 말은 강압이 아닌 자유로운 순종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수준’, 즉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상태가 되면 우리 마음속에 더 이상 갈등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단계에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동등한 관계에서 하는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십니다. 이 상태는 온전히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시작될 수 없습니다. 이 자발성은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은 내가,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해 진정한 충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아의 부서짐이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거짓 경건입니다. 내가 결정해야 하는 단 한 가지는 포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겠습니까? 자아가 부서지든 상관하지 않겠습니까?”


카일 아이들먼은 [오늘, 제자로 살기]에서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말은 곧 자신에 대해서 죽겠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난 구석들을 깎아 행동과 성격, 태도를 개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다. 심지어 우리를 더 나은 ‘우리 자신’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오신 것도 아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우리의 옛 삶을 죽여 그분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닮는 것이 그분이 오신 이유다. 제자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카일 아이들먼이 말하는 ‘제자’와 챔버스가 말하는 ‘예수님의 종’이 일맥상통합니다. 공통점은 나의 자아를 부수고 옛 삶을 죽이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모든 것을 놓는 상태입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생명 되시는 주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주님의 종이 되어 ‘주를 위하여’ 살 각오가 되어 있다면, 자아가 부서져야 합니다.

자아가 부서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꿈꾸는 이상이나 자아실현을 내려놓겠다는 ‘의지’입니다. 이 의지가 참으로 신기합니다. 의지는 의지인데 자신을 내려놓는 의지입니다. 의지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을 때, 초자연적인 사건이 실제화 됩니다. 즉,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내 안에 계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챔버스는 ‘기독교의 열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기독교의 열정은 마음을 다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아직 성도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이렇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챔버스는 런던의 성경대학에서 이런 각오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학생이 일 년에 한 명만 있어도 하나님의 ‘성경대학’이 존재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이 큰 도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임 받는 사람들은 좋은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재능으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을 취해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택하셨던 방법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많은 사람에게 사역을 부탁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던 사람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셨던 제자들은 위대한 성취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주님께 쓰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실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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