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그에게는 …
계 2:7
한 줄 노트
- 싸움은 아프고 힘겨운 것이지만, 이긴 자의 기쁨이 있기에 싸우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오늘 육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 싸움을 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이겨놓고 싸운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묵상 레시피
(고린도전서 10:13)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요한계시록 2:7)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은 어떤 시험입니까? (13절 상반절)
- 하나님은 이 때 어떤 일을 행하십니까? (13절 하반절)
감당할 시험 밖에는(13절)
‘시험’은 성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사탄의 시험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시험도 성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다. 사탄이 주는 것이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통제와 섭리 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가장 잘 알고 계시므로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
피할 길을 내사(13절)
‘피할 길(헬, 엑바신)’은 ‘나가는 곳, 결과, 산에 나 있는 좁은 길’을 가리킨다. 마치 포위당한 군인들이 적의 눈을 피해 산으로 난 좁은 길로 신속히 탈출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한 중에도 견뎌내고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도우신다.
싸워야 할 대상 세 가지
오늘 묵상 글은 아주 명확하게 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을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문 제목이 “적대법”(The law of antagonis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신체적 건강, 도덕적 건강, 그리고 영적 건강을 위해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싸움이나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첫 번째, 건강한 육체를 위하여
“외부의 병균에 대항해 나의 신체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있으면 신체는 건강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 인류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병균이 몸속으로 침입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도 이겨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적에 속절없이 넘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코로나로 인해 생명을 잃었습니다. 외부의 적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신’을 개발해 사람들에게 주사를 놓습니다. 사실 백신이란 약한 병균을 신체 속에 넣어 항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싸움을 통해 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죠.
즉,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내 신체 안에서 병균과 싸울 수 있는 대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끝나면 삶도 끝납니다.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우리가 어느 순간 게으름이나 안일함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게 됐다면 생명력을 잃었다는 증거입니다.
두 번째, 도덕적 건강을 위하여
우리가 도덕적으로 건강함을 유지할 때는, 부도덕한 일들과 싸울 때입니다. 챔버스는 부도덕한 것들과 싸워 이기려면 도덕적인 근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근육’이라는 말에 집중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흔히 우리가 근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근육을 키우는 방법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운동을 통해 근육이 파열되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점점 강도와 무게를 더하면서 근육은 점점 그 크기를 더해 갑니다. 도덕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싸우는 순간은 우리가 도덕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입니다. 저절로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세상의 악한 세력은 우리를 그렇게 낭만적으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세상을 거슬러 싸우려는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죄에 대하여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결정이 반복되면서 도덕적 근육이 생깁니다. 결정의 순간은 아프고 힘든 상황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결정이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버리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습관입니다.
흔히 ‘결정 장애’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결정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된 버릇입니다. 오늘도 올바른 도덕적 결정을 위해 세상의 부도덕한 일에 대하여 싸워야 합니다. 더 큰 싸움이 올 때 감당할 수 있도록 도덕적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세 번째로, 영적 건강을 위하여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이 세상의 불의한 일에 대하여 싸우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온전한 싸움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이 세상의 불의와 악한 영에 대하여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싸움의 기술’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확실히 싸움의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 싸움을 잘합니다. 영적으로 싸우는 기술을 익힌 사람이 확실히 세상과 싸울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싸움의 기술은 ‘이겨놓고 싸우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영적 싸움을 통해 우리가 균형잡힌 거룩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오히려 원수를 만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거룩은 나의 본성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법과의 균형입니다.”
참 멋진 표현입니다. 오히려 원수를 만나 싸우는 것이 영적 기쁨이라는 말이죠. 이 영적 싸움을 통해 우리는 점점 거룩해져 갑니다. 균형 잡힌 신앙인이 되어 갑니다. 오늘 묵상의 본문이 요한계시록 2장 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우리의 삶에 영적 싸움이 찾아올 때는 담대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이 기쁨인 것은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낙원의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니 얼마나 큰 기쁨과 소망 가운데 싸움을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싸움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싸움의 과정에는 상대방에게 맞는 아픔도 있습니다. 붙잡고 씨름하며 힘을 써야 하는 고통도 감내해야 합니다. 놀라운 일은, 싸움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께 가까이]라는 책에서 멋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죄가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께서 죄에 대항하시기 때문에 죄와 싸울 때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된다. 그때 여러분의 싸움은 단지 도덕적인 투쟁이 아니라 신앙적인 싸움이 된다. 그것은 경건의 표현이 되고,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감을 여러분의 온 생활 속으로 확대시키는 귀한 수단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