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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영적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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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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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나’와 ‘교회’를 넘어 더 큰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 기쁨과 평안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묵상질문

영적인 공동체가 현실에 뿌리를 둔다면, 현실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영적인 일은 무엇일까요?


묵상 레시피

◆에베소서 2:11-22,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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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11-22)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4:13)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편지를 읽는 독자들의 옛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1-12절)
  • 그들이 신앙공동체에 속하고 일원이 될 수 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3-14절)
  • 예수님의 십자가는 누구에게, 어떤 효력을 미쳤습니까? (15-19절)
  • 이제 신앙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해나갈 것은 무엇입니까? (21-22절)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11절)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을 이방인이라고 불렀으며 멸시했다. 이들은 그리스도 없이 살았으며, 공동체 밖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살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중재를 통하여 교회에 속하게 되었고 한 몸의 지체들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피는 죄 용서와 하나님-인간, 인간-인간 관계의 회복을 가져온다. 구원의 활동은 교회와 교회 밖 전체에 미친다(17절).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5절)
그리스도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아닌 새 사람을 창조하신다. 세례를 통한 새 창조이다(엡4:24, 골3:10). 새로운 피조물들은 ‘한 몸’과 같은 존재다. 개인으로서의 새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집합적인 존재, 하나의 교회를 뜻한다. 한 몸으로서의 교회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18절)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1절)
건물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성전은 성령이 거주하는 살아있는 공동체이다(고전3:16). 그리스도 없이는 성전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 건물 전체가 이어지고(머릿돌), 그리스도를 근거로 성장해 갈 수 있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는 배제나 차별 없이 하나의 교회로 함께 지어져 간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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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 큰 계획

오늘 말씀으로 3일간 계속된 미니 시리즈를 마치게 됩니다. 이미 두 번의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영적 게으름을 제거하고, 영적인 성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영적 공동체를 이루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영적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회복’이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복이란 전 인류를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두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회복’이 한 개인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의 자체 조직의 성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나’에 머무는 것도 ‘교회’에 한정된 것도 아니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나와 있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부분을 기억해 보세요.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세상’을 위함입니다.  교회 공동체나 신자들이 범하는 커다란 오류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의 공동체 속에서만 실현하려는 좁은 마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부르신 이유는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주님의 성품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개인적인 영적생활 혹은 영적인 은둔을 즐기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 세상에 세워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책임도 물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2.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시작

여기서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개발만을 중시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즉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인격적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의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여기에 ‘알고자 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 분께 나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나를 내어 드림으로써 우리는 온전히 그 분과 하나 되는 계획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챔버스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사용하시는 것은 단순히 나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격적 관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분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개인의 영적 성취나 성장을 위해 사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거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원할 때마다 그 관계는 어그러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현하는 데 관심이 없고 오직 그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만 관심이 있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독교 진리]에서도 이 부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간혹 기분에 따라 무언가를 하기 원하지만, 결국 그 일도 자기 자신을 위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기분이 좋든 말든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영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올바른 목적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참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과 평안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챔버스는 중세 수도원 주의를 그렇게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영성을 위해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일까요? 우리도 종종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기억하십시오!하나님이 부르신 성도, 영적공동체의 진정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앎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세상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온전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다니엘 김이 쓴 [가야 하는 길]에 나오는 글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나라의 그림은 절대로 추상적이거나 막연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비전과 응답과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간증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금 살펴보면, 그것은 주님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님은 ‘나 있는 곳’을 기준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워 가신다.

자기 가정도 돌보지 못하는 자가 어찌 바른 사역을 할 수 있겠는가?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가 어찌 선교를 하겠는가?

신앙의 기본기도 갖추지 못한 자가 어찌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작은 일에 합격된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분이시다.

나에게 허락하신 환경, 나에게 보여주신 상황, 나에게 선물하신 조건이라는 범위에서부터 하나님나라의 그림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질서가 있다.

하나님의 방법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의 경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진행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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