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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신앙의 표준

통독표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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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에게 ‘빛나는 후광’이 없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
  • 오늘 우리에게는 특별한 영적 체험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이 바라는 특별한 영적 체험은 무엇이며, 살아내야 하는 일상은 무엇인가요?


묵상 레시피

◆이사야 6:1-13 + 고린도후서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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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1-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고린도후서 5:7)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이사야가 부름 받던 시기는 언제입니까? (1절)
  • 이사야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2-4절)
  • 이사야는 무엇을 고백하였습니까? (5절)
  • 이사야는 무엇을 결단하였습니까? (8절)
  • 이사야가 전해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9-10절)
  • 하나님이 주신 희망은 무엇입니까? (13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1절)
웃시야는 5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동안 유다를 강력한 왕국으로 이끌었다. 국방, 경제, 정치면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장시킨 왕이었다. 그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왕의 궁중 서기관이었던 이사야 역시도(대하26:22) 웃시야의 죽음을 애도하며 국운을 염려하고 있을 때, 그는 천상의 회의를 주관하시는 강력한 왕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사야는 매우 현실적인 상황에서 ‘특별한 영적 순간’을 맞았다. 또한 하나님은 ‘특별한 영적 순간’을 통해 이사야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 현실적인 일들에 대해 소명을 내리신다.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7절)
입은 인간 존재의 중심을 의미하며, 예언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주된 신체 기관이다. ‘네 입에 닿았다’는 것은 속량인 동시에 말씀의 대언자로서 부름 받음을 의미한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9절)
‘이 백성’은 이사야 1-5장에서 언급된 사람들로 특히 유력자, 지배 계급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듣고, 보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하나님과 ‘관계’가 없었다(5:8-12절).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하는 백성이며(1:2-3),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깨뜨린 자들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뒤엎은 백성이다(5:8-24).

거룩한 그루터기(13절)
이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청결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심판의 불길을 통과한 자들이다. 백성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은 그분의 보좌에서 ‘결단’ 하셨다.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과의 관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회복하라고 선포한다. 민족주의적인 군사적 행동 보다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재판을 공평하게 하며, 공동체와 일상 가운데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기준들을 권고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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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정상적인 표준

오늘 말씀의 원제목은 ‘감정이 아닌 통찰’(insight not emotion)입니다. 챔버스는 일상에서 벗어나 비정상적인 꿈만 꾸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시고 놀라운 영감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에도 당신은 일상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습니까?”


오늘 묵상은 챔버스가 계속 강조하고 있는 사역의 태도와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변화산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 속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보편적인 사역은 영적 후광이 비추는 감정의 정점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금테로 된 후광을 쓰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머리 뒤에 동그란 금빛 후광이 있는 ‘성인’의 그림을 한번쯤 본 적 있으시죠?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후광이 비치는 성인처럼 되고 싶은 비정상적인 열망이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을 닮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감정적 열망이 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종]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 비디의 모습이었습니다. 수술 후 사경을 헤매며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비디는 요한복음 11장 4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 비디는 이 말씀이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비디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더 큰 의미의 약속을 주셨다.” 여기서 ‘더 큰 의미의 약속’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챔버스가 더 이상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역은 끝나지 않는다는 확신과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에게는 우리를 영화롭게 할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비디의 일상을 통해 ‘더 큰 의미’의 일을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거듭났기 때문에, 위로부터 오는 무한한 능력으로 세상 풍파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원하는 것의 오류

가만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우리가 ‘희귀한 영감의 순간’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말씀하시는 ‘어떤 특별한 순간’에 대한 집착을 의미합니다. 이런 ‘순간’에 집착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보기 원하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길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는 왜 자꾸 보는 것에 집착할까요? 우리에게는 왜 믿음이 필요할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 조나단 에드워즈는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생각이나 삶에 대한 자세를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안으로는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으며, 새 하늘과 새 땅도 볼 수 없다. 아직 이 땅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실상을 믿으며 그 믿음이 우리의 마음과 삶 전반을 지배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챔버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은 체험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일어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드워즈는 이 믿음을 성도는 눈으로 보는 것, 즉 영적인 체험이나 계시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런 특별하고 갑작스런 영감의 순간이 아니라 믿음으로 일어나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놀라운 것을 깨닫습니다. 영감의 순간이 아니어도 여전히 우리 곁에 계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때 우리는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곳에 계셨는데, 나는 왜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특별한 영감의 순간들에 집착할 때, 건강한 신앙에서 벗어나 곁길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영감의 순간들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우리의 표준은 평상시에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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