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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신앙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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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누구시니이까


행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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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올바른 순종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 종교는 순종을 강요하지만 하나님은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종교에 순종할지 말지는 우리의 선택이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죄입니다.

묵상질문

종교적 강요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 쉽지 않지만 이 구별을 통해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묵상 레시피

◆로마서 6:15-23+ 사도행전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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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5-23)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사도행전 9:5)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우리의 옛 소속은 어디이며 현 소속은 어디입니까? (15,17-18절)
  • 그 사람의 소속을 드러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16, 19-20절)
  •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모습은 어떠하며 그 끝은 각각 어떠합니까? (21-23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17절)
동사에 쓰인 ‘파라디도미’는 과거 수동태로 쓰였다. ‘넘겨지다’, ‘전해지다’란 뜻이다.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가 교훈의 본에 ‘넘겨졌다’로 번역된다. 이는 고대 노예 제도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가 한 주인으로부터 특정 주인에게 ‘넘겨지는’ 경우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죄로부터 하나님께 양도되듯이, 세례식을 통해 교리 혹은 신조, 가르침 등 교훈의 본에 ‘넘겨졌다’고 표현한다. 교훈에 넘겨진 성도들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한다. ‘마음으로’는 충심과 진심을 가리킨다. 세례 때 받은 ‘교훈의 본’이 억압이나 강제성을 띄기보다 세례 받는 이의 자유의지에 의해 전달되었음을 의미한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22절)
바울은 로마의 ‘자유’ 개념을 적용한다. 당시 노예들은 재산을 축적하여 노예 신분을 벗거나 전문 지식으로 주인을 섬기며 환심을 사 자유인 신분이 되는 길들이 열려있었다. 이러한 해방노예들 중에는 여전히 노예로 남아있길 선택한 자들이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얻은 ‘자유’가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한 자유였음을 역설한다. 바울은 이것이 유일하고 가장 좋은 선택임을 강조한다. 인간 실존은 결국 죄의 종이 아니면 하나님의 종, 둘 중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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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바른 순종

어제는 복음의 능력이 인간의 설득력 있는 말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기적’에 대하여 묵상할 텐데, 종교적 강요에 의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이것을 챔버스는 ‘신앙의 신비’(The mystery of believing)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묵상 제목에서 ‘신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소위 ‘행간’을 읽어야 오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9장에는 그 유명한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이 나옵니다. ‘다소의 사울’이라 불렸던 그가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가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챔버스는 이 회심 사건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적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은 우리가 어떻게 조절할 수 없다는 뜻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인 구속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챔버스는 기적이 아닌,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순종’과 ‘불순종’은 선택 가능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기서 말하는 순종의 문제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래의 글을 통해 신앙생활을 할 때 경험하는 교회나 지도자의 권위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순종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불순종이 반드시 죄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명령하는 자의 우월한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하는 순종은 ‘도덕적 가치’를 따지는 일이 아닙니다. 단지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서 결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위에 대한 순종은 그것의 도덕적 가치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할 때, 세상의 조직과 권위에 순종해야 할 근거를 따지지 않는 잘못을 범합니다. 챔버스가 이에 대해 아주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종으로 만들어 ‘이것을 하라’고 명령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옳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순종한다면 그가 순종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종이 되느냐, 하나님의 종이 되느냐를 고민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 졌습니다. 영화 <베켓>은 영국 왕 헨리 2세의 친구 토머스 베켓의 이야기입니다. 헨리 2세는 자신의 마음대로 술을 즐기고,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전쟁을 일으키고,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력을 원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당시 대주교는 눈엣가시였죠. 그래서 헨리 2세는 자신과 함께 술, 여자, 가무를 즐기는 친구 토머스 베켓을 대주교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일어납니다. 음주가무를 즐기기 위해 대주교로 임명한 토머스가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왕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며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헨리 2세는 자신의 친구가 적당히 대주교직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열심히 설득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주교라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던 토마스는 결국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왕이 보낸 암살자들에게 죽임 당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세상의 권위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종교적 비극은 이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순종은 ‘종교적 올가미’에 불과합니다.


2. 종교에서 벗어나라

챔버스 묵상의 중요한 관점 중 하나는 ‘종교’와 ‘신앙’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순종을 강요하지만 신앙은 순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종교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인은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종교에 순종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지 못하십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얼굴을 맞대고 섰을 때 ‘순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주께서는 절대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구속의 재창조의 능력으로부터 이탈되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의 문제로 가장 깊이 고민했던 사람이 챔버스입니다. 그에게 순종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의 전기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종]에 나오는 편지와 일기를 함께 보겠습니다.

큰 밀물이 나를 막아서는 것 같고 모든 음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거나 영감을 주시기에는 내가 너무 천하고 세상적인 것은 아닐까 두렵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는 하늘의 비전을 기다리겠다. 아무리 지혜가 많은 사람이라도 성령께서 그에게 직접 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감히 예수님을 위해 일한다고 나서지 못할 것이다.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나는 가서는 안 된다. _1896년 4월 26일 챔버스 일기 중


저는 오늘 제 인생길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시기에 합당할 때 제 인생길을 바꾸실 것입니다. 저는 훌륭하지도 않고 자격도 되지 않지만, 주님의 열정적인 부르심이 제 영혼 속에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 잘해야 몽상가 또는 이상주의자로 여겨지며, 상식이 부족한 어리석은 청년으로 여겨질지라도, 제게 그렇게 분명한 주의 음성을 어떻게 불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_1901년 9월 6일 챔버스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불순종은 우리 영혼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해 빛으로 나아갑니다. 빛을 거부하면 화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에서 순종해야 하는 것과 순종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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