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 6:16
한 줄 노트
- 무엇에 자신을 내어주느냐가, 당신이 누구의 종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 아직 우리에게는 우리를 자유케 하실 주님께 순종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묵상질문
정욕에 자신을 양도하므로 잃어버린 자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묵상 레시피
(출애굽기 7:1-6)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로마서 6:16)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하나님은 출애굽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입니까? (7:3)
-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무엇을 드러내기 위함입니까? (7:5,17,10:2,14:18)
-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무엇입니까? (용어설명 참고)
- 출애굽에 담긴 깨달음과 고백, 선택과 결단은 무엇입니까?(출20:1-2)
- 지금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과 기대들은 무엇입니까?
- 나는 무엇에 내 삶을 양도하고(yield) 있습니까?
내 표징과 내 이적을(3절)
표징(히,오트)은 주로 표적, 표징, 이적으로 번역된다. 대부분 기적을 동반한다. 본문에서처럼 이적(히, 모페트)와 함께 사용된다. 표징(오트)은 내면적인 것을 드러내는 외적인 ‘표시’이다. 이적 자체보다 이적의 의미를 중시한다. 한편 이적(모페트)은 이적 자체에 관심을 둔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도구이며, 이적을 일으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적을 통해 ‘한 분 하나님’을 드러내실 것이다.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드러내실 것이다.
열 가지 재앙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에 거주하던 이들의 삶과 전 존재를 흔드는 사건이었다. 농사 주기, 운송, 교류, 통행 등 전국의 유통망과 관련된 나일 강이 핏빛으로 물들었다(7:14-25). 그들의 술객은 능력자인 듯 보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가중시킨다(8:1-15). 만신전의 신들이 인간의 욕망을 투사한 조제품이란 사실이 폭로되었다. 인간은 티끌로부터 와서 티끌로 돌아갈 필멸의 존재이다(8:16-20). 하나님은 만물 속에 일하시며, 만물을 주관하신다. 모든 것이 심판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곤충 떼8:21-25, 가축9:1-7, 피부병9:8-12, 우박9:13-55, 메뚜기 떼10:1-20). 권력의 최 정점에 서 있는 태양신의 화신, 혹은 태양신의 아들 파라오도 결국 하나님 앞에 빛을 잃는다(흑암10:21-29).
1. 무엇에 나를 내어 주는가
오늘 묵상이 흥미로운 것은 제목에 사용된 ‘순종’(obedience)이란 말이- ‘obey’라는 동사 한 번을 제외하고-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양도’(yield)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묵상 글에 나오는 ‘순종’ 혹은 ‘복종’이라는 말은 모두 영어 단어 ‘yield’를 번역한 말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묵상글 가운데는 조금 더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순종하다’와 ‘양도하다’라는 말을 구별해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순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배하는 세력이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즉, 내가 어떤 것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면, 그 세력에 나를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나’의 종이라면, 내가 나에게 자신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이는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명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나를 양도했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기심에 나를 내어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욕에 나를 내어주고 나면, 나는 정욕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한 번 내어준 것에 대하여 ‘종’이 되는 순간 그곳에서부터 헤어 나올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챔버스가 택한 분문 로마서 6장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나 자신을 성령님께 양도한다면,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무엇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스스로 속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참 무서운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에 쉽게 속아 넘어 간다는 것입니다.
“우습게도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정욕의 종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아무 때나 그 버릇을 버릴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정욕에 기꺼이 순복했기 때문에 그 버릇은 당신을 완벽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누군가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주도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철학 교수님이 하시던 말이 생각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자유로운 사람일까요?” 흔히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순간 반쪽의 자유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담배를 피우지 않을 자유는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뭐 그리 큰 문제이겠습니까?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내 자유를 내어주는 순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정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은 정욕의 습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그것을 깰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죠. 아주 사소한 일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소한 일로 인해 우리의 자유가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의 선택권을 주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를 모든 정욕과 욕심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나쁜 습관들에 대하여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마음과 능력이 있다면, 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양도하지 못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의지를 정욕에 양도하므로 이미 정욕의 종 된 상태에서 자유할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우리를 자유케 하실 능력이 있는 주님 앞에 순종할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우리의 소원이 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의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과 그것을 행하는 일을 우리의 유일한 소원이자 기쁨으로 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