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고전 4:13
한 줄 노트
-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도 기꺼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질문
우리에게 주어진 몫의 고난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묵상 레시피
(베드로전서 4:12-19)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1)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고린도전서 4:13)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 본문은 우리가 불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하라고 권합니까?(12-13절)
- 불시험이 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2절)
- 어떤 고난이 우리에게 복입니까 (13,14,16절)
- 그것이 왜 우리에게 복입니까? (13-14절)
- 그러나 우리가 피해야 할 고난은 무엇입니까? (15절)
- 고난이 올 때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9절)
- 고난 중에도 우리가 계속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9절)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13절) (헬)카레테 아길리오메노이
기쁨의 극치, 기뻐 뛰며 춤을 추는 모습. 몹시 기뻐 날뛰는 것.
너희 위에 ‘계심’이라 (헬)아나하우에타이
전치사 (헬)아나(-위에, -가운데)와 동사 (헬)파우오(쉬다)의 합성어.
‘-위에서 머물러 있다’라는 뜻과 동시에 ‘회복시키다’, ‘원기를 돋우다’란 뜻으로도 읽힌다(마11:28, 눅12:19, 계14:13). 즉, 하나님의 영, 영광의 영이 머리 위에 머물러 원기를 회복시킨다는 의미.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15절) (헬)알로트리에피스코포스
‘타인’과 ‘감독자’를 뜻하는 헬라어의 합성. ‘타인에 대하여 감독자의 위치에 서는 자’라는 의미. 참견하는 것을 넘어 남의 것을 착복, 횡령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끼치는 자.
의탁할지어다(19절) (헬)파라티데스도산
-의 곁에 두다, 건네주다, 맡기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길 때 사용된 동사(눅23:46). 현재명령형으로 ‘계속, 항상’ 맡겨두라는 의미.
짧은 기도
이 몸을 님께 바치리이다.
세포 하나 남기지 말고 털끝하나 남기지 말고
내 것이라곤 하나 없이 나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다 님께 바치리이다.
님께서 이 잘난 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게는 둘 수가 없어서 두어 둘 터무니가 없어서
님께 바쳐 처분해 주시기를 비오니 나를 온전히 받으소서.
내가 님께 드린 다음에야
어떻게 하시든 상관하지 않으렵니다.
쓰실 테면 쓰시고 버리실 테면 버리시고
님 옆에 두시거나 그 걱정은 할 것 없이 그저 온전히 바치기만 원합니다.
이젠 다시 나란 생각 않겠습니다.
내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란 것이 있을 때에는 나도 죽고 세상도 죽었습니다.
내가 정욕을 품어서 세상도 나 보고 정욕을 일으켰습니다.
나 없고 님의 것만 드러내면 누가 보나 님께 영광 아니 돌리리이까?
함석헌_님께 바칩니다(1901-1989, 사상가) 「사귐의 기도」 519-520
1. 구별된 자의 몫이 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도 사도바울의 자기 고백이 있는 성경 본문을 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살았던 자신의 삶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말씀과도 연관되는 부분인데 소명자에게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향한 애착은 ‘만물의 찌꺼기가 되는 것’을 거절하게 만들지만, 구별된 당신은 ‘복음이 증거 된다면 이 땅에서 찌꺼기같이 대우받아도 상관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오늘 묵상 글에서 아주 인상적인 것은 ‘구별된 자의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서 거룩하게 될 때 누구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따로 구별된 자’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면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챔버스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런 의문을 갖습니다. “왜 우리들은 이 말씀을 과장된 표현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우리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들에게 너무 많은 세상에 대한 애착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꺼이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난을 피해 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복음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마음이 추호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살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은 받지만 ‘구별된 자의 몫’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압적으로 이끄셔서 ‘억지로 된 순종’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남은 고난’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자의 삶을 살 때,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2. 찌꺼기같이 대우 받는다는 것은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만물의 찌꺼기같이 됨을 마땅히 여기게 되었을까요?복음이 전파된다면 이 땅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야말로 참된 ‘종’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러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신앙’에 머무르려는 사람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입니다. 도덕적 신앙에 머무르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선함’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하여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의 평판이 자신들의 행동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기꺼이 ‘찌꺼기’가 되려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찌꺼기같이 대우 받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던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자신을 구별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여주기 위해’ 구별되었다고 말합니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선택의 몫은 우리들에게도 남겨져 있습니다. 가까스로 구원받은 부끄러운 성도가 되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자가 되어 기꺼이 세상의 찌꺼기 같은 존재가 되든지 그 선택은 우리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이 상태가 되는 것이 ‘복음을 위해 구별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1.02.04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에 전도를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고 몸을 바치지 않을래야 바치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몸을 바치고 나아갔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몸도 바치고 재산도 바치고 모든 희생을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생명까지도 즐거움으로 바치는 것이 참되고 귀한 신앙이다.
사랑에 끌려서 할 때에는 아무리 고난을 당해도 힘이 들지 않고 아무리 물질을 바쳐도 아까운 것이 없다.
사랑에 끌려서 하는 사람은 죽는 곳에도 즐거움으로 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살 때는 죽는다고 할지라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주를 따라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삼켜져서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죽음이 참된 순교이다.
..........
주후 2세기경에 로마 정부가 폴리캅 감독을 죽이려고 나무를 쌓아놓고 그 나무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폴리갑 감독을 결박하여 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그 순간에도 폴리갑 감독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때 집행관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죽이지 않고 석방하겠다고 말하자 폴리갑 감독 대답하기를 “예수님께서는 나를 팔십육년 동안 사랑하시되 한번도 모른다고 한 일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를 한번이라도 모른다고 할 것인가?”하고 기쁨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문제이다. 예수님이 나를 제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시고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말씀하셨다(요21:15-17).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양을 먹일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사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이 우리 믿는 성도 모두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성도가 다 법적으로 죽은 것이다.
한 줄 노트
참 된 증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분이 하신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분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더 이상 논리와 계산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의 논리에 따라 삶이 변해 갑니다.
묵상질문
우리는 무엇에 눈이 멀어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나요?
짧은 기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겠습니다.
명예와 영광이라 해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받겠습니다.
모욕과 욕설이라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면 달게 받겠습니다.
오, 저희를 도우시어 어느 것이라도 동일한 기쁨과 감사로 받게 하소서.
두 가지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한다면 두 가지는 실상 다를 게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한다면!
아멘~할렐루야!!
오직 축복만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전4:10~13
주제:끝까지 일하는 자
바울은그리스도의일꾼으로
판단받지 않는자(1-5)
말씀에순종하는 자(6-9)
끝까지 일하는 자(10-13)
.....
오늘묵상말씀은 고전4:10~23절로 끝까지
일하는자입니다!
하나님의일꾼은 하나님의
뜻을이루기위해 죽기까지
복음을전해야한다.
.구경꺼리가 되어도...
.미련하다는욕을 먹어도...
.나약해지기쉬운비천한 자리에서도...
그리스도를위하는일이라면
용감히 발벗고 나셔야한다.
그래서 일꾼은 항상기뻐게
일해야한다.
또한 일이 이루어질때까지
일해야한다.
.....
그리스도의충성된일꾼은
판단을 받지도,하지도않고
말씀안에서순종하며끝까지
일하는자이다!
....
예수님의제자는 예수를 주로믿고 그를위해 일평생
충성을다하는자들이다.
참제자도의구현은 십자가
를지는 삶에 있다!
.........
고전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성도가 비방을 받을 때에 자기도 그 사람을 비방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사실을 바로 말해 주며 좋은 말로 권면하는 것이 좋다.
권면하니는 좋게 말한다는 뜻이다.
더러운 것은 씻어낸 오예물(汚穢物)이다.
찌꺼기는 방을 청소할 때 나오는쓰레기를가리킨다.
*바울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오예물과 만물의 쓰레기처럼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바울에게 복음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오히려 존귀하고 강하고 교만하여진 것이 옳으냐 뜻이다.
...........
한 줄 노트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도 기꺼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질문
우리에게 주어진 몫의 고난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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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도 기꺼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짧은 기도
이 몸을 님께 바치리이다.
세포 하나 남기지 말고 털끝하나 남기지 말고
내 것이라곤 하나 없이 나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다 님께 바치리이다.
님께서 이 잘난 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게는 둘 수가 없어서 두어 둘 터무니가 없어서
님께 바쳐 처분해 주시기를 비오니 나를 온전히 받으소서.
내가 님께 드린 다음에야
어떻게 하시든 상관하지 않으렵니다.
쓰실 테면 쓰시고 버리실 테면 버리시고
님 옆에 두시거나 그 걱정은 할 것 없이 그저 온전히 바치기만 원합니다.
이젠 다시 나란 생각 않겠습니다.
내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란 것이 있을 때에는 나도 죽고 세상도 죽었습니다.
내가 정욕을 품어서 세상도 나 보고 정욕을 일으켰습니다.
나 없고 님의 것만 드러내면 누가 보나 님께 영광 아니 돌리리이까?
아멘~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