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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새 생명으로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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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시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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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성품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해 새롭게 된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로 인한 변화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갈라디아서 6:14-16 + 시편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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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14-16)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시편 87:7)
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 바울이 오직 자랑할 것은 무엇입니까? (14절 상반절)
  • 이로써 이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14절 하반절)
  •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15절)
  • 십자가, 새로 지으심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16절)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14절)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다. 세상이 보기에 십자가는 수치요 실패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1:18, 갈5:11, 히12:2, 13:13). 바울은 세상에 미련이 없고, 세상은 바울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바울 안에 사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다(2:20). 삶에 대한 바울의 인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주체가 온전히 바뀐 것이다. 바울은 새로운 질서 속에 살고 있다. 성령의 영이 바울의 영을 계몽시키고 인도하신다(롬 8:16).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15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으로의 개종을 종용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유대인만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즉, 새 창조,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다(고후5:17).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셨고, 창조된 세상은 온전히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었다. 성도들이 새로 지으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것이다. ‘규례(헬, 카논, 기준, 척도, 규칙, 표준)’를 ‘행하는 것(헬, 스토이케수신, 따르다, 걷다, 처신하다)’이다. 이러한 자가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 백성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믿는 자들이며(3:7),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다(3:29).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있는 여자의 자녀이며(4:31),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이 따로 없다(3:28).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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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거듭남을 통해 새 생명으로

이틀만 지나면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제 묵상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는 회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어제 묵상에서는 참된 제자가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은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요, 거듭남은 ‘회개’를 통해 시작됩니다. 오늘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회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회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새로운 성품을 입히시고 새 출발을 한다는 의식을 불어넣으심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남은 생애를 예전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참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지난 일을 후회하면서도 저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라는 인간은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입니다.”라고 한탄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성품,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하나남의 성품을 새롭게 입히시겠다고 약속하시기에 우리는 새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12월 묵상에 자주 등장한 말이 있습니다. ‘거듭남’의 진정한 의미는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말하는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의 자연적인 덕을 이리저리 뜯어고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내면에서 전인적인 ‘새사람’을 만드십니다.”


거듭남은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말하는 ‘영적 훈련’은 거듭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듭난 자가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된다고 해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주로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인 덕’(natural virtues)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덕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품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장점이 있습니다. ‘새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연적인 덕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우리 속에 있는 성품으로 착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새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었던 자연적인 덕을 신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 내면의 절망에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증거는 자연적인 덕에 의지하지 않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덕들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남아 있는 것들이지 우리가 추구하는 약속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에 있는 자연적인 덕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셨던 성품은 다 소용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인 덕을 의지하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갈 때, 우리 속에 있는 자연적인 덕을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우리 속에 있는 자연적인 덕을 자랑하면 ‘교만’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덕과 성품을 세우실 때는 ‘자존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교만이 깨어지면 스스로를 비루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붙들 수밖에 없는 겸손한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자존감’입니다. 새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 자연적인 덕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연적인 덕을 자라나게 하셔서 그것을 승화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연적인 덕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근처도 오지 못합니다. … 그러나 우리가 육신적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으신 새 생명과 조화를 이루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이 가지신 덕을 우리 안에서 드러내실 것입니다.”


자연적인 덕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유효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덕의 한계입니다.


여기에서 ‘조화’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자연적 인간이 다르게 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시작되었을 뿐, 우리 안에 창조된 본성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 안에 주신 본성과 덕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거듭난 본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덕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자연적인 긍휼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드러나는가?

무엇이 다른가요? 이전에는 긍휼한 마음으로 나 자신이 드러났다면, 이제는 긍휼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과 구속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전에 내 속에 있었던 사랑이 성품에 의지했다면,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행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가 잘 참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인내는 자신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참으심’을 생각하며 인내하게 됩니다.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덕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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