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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상식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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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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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믿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오늘 어떤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시겠습니까?


묵상 레시피

◆히브리서 11: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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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1-3, 6)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믿음은 무엇입니까? (1절)
  • 이 일의 증인은 누구입니까? 그들이 증거로 삼은 것은 무엇입니까? (2절)
  • 믿는 자들의 믿음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됩니까? (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1절)
히브리서가 정의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미래’에 이루리라 약속 하신 것을 ‘현재’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시리라는 확신(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응답’이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며 내적 확신을 이어가는 동시에 외적으로 기도하고, 섬기고, 인내하며 일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믿는 자는 말씀에 단순히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절)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믿음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눈앞의 현상 뿐 아니라 그 너머를 볼 수 있다. 현상을 ‘육안’으로만 보는 사람들보다 더 자세히 보는 것이다. 믿음은 처한 상황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일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한다. 이는 인간의 감각에서 벗어난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으로부터 온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2절)
‘옛 조상들은 믿음으로 역사적 증인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시며 증거를 주셨다. 또한 증인들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믿음은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 하나님 말씀의 지원을 받아 보이지 않는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지어진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3절)
1절의 ‘증거’는 보이지 않는 구원에 대한 ‘무조건적 확신’을 뜻한다. ‘확신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인 실례는 세계의 창조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눈에 보이는 만물’의 실제적인 근원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인식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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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의미

계속해서 조금은 신학적인 문제들을 다루어 가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한번쯤 공부하는 것이 우리 신앙에 많은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첫 문장이 아주 중요합니다.

“상식과 상반되는 믿음은 광신입니다. 믿음에 상반되는 상식은 이성주의입니다. 믿음의 삶은 이 두 가지를 바른 관계로 인도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혹은 비 신앙인들과 대화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상식과 믿음’의 관계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상식적인가요? 아니면 비상식적인가요? 또한 우리의 믿음은 이성적인가요? 아니면 미신적인가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과 상식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이 둘이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상식이 자연적 세계와 연결이 되어 있다면, 믿음은 영적 세계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상식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계시입니다.

계시는 상식이 닿을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증명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영역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실체가 현실로 드러나려면 믿음은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책 중 쉐인 클레어본이 쓴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실체가 되도록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더구나 그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믿음으로 인해 핍박을 받고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책을 조금 인용하겠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편하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테레사 수녀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순하지만 결코 편하지 않다. 아플 때까지 사랑하라. 그리고 더 사랑하라”고 말하곤 했다. 나와 함께 인도에 갔다가 훗날 심플 웨이를 함께 시작했던 친구 브루크는 그녀의 벽에 “단순하지만 편하지 않다”라는 문구를 붙여놓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삶이 무척 힘들어졌을 때, 내가 그 위에 “단순하고 지독하게 어렵다”라고 써 놓은 적도 있었다.


믿음은 행동이 증명합니다. 믿음의 실체는 뼈아픈 시험을 거치며 드러나는 우리의 행동입니다. 단순하고 지독하게 어려운 시험을 통해 믿음은 증명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보세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상식과 현실의 영역에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는 어떠한 상황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의 삶에서는 이러한 역사가 실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믿음은 상식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식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상식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실질적 경험 가운데 증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최우선에 두는 놀랍도록 활동적인 원칙입니다.”


챔버스는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전혀 상식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믿음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말씀을 추상적으로 생각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실제로 믿고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면 이제 ‘믿음의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론적이며 추상적인 믿음을 개인의 믿음으로 만들려면 ‘가끔’이 아니라 ‘항상’ 싸워야 합니다.”


이 치열한 싸움에 대하여 하용조 목사님은 [예수님만 바라보면 행복해집니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증거를 갖는 일입니다. 현실적으로 받은 것은 없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약속을 받았기에 그것을 붙잡고, 증거처럼 가지고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너무 값싸게 취급해 버리는 것을 봐 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통해 영생과 영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인내하는 믿음이 아닌 세상의 가치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믿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선진들이 증거로 받았던 믿음,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짜 믿음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이러한 싸움의 상황 가운데 밀어 넣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믿음’이 항상 추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무한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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