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4
한 줄 노트
- 참 된 증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분이 하신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분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입니다.
- 사랑에 빠지면 더 이상 논리와 계산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의 논리에 따라 삶이 변해 갑니다.
묵상질문
우리는 무엇에 눈이 멀어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나요?
묵상 레시피
(사도행전 1:6-11)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고린도후서 5:14)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나타나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계속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6절)
- 예수님은 이에 대해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7절)
- 예수님께 더 우선되고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8절)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8절의 3가지 일을 <순서대로> 적어 보십시오. 순서로 본다면, 증인이 되는 일은 무엇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제자들의 어떤 모습을 책망했습니까? (11절)
예수께 묻자와(6절) (헬)에로우 아우톤
‘그들은 계속하여 물었다’는 의미.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제자들이 흥분된 마음으로 거듭 반복하여 질문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회복하심이(6절) (헬)아포카디스타네이스
나라, 개인을 낫게 하여 다시 온전케 만드는 것. 유대인들은 다윗, 솔로몬 시대를 회복된 왕국으로 꿈꾸었다.
오직(8절) (헬)알라
(헬)알라는 부정문 다음에 사용되면 긍정의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7절 ‘알 바 아니다’에 이은 8절의 오직((헬)알라)은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다’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즉, 제자들이 정말 알아야 하고 관심해야 하는 것을 뒤이어 말씀하신 것이다.
증인 (헬)마르튀스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 바를 확언, 증언할 수 있는 자. 종종 순교자를 표현할 경우에도 사용된다. 순교한 스데반에게도 이 호칭이 사용되었고, 계17:6에서 성도들이 예수로 인해 흘린 피를 가리킬 때 사용한 ‘증인들의 피’에도 사용되었다. 즉, 삶과 생명까지 다하여 증거 하는 사람을 뜻한다.
쳐다보느냐(11절) (헬)엠블레폰테스
현재분사, 진행형의 의미.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만’ 있느냐?’는 뉘앙스로 읽힌다.
짧은 기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겠습니다.
명예와 영광이라 해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받겠습니다.
모욕과 욕설이라도 주님이 주시는 것이면 달게 받겠습니다.
오, 저희를 도우시어 어느 것이라도 동일한 기쁨과 감사로 받게 하소서.
두 가지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한다면 두 가지는 실상 다를 게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한다면!
죄렌 키에르케고르_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1813-1855, 덴마크의 철학자, 신학자)「사귐의 기도」584
1. 증거하는 것과 증인되는 것의 차이
조금 정리하고 계속해서 묵상 글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챔버스가 말씀을 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개념을 구별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은 ‘가까스로 구원받는 것’과 ‘택함 받은 것’의 차이를 이야기 했다면, 오늘 본문은 ‘거듭나는 것’과 ‘성령이 임하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으로는 이 구분이 분명하지 않지만, 원본에 보면 아주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부분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간증하는데, 영어 단어로는 ‘testimony’는 말이죠. 즉, 자신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에 대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고 나면 ‘testimony’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 하는 증인 즉 ‘witness’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지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죠.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 주님’을 증거 하는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성령의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강권함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강권함을 받은 사람 안에서는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합니다. 이 증인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증거하는 초보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의 증인’이 됩니다. 이후 우리는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영광이든 비난이든 핍박이든 칭찬이든 예수님께 친히 발생하는 일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령께 사로잡힌 사람은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진정한 증인이 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바로 예수님께 일어나는 일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예수님이 핍박을 받으시고, 우리가 칭찬을 들을 때 예수님이 칭찬을 들으시는 것 말입니다. 영광을 받든 비난을 받든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2. 사랑에 사로잡히면
이러한 상태를 챔버스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항복하는 순간 사람들은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온전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완전하게 내어 맡기는 것만이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러한 삶은 내가 얼마나 거룩한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주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합리적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극히 이성적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주님과의 사랑에 빠지면 세상에 대하여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은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우주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자신들의 거룩함을 위해 애쓰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 온전히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읽다가 덮고 덮고했는데
이렇게 좋은 묵상과말씀을 매일 함께할수있어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사역이
항상 빛이 나는 것 같아요.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응원해요.
그런 저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가정에 닥친 고난은 그동안 내 손으로 지은 왕국이 거짓이고, 온전하지 못해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던 그 때, 주님이 저의 시간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바디매오처럼 세상에 홀로 놓여진 사람, 먹을 것을 구걸해야 겨우 살 수 있던 사람, 신앙에 대한 회의와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던 사람을 주님은 찾아오시고 안아주셨습니다. 주님을 향해 독을 품고 찌르는 저를 주님은 그냥 안아주셨습니다. 주님 품에 안겼던 그 순간,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내 손에 먹을 것이 없어도 살아갈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신뢰와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저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나를 강권하여 이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그 사랑이 나를 예수의 증인으로 살게 하십니다. "호균아, 너가 나의 증인되어 줄 수 있겠니?" 물으셨을 때, "네, 주님! 제가 주님의 증인이 될께요. 어디에 세우시든지, 누구를 만나게 하시든지, 주님이 하신 일과 주님의 사랑에 대해 증인이 될께요"라고 고백했던 내 모습을 주님이 기억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의 시간속에 들어오셔서 사랑을 주시며, 주님을 따라오라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살기를 결단합니다. 세상의 다른 것에 사로잡혀 살기를 거부하고 저항합니다